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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Apr 25. 2020

내가 쓰고 싶은 글

이 글을 읽는 동안 당신 주변의 시간은 조금 느리게 흐릅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당신 주변의 시간은

조금 느리게 흐릅니다.


나는 <어라운드>라는 라이프 스타일 잡지를 좋아한다. 표지 첫 장을 넘기면 ‘이 책을 읽는 동안 당신 주변의 시간은 조금 느리게 흐릅니다’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이 한마디에 나는 애독자가 되었다. 주말 아침 침대에 누워 1달에 1번 나오는 그 잡지를 아껴 읽는다. 종이에 햇빛이 비쳐 빛나는 순간이 참 좋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의 생각에 귀 기울여 본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아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읽는 동안에는 정말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20권가량을 모았을 때는 더 이상 책장을 늘릴 수 없어 고민했고, 이사하고 난 뒤 온라인으로 구독한다. 인쇄물로 읽는 감성보다 덜하다. 하지만 글은 여전히 읽을 수 있었고 토요일 아침엔  <어라운드>로 시작한다.


오늘은 목욕탕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옛 목욕탕을 찾아 떠내는 취재 기록이다. 아주 오래된 목욕탕부터 20년 된 목욕탕을 다녀온 그의 이야기를 읽다가, 어릴 적 목욕탕의 추억이 떠올랐다.

우리 동네에는 '장수탕'이라는 목욕탕이 있었는데 주말 아침마다 그곳에 갔다. 수증기가 가득한 그곳에 가면 나는 대충 몸을 헹구고 찬물에서 한참을 놀았다. 그러곤 뜨거운 탕에서 몸을 녹이고 묵은 때를 벗겨냈다. 목욕을 마치고 나면 항상 ‘코코팜’을 마셨다. 땀을 흘린 나에게 주는 보상이었다. 목욕 후 마시는 최고의 음료는 바나나우유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겐 ’ 코코팜’이 최고였다. 시원하고 달콤한 맛에 젤리 같은 알갱이들을 씹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나이가 들고 더 이상 주말에 목욕탕을 가질 않는다. 코코팜도 즐겨 마시지도 않는다. 하지만 어렸을 적 나의 목욕탕의 추억은 그대로 있었다.


이런 추억을 하나 떠오르게 만드는 글. 글이 가진 마법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글을 읽고 나는 나의 추억을 소환한다. 그런 글을 좋아한다. 그런 글을 쓰고 싶다. 경험의 선을 이어주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일까. 나의 이야기를 계기로 독자의 추억 하나가 살포시 떠오른다면 내 글은  충분히 가치 있는 글이다. 내 글을 읽고 시간이 천천히 흘렀으면 좋겠다.

그런 글을 쓰는 나 역시 인생을 천천히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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