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열심히 달린 탓이었을까? 최근 속도 단축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추측해보자면 두 번째 10km 러닝 기록이 생각보다 좋게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10km를 전보다 13분이나 단축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예전보다 더 빠른 시간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달리기에서 큰 성취감 중 하나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게 나에겐 독이 되었다. 크게 성장한 자신을 보면서 내 기준을 한껏 높였다. '예전보다 잘 달려야 해'라고 생각하니 평소보다 속도를 내려 애썼고, 그만큼 달리기가 힘에 부쳤다. 저녁 달리기는 유독 더 심했다. 처음부터 오버페이스로 달리자 나중에는 더 달릴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렀다. 처음으로 중간에 달리기를 그만두었다.
몸의 컨디션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를 무시했다. 오히려 내가 항상 좋은 컨디션으로 잘 달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태였다. 무리한 것이다. 달리기를 끝낼 때는 매번 좋은 기분으로 마무리 지었었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은 평소와 침울했고, 복잡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면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어제 나는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컨디션의 문제였을까? 하지만 역시 시간이 흐르자, 힘에 부쳤다. 컨디션의 문제는 아니었다.
달리면서 들을 요량으로 켜놓은 음성 가이드의 말 한마디가 귀에 꽂힌다.
'지금 달리기가 힘들고 괴롭다면, 이건 잘못된 거예요
러닝은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이 아니에요.
더 달릴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어야 해요'
'아.. 맞아요'
생각해보니 내가 달리기를 중간에 그만둔 것은 최대한의 나를 증명하려 애썼기 때문이었다. 빨리 가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느라, 짜증이 났었던 거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던 건 속도가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속도에 집착하고 있었다. 자신의 페이스대로 그저 달리면 되는 것을 왜 빨리 달리려 했을까? 나는 아직 페이스도 모르는 초보가 아니었던가?
속도를 줄였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리고 계속 달릴 수 있는 만큼 달렸다.
사람은 성장하는 자신을 좋아한다.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어있길 바란다. 하지만 노력하다 보면, 예전만큼 더 잘할 수 없는 순간도 온다. 예전의 내가 더 강할 때도 있다. 초보는 실력이 금방 느는 것이 눈에 보이지만, 어느 정도 성장하면 급격한 변화는 쉽게 찾아오기 어렵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슬럼프에 빠지는 것이고, 더 나아가질 못한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달리기에서도 이런 애쓰는 마음이 생기다니, 나는 내심 놀랐다.
전속력으로 질주하다 보면 언젠간 걷게 된다. 지치는 것이다. 그리고 '잠깐 STOP'을 외친다. 물론 쉬다가 다시 뛰면 될 수도 있지만, 고통이 심하다면 아예 그만둬버릴 수도 있다. 이건 앞으로 내가 추구할 달리기는 아니다.
나는 이제 중간에 걷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로 뛰고 싶다. 누가 보면 걷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정도로 느리지만, 그대로 뛰는 자세를 유지한 채 속도만 늦추는 것이다. 예전의 뛰다와 걷는 것과는 다르다. 걷는 것은 자세를 풀고 호흡을 고르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속도를 낮추는 것은 자세는 그대로 둔 채 호흡을 조절한다. 흐름이 멈출 일도 없다.
이는 나의 페이스를 찾는 것이다. 깊은 호흡을 내쉬고,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 나를 충분히 제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분명 전속력은 아닐 것이다. 나의 속도에 신경 스며, 꾸준히 달리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속도는 의도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붙지 않을까?
애쓰는 마음이 들 때, 가장 빠른 처방은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왜 달리기를 시작했을까?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배우기 위해서다. 더 오래 달리는 끈기를 배우고 싶어서다. 나는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 달리기의 목적은 체력증진이 아니다. 빠르게 달리기 위함도 아니다. 나는 끈질김을 배우고자 시작한 거다. 오래도록 달리는 것, 포기하지 않는 것, 지구력이라고 부르는 그것을 위해서.
마음을 비우고 10km를 달렸다.
3번째 장거리다.
이번엔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