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브런치에 처음 썼던 글은 여행 에세이였다.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였다. 9년 전 인도 여행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의미를 되새겨보고 싶었었다. 썩 오래가진 못했다. 12편 '결국엔 돈 때문이었네요'를 쓰다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굳이 브런치에 이 내용을 쓸 필요가 있을까?'
나에겐 잊지 못할 경험이었지만 그게 다였다. 일정을 시간 순으로 나열하는 것 그 이상이 묻어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깔끔하게 접었다. 더 나은 주제를 찾아야 했다. 문득 떠오르는 것은 '독서'와 '자기 계발'이었다. 그걸 내 생각과 경험을 담아 설명하는 건 괜찮아 보였다. 나는 방향을 틀어 브런치에 한 편씩 채우기 시작했다. 글감은 넘쳤고 쓰는 재미도 있었다.
이 일 이후 한동안 에세이가 어렵게 느껴졌다. 막연하기도 하고, 잘 쓸 자신이 없었다. 특히 내 삶에서 소재를 찾으려면 관찰력이 대단히 중요한데 나는 에피소드나 사건에 대해 모아놓은 것도 없었다. 그동안 썼던 글도 생각을 논리적으로 이어나가는 훈련 비슷한 것으로, 일상을 살펴보거나 관찰하는 연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속 한구석에선 좋은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욕심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이왕이면 잘 쓰고 싶었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부족함이 느껴지면 배워야 한다. 나의 신조이기도 하다.
올해 6월 에세이 수업을 등록했다. 매주 토요일 2시간씩 수업을 듣고 과제도 제출해야 하는 강의였다. A4 1장 또는 1장 반 분량의 에세이를 마감기한 내에 써야 했다. 그러고 나서 1시간은 이론 수업, 1시간은 과제로 쓴 수강생들의 글을 각자 낭독했다. 에세이에 대한 이해와 습작을 해보기에 좋은 커리큘럼이었다.
매주 과제를 쓰려고 기억을 자주 더듬어 봤다. '슥'하고 지나간 흐릿한 장면을 붙들고 보았다. '대박'이라고 생각했던 것의 의미를 곱씹어 봤다. 중학교 시절 다녔던 학원, 엄마의 가게, 일본 유학시절,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 아침에 마시는 커피, 반찬통 까지. 기억이라는 조각들을 바닥에 쏟아붓고, 반짝이는 게 없나 한 개씩 살펴보았다. 더 사소한 소재를 찾으려고 애썼다. 특별한 여행 소재를 쓰다가 포기했으니 오히려 소박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게 더 공부가 될 것 같았다. 고른 조각은 풀어냈고, 편집했다. 마감 내에 어떻게든 1편의 글을 완성해나갔다.
과제를 제출하면 선생님은 글을 꼼꼼히 읽어주셨다. 내용은 칭찬해주시되, 고치는 일은 엄격했다. 나는 매문 장마다 세세하게 고쳐진 글대로 다시 한번 퇴고했다. 문장은 세련되게 변했다. 조사하나 만 바꾸어도 뉘앙스가 달라졌다. 읽으면서 내가 쓴 글에 동일한 단어가 많다는 것도 깨달았다. 시제를 일치시키고, 유의어 사전을 찾아보는 것도 배웠다.
고치는 일도 고치는 일이지만 수업 중 낭독도 도움이 됐다. 효과적인 퇴고 방법 중 하나가 '소리 내어 읽어보기'라는 건 알고 있긴 했다. 종종 나도 집에서 몇 번 소리 내어 읽어보긴 했는데 부끄러워 몇 줄 읽다 말았다. 그런데 남들 앞에서 낭독하기란 훨씬 큰 산이었다. 내가 쓴 글을 몇 분 동안 읽고 있으면 목소리가 몇 번씩 떨리곤 했다. 즉각적으로 '내용을 왜 이렇게 썼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올 때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고에는 효과적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금방 고쳐야 할 부분을 알아챌 수 있었다.
남에게 글을 보여주는 것이 두렵고, 누군가가 내 글을 고치는 것이 싫다면 아마 꽤 힘든 수업이 될 것이다. 나 역시 매주 글을 제출할 때마다 떨렸고, 낭독은 두려웠다. 주제가 어려워 머리가 아플 때도, 글을 고칠 때 한숨이 나온 적이 있었다.
그래도 나는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면 수업을 통해 배워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번 8주 동안 참 많은 것을 얻었다.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스토리 텔링, 아우트라인, 서사와 묘사, 퇴고에 대해서 이정도 알 수 있었을까? 물론 많이 쓰다 보면 자연적으로 그런 부분이 채워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수업을 통해서 보다 빠르게 습득할 수 있다.
수업이 끝나도 습작은 남았다. 나는 매번 과제를 브런치에 올렸는데, 그중 <엄마의 과일가게>라는 글이 카카오 메인에 소개되어 하루 조회수 2만 가까이 되는 일도 있었다. 높은 조회수에 나도 기분이 좋았지만, 엄마도 무척 기뻐하셨다.(가족에게 글을 보여주는 게 민망해서 잘 보여준 적이 없었는데, 이번 글은 기쁘게 전했다)
수업을 통해 나는 참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글을 논리적으로 풀어가든, 서사적으로 풀어가든, 쓸 때 즐겁다. 나는 생각을 곧장 밀고 나가는 것도 좋고, 스토리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일도 좋아한다. 글쓰기라는 큰 틀 안에 이것저것 해보면서 기쁨을 얻는다.
에세이가 막막하다면 배워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글쓰기도 기술이다. 배우려면 충분히 배울 수 있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핑계 대지 말고 앞으로도 글을 많이 써봐야겠다.
문장 핑계 대지 말고
우선은 많이 쓰세요
글은 평생 고쳐야 하는 거예요
* 8주 동안 했던 주제와 숙제들입니다.
글은 쓰고 싶은데 주제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참고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1. 내가 가장 멋지다고 느꼈던 장면
2. 어릴 때 내게 일어난 가장 중대한 일은?
3. 내게 인생의 비결을 가르쳐준 사람 혹은 사건은?
4. 내가 좋아했던 장소는?
5. 최근에 겪은 인상적인 사건이나 사람은?
6. 내가 좋아하는 사물에 대한 리뷰 또는 감상
7. 메타포가 들어간 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