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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Sep 15. 2021

마감이 있는 글쓰기

나는 마감이 있는 글쓰기를 좋아한다. 공모전이나 돈을 받고 쓰는 원고와 같은 일 말이다. 이런 글쓰기의 목적은 명확하다. 그 시간 안에 어떻게든 글을 꺼내놓는 것이다. 평소에 쓰는 글은 '어떻게 완결을 지을지 모르겠다'라고 폴더 안에 묻어둘 수도 있고, '에이, 오늘 글은 올리지 말아야지' 발행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마감이 있는 글은 다르다. 그 기간 안에는 어느 정도의 '완성'을 시켜놓아야 한다. 온 정신을 글에 쏟아야 한다. 이 때문에 평소에 하던 몇 가지 일을 멈추기도 한다. 블로그나 책 읽기 같이 좋아하는 일마저도 말이다. 그렇게 확보한 시간을 글을 쓰고 고치는 데에 온전히 집중한다. 


마감기간이 잡히면 내가 할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한다. 그 기간 내 분량을 할당한다. 그리고 시작과 동시에 할당한 하루 분량에만 집중한다. 그 순간에만 몰입하는 것이다. 특히 초고를 쓸 때는 판단하지 않고 타자기를 두드리는 일에만 집중한다. 꺼내놓은 말들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판단은 나중 일이다. 우선 꺼내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여기며 지속한다. 아마도 내가 글은 결국 '고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퇴고 역시 고치는 페이지가 늘어나는 것에만 집중한다. 이런 작업이 강제적이고 딱딱해 보일 순 있다. 천천히 느긋하게 글을 쓰는데 더 맞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겐 효율적인 방식이다. 초고를 단숨에 쓸 수 있고, 흐름이 끊기지 않게 퇴고할 수 있다. 더욱이 이런 마감이 있는 글을 반복해내면, 결과물이 생긴다. 


마감이 있는 글은 쉽게 몰입할 수 있다. 게으름을 부릴 틈을 주지 않는다. '쓰기, 쓰기, 또 쓰기'라는 슬로건을 걸어놓고 시간을 채운다. 평소에 아침을 활용하지만, 그마저 부족하면 저녁도 글을 붙잡고 있는다. 마치 대학교 중간고사 같다. 좋아한다고 했지만 매번 즐거운 건 아니다. 오래 앉아 있어야 하니, 어깨나 팔, 허리도 아프다. 자세가 틀어져도 한참 뒤에나 이상하게 앉아있다는 걸 알아차린다. 이 정도면 글쓰기는 노동이구나 라는 생각마저도 든다. 며칠 동안 끙끙 앓으며 해나갈 때도 있다. 나를 한참 지켜보던 남편이 "너 진짜 글쓰기 좋아하는 것 맞아?"라고 물을 정도다. 그러면 나는 "좋아하는데 힘들어"라고 답한다. 짧으면 1,2주 길면 1달이라도 그렇게 보낸다. 마감일까지 묵묵히 시간을 쏟는 일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할 틈이 없다. 그렇게 마감이 끝나면 나는 결과물과 해방감을 얻는다. 그동안 못 마셨던 맥주도 원 없이 마신다. 수고한 나를 위해 좀 더 비싼 음식도 주문한다. 편하게 소파에 늘어진다. 


그러나 해방감이 주는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다음 날이 되면 텅 빈 기분이 든다. 결과물은 그럭저럭 생겼고, 그걸 꽤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충분하다. 그런데 '음 다른걸 또 써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목표를 향해 전력질주로 골인하면 무척 행복할 것 같은데, 별로 그렇지만은 않다. 나를 몰아세우고, 그게 힘들어지고, 해방돼도. 다시 글쓰기로 돌아간다. 스스로 마감을 만들 일을 찾는다. 이번에는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참여하자고 계획한다. 목표일을 정하고, 날짜를 나누고, 분량을 정한다. 또 그리고 다시 반복한다. 이제는 더 이상 쓰지 않을 이유도, 못 쓸 이유도 없는 글쓰기를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반복하면 , 언젠가는 자신도 지칠 때도 올까? 가끔 의문이 들 때 있다.  하지만 내가 내린 일시적 결론은 이렇다. '글을 쓰는 것이 정체성의 일부가 되면,  순간의 감정이 하루를 뒤흔들지는 몰라도, 행동을 그만두게 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어제 몰입했던 주제와 소재가 달라지더라도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한동안도 계속 스스로 마감을 세울 것이다. 일시적 결론이 흔들리지 않은 한은 지속할 것이다. 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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