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1일.
사막에서 캠프파이어가 한창일 때 일본에서는 지진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파리에 참가한 일본인들은 가족에게 연락하려고 자리를 비웠다.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자연재해 소식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10분 정도 지난 후 그들은 다시 돌아왔다. '별일 없겠죠'라며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어색한 몇 마디를 나누다가 시간이 흐르자 분위기는 예전처럼 돌아왔다.
사파리에서 돌아온 후 티비로 지진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다. 진도 최고 규모의 9.0의 대지진이다. 뉴스에서 접하는 규모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지진도 문제였지만, 쓰나미가 더 상황을 악화시켰다. 부서진 건물들이 물에 잠겨있고, 자동차들은 힘없이 밀려들었다. 일부 사람들이 옥상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모습도 보였다. 동일본 대지진이라 불리는 이 재해를 한국에서도 아닌 인도의 사막 한가운데서 알게 되었다니.
갑자기 머리가 멍해졌다. 여행이 끝나고 일주일 뒤 후쿠오카로 유학을 갈 예정이었다. 확정이 난 상태였기 때문에 서울에 자취하던 곳은 이미 정리했고 한국의 새 학기마저도 시작한 상황이었다. 눈 앞이 캄캄했다.
자연재해 때문에 내가 갈 수 없는 상황은 상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선택의 기로에 섰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이번 기회를 놓치면 나는 그대로 한국에서 4학년을 보내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만약 간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발생한 지역은 후쿠시마였고 내가 유학할 곳은 후쿠오카였다. 같은 일본이지만 거리는 부산과 러시아와 정도로 멀긴 하다. 고민을 해보아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밀려오는 불안감을 꾸역꾸역 집어넣다가 결국엔 미뤄두기로 했다. 이대로는 여행의 모든 일정을 망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현실로 돌아갈 시간은 한참 남았다. 지금 와서 여행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갈 이유도 없다.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야 해. 눈앞의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현실을 완전히 치워버릴 순 없더라도, 지금 이 순간을 불안감으로 망쳐서는 안 된다.
늦은 오후, 호텔을 나왔다.
자이살메르 성을 한 바퀴 돌았다.
온 도시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