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니 Mar 24. 2021

글쓰기는 재능일까?

매년 새해에 버킷 리스트를 쓸 때면 빠지지 않는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내 이름으로 된 책 출간하기'였다. 무슨 내용을 쓰고 싶은지, 소설책을 쓸지, 에세이를 쓸지 정한 것도 아닌 그냥 책 출간이었다.  그냥 내 이름이 표지에 적힌 책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살아있다는 증거를 남기고 싶어서였는지는 모른다. 버킷리스트란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는 것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했으면 좋겠다'라는 드림리스트에 가까웠다. 


하지만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과 남들이 읽힐 가치가 있는 글을 쓴다는 것에는 큰 벽이 있어 보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작가의 존재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재능을 가진 선택된 사람들만 책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으면 작가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그저 취미 수준으로 즐기는 활동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쓰던 글은 고작 일기 정도였다. 미래의 독자가 1명인 글, 아니면 아무도 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글을 썼다. 내세울만한 글은 전혀 아니었다. 재능이 그리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니 감정과 묘사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소설가나 전문적인 글을 쓰는 전문작가의 벽은 높아만 보였다. 


하지만 출간 준비를 하고 있는 지금 나로선 그런 환상은 그저 허무맹랑한 생각이었다는 걸 느낀다. 글을 쓴다는 건 재능으로 영감이 내려와 글을 쉽게 써 내려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매일 쓰고, 지우는 일의 기계적인 반복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재능이 있는 이도 있어 보이지만,  A 150장을 쓸 수 있는 힘은 재능만으로 되지 않는다.  재능이란 역시 꾸준함이 있지 않으면 아무 쓸모없는 것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5~6시간 글을 씁니다.
오후에는 10km를 뛰고, 1,500m를 수영한 뒤 책을 읽고 음악을 듣다가 밤 9시에 잠듭니다.
저는 이러한 일상을 조금의 변화도 없이 매일 반복합니다. 
반복은 매우 중요합니다. 최면 같은 겁니다. 더 깊은 내면으로 저를 이끌어줍니다.
하지만 이런 반복적인 생활을 오래 지속하려면
강한 정신력과 체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긴 소설을 쓰는 것은 생존 훈련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강인한 체력은 예술적 감수성만큼이나 중요합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파리 리뷰> 2014년 여름호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쓰기 습관은 유명하다. 그는 다작하기로 유명한 소설가인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기 위해 이런 루틴을 매일 한다고 한다. 하루에 장시간 글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달리기와 수영까지 철인 3종 경기 훈련하는 이 같다. 단순히 몸 건강을 위해서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글쓰기를 위해서 하는 것 같다. 글쓰기가 체력과 정신력 싸움이기에 몸을 단련하는 것이다. 긴 시간 동안 집중력을 유지하며, 1권의 책을 쓸 수 있다는 능력은 이런 루틴에서 나온다. 하루의 단련된 루틴대로 생활하고 내가 가진 시간에 최선을 다할 때, 좋은 글은 써지며 글을 오래 쓸 수 있다.




나는 글을 쓸 때 영감을 기다리지 않는다. 영감은 가만히 있는다고 쉽게 찾아와 주지 않기 때문이다. 기다리기보다는 내가 쓸 수 있는 것을 쓰려고 한다. 나는 막글쓰기라는 방법을 통해서 우선 글을 쓰는 행동을 먼저 한다. 내 글이 좋은 글일지, 나쁜 글일지를 따지지 않고 우선은 갈겨쓰는 것이다. 이는 꽤 효과적이다. 시간도 절약된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글감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글감은 무의식 안에 숨겨진 것이 떠오를 수도, 그저 잠깐 까먹은 것이 떠오를 수도 있다. 글을 쓰는 행동을 먼저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구체화되고 또 글 한 편을 그럭저럭 완성해나갈 수 있다. 행동이 생각을 이끄는 것이다. 이렇게 막글을 쌓아 노트를 채우고, 매일 글을 쓰는 시간으로 채운다. 그저 아무렇게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다. 실행하는 글쓰기의 루틴과 반복이 더 나은 글을 쓰게 해 주었다.


앤절라 더크워스의 <그릿>에서는 성취의 가장 큰 요소로 끈기(그릿)에 대해 말한다.  어떤 것을 잘하기 위해서는 재능과 노력에 좌우된다. 하지만 높은 성취로 빛을 발하는 것은 끈기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나는 글을 쓸 때 나의 재능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단 하나의 확신을 가지고 글을 쓴다. 오늘은 어제보다 나은 글을 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글을 쓸 것이다.

나는 나의 꾸준함만 믿는다. 오늘 쓸 수 있는 글의 수만큼 성장하리라 믿는다. 그 꾸준함은 간절함과 맞닿아있다. 그러니 오늘도 내일도 글을 쓸 수밖에.



매거진의 이전글 출간 계약을 하고, 초고를 보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