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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Apr 24. 2021

처음으로 새벽에 10km를 달렸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잘 달리는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체육시간에 함께 달리기를 하면 뒤에서 2,3번째를 하는 아이 었다. 잘 달리지 못했고, 잘 달리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 달리기에 흥미를 느낀 이후로 10km를 한 번 달려보고 싶었다. 일종의 수련 같은 것이랄까? 모험심 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10km를 달려보면 내가 조금은 달라져 보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새벽 6기 37분. 온도는 적당했다.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안양천에는 몇 없는 사람들이 달리기거나 걷고 있었다. 지나가는 자전거들도 몇 있었다. 나는 그 속에 자연스럽게 들어가 달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퇴근 후의 달리기와 같은 옷차림은 아니다. 있는 힘껏 달리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했다. 쿠션감이 느껴지는 초보용 러닝화, 레깅스와  기능성 상의, 그리고 러닝용 마스크에 애플 워치까지. 초보 치고 좀 과하다 싶은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첫 10Km다. 미지의 순간에 닿을 때 기본 장비라도 갖추고 싶었다. 




1km

처음은 가벼웠다. 한 번도 10km를 달려보지 않았으니 몸에 주는 부담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그러니 열심히 달리되 무리하지 않았기로 했다. 얼마나 하는 것이 무리하는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전속력을 내서 지쳐 걷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의욕 없이 걷겠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는 나의 페이스를 모르니 조심스러웠다. 


3km  

벌써 힘들다.  다리에 무리 가는 거 아닐까? 집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초반부터 이렇게 지치면 완주하지 못하겠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머릿속으로 방법을 생각하기로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울트라마라톤을 할 때, 마지막에는 자신을 그저 몸을 움직이는 기계라고 생각하고 달렸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그 방법을 써봤다.'나는 움직이는 기계다, 나는 움직이는 기계다..'라고 되뇌었지만 소용없었다. 힘들기는 마찬가지 었다. 


5km 

5km의 구간을 넘으니 살짝 고독해졌다. 고통을 혼자 느끼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의미 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내가 왜 완주하고 싶어 졌는지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다리에는 힘이 풀릴 것 같았고, 내 달리기 자세가 좋지는 않았는지 바닥에 운동화가 크게 쓸리는 소리도 났다. 


이후에 중간에 잠깐씩 걸었는데,  걸을 때마가 생각이 몰려왔다. 글을 쓰고 싶었다. 10km를 완주하고, 글을 써보자.(그 결과물이 이 글이다). 이 순간의 감정이나 생각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무엇이든 소재로 만들려는 버릇이 있다. 나만 이런 건 아닐 것이다. 


7km 

봄인데 눈이 내렸다. 민들레 씨가 만든 풍경이다. 그림으로 그리는 눈의 모습을 실제로 표현하면 사실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길가에 민들레 씨앗이 바닥에 눈처럼 소복이 쌓였다. 새하얗게 덮여있는 모습이 정말 눈 같았다. 인생 처음 보는 광경에 홀린 듯 잠깐 걸으면서 찬찬히 바라봤다. 이후 2km는 민들레 씨앗에 대한 생각만 했다. 


9Km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은 더 빨리 흐르는 듯 느껴졌고 몸은 더 부드러워진 느낌이었다. 뛰는지 걷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나는 뛰고 있었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른다. 걱정이나 생각이 없었다. 그저 앞만 보였고 달리고 있었다. 관성처럼 기계처럼 그저 움직이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좀 특별한 체험이었다. 익숙해지면 이런 감정에 무뎌지는 걸까? 아직 초보에게는 이런 느낌이 신선했다. 


10km

애플 워치에 미세한 진동이 느껴진다. 10km 달성이다.





첫 10km의 목표는 완주였다. 기록이 없으니 기준을 완주로 잡았다. 마지막 10km 달성의 진동이 울리자,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이 밀려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는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해 주는구나.'


나는 완벽하지 않은 사람인데, 가끔 그걸 까먹는다. 내가 제어하지 못하는 것은 많다. 사람의 이성으로 되지 않는 것도 있다. 매일 완벽하게 잘 해내는 것은 아니다. 매번 아등바등하고 부딪힐 뿐이다. 그런데 가끔 자신이 완벽하다는 착각에 쉽게 빠지기도 한다. 


달리기는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닫게 해 준다. 10분만 뛰어도 내가 몸을 제어하는 건지 몸이 그저 움직이는 알 수가 없다. 힘들고 지치고 포기하고 싶고 집에 가고 싶다. 가서 글이나 쓰고 편하게 누워있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기로 했으니 뛴다. 돌아가려면 10km를 뛰도록 만들었으니 뛴다. 내가 전에 보지 못한 무언가를 알 수 있을지도 몰라서 뛴다. 완벽하지 않다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완벽하지 않기에 더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10km 완주하고 나서는 더 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 다시 한번 더 뛰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은 달리기에 애정을 가지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강물을 생각하려고 한다. 구름을 생각하려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나는 소박하고 아담한 공백 속을, 정겨운 침묵 속을 그저 계속 달려가고 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은 여간 멋진 일이 아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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