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집 바깥에는 푸른빛이 감돈다. 운동복을 차려입고 집을 나온다. 지하철을 타고 반포로 향한다.
이른 시간부터 반포로 향한 이유는 달리기 때문이다. 1시간을 달리기위해 1시간 동안 지하철을 탄다. 집 앞에도 작은 하천이 흐르지만 (보통은 거기서 달린다), 이번에는 한강을 뛰고 싶었다. 옆에 큰 강이 있으면 달릴 때의 기분이 꽤 좋을 것 같았다. 누군가와 함께 뛰는 것도 신선한 자극이 될 것 같기도 했다.
한강에서 달리기 크루들을 만나 간단히 인사 후 몸을 푼다. 두 번째 10km 도전이다. 아직 3개월 차 된 초보는 여전히 자신의 달리기에 자신이 없다. 반포에서 한강 잠수교를 건너, 이촌동까지 간뒤 다시 돌아와야 한다. 처음 달리는 길이기에 더 긴장된다. 끝이 어디인지 모르니 계속 이 고통이 이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 것 같은데 괜찮을까? 두 번째라 심장이 쿵쾅거린다.
달리는 속도는 평소보다 빨랐다. 혼자 달릴 때는 굳이 페이스를 올린다는 생각이 없었는데, 함께 하니 더 강도가 높아졌다. 처음에는 간단한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지만, 곧 숨이 차 말을 하기 힘들었다. 2km쯤 지났을까. 처음에 비슷했던 속도도 어느 정도 차이가 나 이제 각자의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페이스로 나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나만의 싸움을 시작했다. 고비는 저번과 비슷하게 찾아왔다. 2km쯤에서 한번, 5,7km에서 한번. 이 순간이 지나면 같은 속도로 달려도 편해진 느낌이 든다. 몇 분 뒤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숨이 찬다. 7km 달렸을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내면에서 스멀스멀 올라올 때 다른 한구석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는 글쓰기와 비슷하다
나는 달리기를 통해 글쓰기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계속 달려야 한다'
처음에 달리기를 시작한 건 순전히 호기심과 건강 때문이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달리면 달릴수록 달리기와 글쓰기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이것저것 공통점을 찾아가기 시작했는데, 마지막 달리기를 멈추는 것이 글쓰기를 멈추는 행위와 비슷하다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포기란 마음을 다시 집어넣어야 했다.
결국 나는 아무 생각이 없어질 때까지 달렸다.
기록은 1시간 6분 58초. 저번 달보다 13분이나 빨랐다.
달리기와 글쓰기, 글쓰기와 달리기
달리기와 글쓰기는 닮았다. 둘 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필요한 일은 아니다. 꼭 해야 할 의무도 아니고, 누구나 하는 일도 아니다. 그러니 오롯이 개인의 선택인 분야이다. 그렇기 때문에 닮았다.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계속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하는 일들이니 말이다.
달리기 보면 자신의 페이스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페이스는 리듬이다. 호흡을 어떻게 들이마시고, 내쉬어야 하고, 보폭으로 어떤 수준으로 하고, 그리고 어떤 속도를 내는지에 대해서 찾아야 한다. 이는 머리로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계속 달려보고 무리도 해보면서 끈질기게 찾아가야 한다. 글쓰기도 이와 비슷하다. 자신의 글 쓰는 리듬을 찾는 연습이 필요하다. 언제 잘 쓸 수 있는지, 어느 분량으로 써야 하는지, 또는 어떤 주제로 시작할 것인지 구성은 어떻게 만드는 게 편한지 등을 쓰면서 리듬을 만들어야 한다. 나의 경우 아침에 글을 써야 한다. 언제든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저녁에 아침에 쓴 글의 반도 못 되는 글을 가지고 씨름하는 경우가 많았다. 글은 앉은 뒤 발행 버튼 뒤까지 눌러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 글이 발행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 역시 페이스다. 다른 것들이 슬금슬금 관심을 가지게 놔두면 안된다. 분명 인터넷 창을 열 것이고, 블로그를 뒤적거리며 시간을 소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만은 빠르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쏟아내야 한다. 그 뒤에는 수정의 과정을 거치고 발행 버튼까지 누른다. 어떻게 보면 달리기의 한 사이클과 비슷하다. 달릴 때 달리는 것에 집중하지 않으면 걷게 된다. 중간에 포기해버릴지도 모른다. 글쓰기도 집중하지 않으면 계속 딴생각 때문에 나아갈 수 없다.
또하나의 공통점은 인내심을 시험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놀이처럼 언제나 즐거웠으면 좋겠지만 둘 다 그렇지 않다. 쓰다 보면 매번 고비가 온다. 어떻게 마무리 지을지, 생각을 어떻게 정리할지 모른다.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매번 간절하더라도 달려야 하니 달린다. 써야 하니까 쓴다. 그 안에서 끈기를 배우고, 정신력을 배우며,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는 오기를 배운다.
달리는 삶은 멋지다. 글을 쓰는 삶도 멋지다.
이 두 가지 행동으로 나는 내면의 근육을 키운다.
앞으로도 더 지속할 수 있는 힘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