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여행은 나에게 첫 배낭여행지 었는데, 초보자인 나에게는 꽤 허들이 높은 곳이었다. 도난이나 사기가 많기로 유명했고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처음 안내자에게 사람을 조심하라는 말까지 들었으니 쉽게 마음을 열기 어려웠다. 열차에서는 현지인이지만 자신의 배낭을 쇠사슬로 꽁꽁 묶어놓는 이도 있었다. 같은 인도 사람끼리도 못 믿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여행의 대부분의 대화는 게스트하우스 사람들, 상인, 뚝뚝 기사 정도였다. 낯선이 와의 대화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블루시티에서는 조금 달랐다.
블루시티는 내게 특별한 도시다. 인도를 떠나기 전 본 유일한 한국 영화 <김종욱 찾기>의 촬영지였다. 공유 같은 훈남을 당연히 만나지 못하겠지만 우연이라는 만남이 있을지도 몰랐다. 아픈 몸을 이끌고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몸보다 시간이 소중했다. 가이드북에서 나온 정보가 부족했다. 그만큼 걸었다.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유일하게 가고 싶은 성을 가보기로 했다. 오토릭샤로 30분 거리라서 꽤 먼 거리다. 모험심이 생겨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 걸어가다 보니 쉽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중간에 위치를 물어봤지만 서로 다른 방향을 말하고 있었다.
꼬불거리는 언덕길을 올랐다. 숨이 차오르는데 막다른 길이 몇 번 나와 방향을 잃었다. 서서히 체력도 안될 것 같았고, 포기하고 내일 뚝뚝을 타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때 대문이 열려있는 한 집에서 나이 든 여인이 손짓한다. 길을 알려주겠다는 것 같았다. 푸른 지붕을 가진 집이었다. 블루시티는 예전에 성 주변에 브라만이 다른 계급과 차별을 두기 위해 푸른색으로 지붕을 칠하기 시작하여 그 전통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그녀에는 영어로 인사를 했다. 나는 서투른 영어로 말을 시작했다. 메헤르가르 성이 근처냐고 물어보았다.
이곳은 한참 떨어진 곳이다는 말에 인사를 하려고 나갈 참이었다. 그녀는 여행에 대해서 물었다. 블루시트는 좋다. 매력적이다고 대답을 하자, 사진을 보여달라고 했다. 카메라를 꺼내어 보여줬다. 자신의 집을 찍어보라 손짓하여 몇 컷을 찍었다. 그녀는 고맙다며 짜이를 대접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짜이를 얻어먹는 건 절대 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입만 대로 내려놨다. 시간을 끄는 것 같아 이만 가봐야겠다며 카메라를 챙기고 떠나려 하자 그녀는 말을 꺼냈다.
" five dollars, please "
순진하게도 난 브라만의 호의라고 생각했는데 돈이 목적이었다. 기분이 상했다. 난 가난한 학생이라 여유롭지 못하다는 말로 돌아가려 했으나, 끈질기게 달라고 했다. 사실 달러가 있긴 했지만 괜히 속은 것 같아 주기가 싫었다. 황급히 그 집을 나왔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언덕을 내려왔다. 생각해보니 꽤 위험한 상황이었을 수 도 있었다.
세상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순수한 호의를 베푸는 이도 있고 , 호의를 가장하고 이익 얻으려는 테이커도 있다. 이 일로 사실 좀 더 사람을 경계하며 여행을 했다. 그만큼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있겠으나, 적어도 휘둘리진 말자는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