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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May 01. 2020

사막의 밤


카멜

사파리


인도 여행 중 가장 기대한 것이 있다. 바로 낙타 사파리 투어다. 어릴 적부터 별과 사막은 나의 로망이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고 난 뒤 인생에 한 번쯤 사막에 가보고 싶었었다. 한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기에 항상 '언젠가는' 마음속으로 묻어두고 있었다. 그런데 가이드북에서 인도에 사막이 있단 글을 읽게 되었다. 델리에서 서쪽 끝 도시 자이살메르엔 사막이 있었다.  기차로 15시간이 걸리지만 굳이 일정에 포함시켰다. 광활한 대지 위에 푸른 하늘. 어두운 밤에 끝없이 펼쳐진 별. 사막에서 1박을 보낼 수 있다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사막에서 별을 보면 무언가 내 삶이 달라질지도 모르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다행히 내가 묵은 숙소에는 개별적으로 사파리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전날 폴루에게 투어 예약을 하고 들뜬 맘에 잠 못 이루었다.


다음 날 호텔 로비에서 사람들이 모였다. 아는 얼굴 1명과 나머지 모르는 얼굴들이었다. 한국인 8명, 일본인 4명 12명의 제법 많은 인원이 함께 했다. 가벼운 인사를 하고 출발지점으로 이동하기 위해 지프니를 탔다. 사막을 이동하기 때문에, 햇빛이 가장 큰 복병이라고 하여 델리에서 산 숄더로 얼굴을 가리고, 알록달록 패치워크 바지에 샌들에 흰 양말을 신기로 했다. 영락없는 현지인의 모습이다. 20분 정도 이동하니 한 구멍가게에 도착했다. 주변에는 낙타가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사막의 길잡이들과 자신을 펩시맨이라고 소개한 사람과 어린아이 한 명이 우리와 함께했다.

체형에 따라 낙타를 한 마리씩 골라주고 낙타를 타기 시작했다. 내가 탔던 낙타는 참 하얗고 예뻤다. 긴 속눈썹에 우아한 털들. 이렇게 큰 동물은 동물원 외에선 본 적이 없는데 하루 동안 이 친구의 등에 몸을 맡겨야 했다.

낙타는 생각보다 커서 어쩔 줄 몰랐다. 허둥대는 내가 불안했는지 인도 어린 남자아이가 익숙한 듯 도와주며 함께 탔다. 각자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인도 원빈


하루 종일 낙타를 타다 보니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처음 타는 탓에 바짝 긴장하여 몸이 굳어있었던 탓이다.

나와 함께 낙타를 탄 아이는 초등학생처럼 보였다. 익숙한 듯 낙타를 다루는 것으로 보니 어린 시절부터 이 일을 한 듯하다. 한국어로 자신을 인도 원빈이라고 설명했다. 알고 보니 EBS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붙여진 별명이라고 하였다. 한국어를 어찌나 잘하던지 귀여운 말 재치에 무서웠던 긴장감이 없어졌다. 아이팟을 신기하게 보더니 이리저리 동영상을 찍기도 하고 여러 어플을 눌러보기도 했다.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 거의 저녁이 다 되어서야 고운 모래가루가 보였다. 낙타에서 내려 나는 아이처럼 맨발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장난도 치고 사진도 찍었다. 주변이 온통 모래였고 그 위는 푸른 하늘이었다.






사막의 밤


해가 지고 나니 추위가 찾아왔다.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거기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반나절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제법 함께한 이들과 친해졌다.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왜 인도에 왔는지부터 시작해서 진지한 이야기까지도 술기운에 나왔다. 일본어를 할 줄 알다 보니 일본인들과도 친해졌다. 시코쿠에서 의사를 하는 켄씨. 명문 쿄토대를 졸업하고 도쿄에서 4월부터 신주쿠를 일하게 된 아키라 씨.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사진작가 까지도. 딱 한번 만난 인연들이었지만 멀리 떨어진 그 순간에 함께 했단 것이 신기했다. 제법 오랜 시간 이야기를 하다 각자의 간이침대로 누었다.  








고요했다. 각자 술에 취해 한두 명씩 잠이 든 것 같았다. 나는 사막 한가운데에 누워있는 게 실감 나지 않았다. 술을 먹었음에도 정신은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앞에 수많은 별이 펼쳐져 있는 순간은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장면이었다. 이 순간의 감정이 영원하길 바랬다. 눈앞에 장엄한 광경을 담을 수 없어 아쉬웠다. 어두운 밤하늘에 촘촘히 박혀있는 별들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떨어지는 유성을 세어보다가 잠이 들었다.


새벽 녘 잠 기운에 눈을 살짝 떴을 때

별들이 환하게 비추고 있는 그 순간을

나는 여전히 잊지 못한다.




이후 류시화 시인이 한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질문 마지막 부분에 독자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었는데 마음에 와닿았다.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시를 읽으시길 바란다. 그것이 ‘영혼의 돌봄’이다. 우리의 눈은 활자를 읽어 내려가지만, 그때 우리의 영혼은 세상을 읽어 내려가고 풍요로워진다. 나는 우리가 “영혼을 가진 육체가 아니라 육체를 가진 영혼”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인도의 라자스탄 지역을 여행한 사람이라면, 낙타 사파리를 하면서 사막에서 텐트를 치고 하루나 이틀 자본 적이 있다. 자정 너머 밖으로 나오면 별들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단단하게 못과 콘크리트로 고정된 지붕, 단단히 동여맨 관념들에서 벗어나 내 눈동자 속에 활자로 흐르는 별들의 반짝임을 갖는 것이 독서다.




[나 홀로, 인도]

프롤로그

혼자 떠나보기

한밤중의 델리

그래도 혼자보단 셋

Old and New

다시 혼자

호텔 타이타닉

집시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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