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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May 24. 2020

아플 때 혼자 있는 것처럼 서러운 것은 없다

사막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난 후 감기에 걸렸다. 코감기, 목감기 이제는 열 몸살까지. 평소에 잘 아프지 않은 체질이라 방심했던 걸까. 꽤 지독했다.   


사람들은 슬슬 다른 일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계획대로라면 나도 여기를 곧 떠나야 했다. 자이살메르는 더 오래 머물러도 될 정도로 매력적인 곳이었지만, 나는 욕심을 냈다. 다른 일정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사실은 모두 다음 여행지로 떠나는데 혼자 남겨지기가 싫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던 여행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이 많이 들었는데,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어느 한 구석이 뭉클했다. 다음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나기를 바랐다. 그런 곳이 인도라고 여기며. 


버스는 비포장도로를 쉴 새 없이 달렸다. 감기 기운 때문인지 버스 때문인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버스 안에 동양인은 나 밖에 없었다. 내 옆 좌석에는 전통의상을 입은 인도 여성과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둘이 앉아있었다. 한 아이의 큰 눈이 나와 자주 마주쳤다. 나를 바라보는 검은 두 눈에는 호기심과 이상함이 섞여있는 듯했다. 당연하게 여겼던 검은 머리와 하얀 피부가 이곳에선 이질감의 대상이다. 이방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익숙해질 듯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웃으며 인사를 할까 하다가 나는 시선을 창가로 돌렸다. 귀에 이어폰을 꼽았다. 누군가와 거리를 두기엔 이어폰 만한 것이 없다. 좋아하는 몇 곡을 들으며 창가의 지나가는 건물의 간판들을 세었다. 


축 늘어진 몸을 이끌고 블루시티에 도착했다. 블루시티는 영화 <김종욱 찾기>에 나온 배경지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영화에서 나온 게스트 하우스가 실제로 운영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른 곳을 알아볼 생각도 없이 그곳에 갔다. 새로운 숙소에 갈 때마다 나는 어색한 영어로 방이 있냐고 물어봤다. 여간해서 더 좋은 문장은 생각나지 않았다. 다행히 방이 있었다. 체크인을 하고 짐을 대충 바닥에 던졌다. 침대에 누었다. 조용한 방안에 누우니 천장 위에 프로펠러 같은 선풍기 소리만 웅웅거렸다. 더 열이 나는 것 같았다.


나는 고등학교 때 기숙사에서 학교를 다녔고, 대학교에서는 서울로 혼자 올라왔다. 따지고 보면 부모님의 손길에서 멀어진 지 6년이 넘었다. 혼자살이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가끔은 나 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을 한다. 하지만 아프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꼬맹이로 돌아갔다. 엄마에게 아프다고 말하고 싶어 지고 열이 나는 이마에 손길을 닿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화로 아프다 투정 부리긴 싫었다. 걱정만 안겨주는 게 뻔하기 때문이다. 아플 때마다 혼자 약을 먹고 그 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게 나았다.


서울보다 먼 인도의 한 게스트 하우스에서 엄마의 얼굴이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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