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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Apr 16. 2021

퇴근 후, 달리기

선택사항으로서의 고통


저녁 7시
퇴근 후, 나는 달려보기로 했다. 


최근 읽었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너무 좋았던 탓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년 마라톤을 뛰고, 철인 3종까지 참가할 정도로 달리기를 좋아한다. 달리는 인생에 대한 회고록인 그 책 마지막 문장에서는 자신의 묘비명에 이렇게 써넣고 싶다고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평소 그의 습관에 관심이 있던 나는 달리면서 드는 감정이 어떨지 궁금했다. 오랜 기간 글을 쓰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가 오랫동안 해온 것이라 더 특별해 보이기도 했다. 고민하고 있던 '오래도록 쓰는 삶'에 대한 실마리 같아 보이기도 했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 나니 바로 달리고 싶어 졌다. 뛰는 것을 정말 싫어했던 나에겐 보기 드문 동기부여다. 이 순간을 놓친다면 나는 곧 다시 달리기에 관심을 끊을 것이다. 서둘러 가장 빨리 뛸 수 시간을 찾았다. 다음 날 저녁시간이다. 퇴근 후 지친 7시. 하루 일과를 처리하느라 에너지를 거의 쓴 상태이지만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바쁜 일상에 흘러들어 가듯 집중하고 나니 저녁 7시다. 회사 로비를 나와 달릴 자세를 취했다. 문득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네이비색 세미 오피스룩에 검은색 로퍼. 전혀 달리기에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두운 밤에 그런 모습으로 달린다고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숨을 크게 한번 들이쉬고, 달리기 시작했다.





쿵쿵 발이 무겁게 지면에 닿았다 떨어졌다를 반복했다. 달리며 건물에 비친 나의 모습을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유리에 비친 나의 자세는 어설프기 짝이 없다. 예전에 아주 잠깐 배운 달리기 기본자세를 떠올려 자세를 고쳐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모양새는 볼품없었다.


차가운 날씨에 싸늘했던 감각은 사라지고 열이 올랐다.  심박수가 150을 넘어가고 있었다. 금방 피로감이 몰려왔다. 달리기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달리기 초보에게 1,2킬로 정도 거리도 쉽지가 않다. 신호등에 걸리면 멈췄다 뛰었다를 반복했지만 마스크 사이로 숨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저녁의 달리기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오히려 애처로운 뜀박질 같았다. 지친 몸을 억지로 움직여 나아가는 듯한 이 행위가 금방 싫증이 날 법도 했는데, 나는 계속 달렸다.


달리면서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생각했다.

그의 책 속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는 소설 쓰는 방법의 많은 것을 매일 아침 길 위를 달리면서 배웠다고 한다. 달리기를 통해 집중력과 끈기를 배웠고, 페이스를 유지하는 법을 익혔다고 한다. 나도 그것에 대해 배우고 싶었다. 오래 쓰는 힘을 기르고 싶었다. 글을 쓴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 오래 쓴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위대해 보였다. 


그의 습관을 닮으면 나의 글도 그렇게 오래 이어질 수 있을까? 나는 오랫동안 그렇게 쓸만한 열정이 있는가? 내 글이 가치가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이 이어지다 결국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힘들어서 아무 생각이 안 든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렇게 달리고 멈추고를 반복하고 나니 어느새 지하철 역에 도착했다.  마스크에 가려진 얼굴에 땀이 한가득이다. 거친 숨을 고르고 다시 아무렇지 않게 걷는 것에 집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묘한 상쾌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퇴근 후의 달리기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달리는 것은 '선택사항으로서의 고통'이다. 달리기는 걸을 수 있는 것을 의도적으로 달리기 때문에 힘이 든다. 그 힘듦은 고통이라고 생각하면 고통이고, 신체를 단련시킬 훈련이라고 생각하면 훈련이다. 글쓰기도 이와 비슷하다. 글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더 힘들다. 술술 써 내려가기보다는 끄집어내기 힘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하지만 그것이 고통이라고 생각하면 더 글을 쓸 수 없다. 하지만 글쓰기 근육을 키우는 훈련이라고 생각하면 할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얻는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퇴근 후 달리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꽤 잘 맞는 것 같다. 앞으로 이 달리기를 얼마나 할 수 있을진 모르겠다. 하지만 며칠 더 달려보기로 했다. 조금의 끈기를 가진 내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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