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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Apr 26. 2020

호텔 타이타닉

기차에서

아침을


기차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인도인 밖에 없는 이 공간에  한국인 남자 한 명이 통로를 지나치다 나에게 다가왔다. 어디 가냐고 묻는 말에 자이살메르로 향한다고 했다. 본인과 한국 여자 2명 역시 그곳으로 향한다고 했다. 그렇게 두 번째 여행 메이트를 만났다.


자리를 옮겨 그분들이 있는 곳으로 합석했다. 보통 외국인은 따로 기차 칸에 붙여 예약해주는데 왜 따로 혼자 앉아있었냐고 했다. 예약할 때 내가 설명을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언니들 두 명은 미대 출신이며, 인도를 몇 번이나 여행해본 프로 여행자였다. 남자는 요리를 전공으로 한다고 했다. 한 언니는 인도여행기에 대한 책을 내기도 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그 책을 읽었는데, 꿈 많고 좌충우돌인 언니의 옛 모습을 읽을 수 있어 즐거웠다. 자이살메르로 향하는 기차에서 인도 여행에 대한 무한 사랑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곳이 좋았으며, 어떤 사람들과 만났는지. 그들의 여유로움에 며칠 되지 않은 나 마저도 남은 인도 일정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수다가 끊이지 않던 도중 나에게 숙소는 구했냐고 물었다. 사실 구하지 않았다. 예약을 하지 않고 가이드북에 소개된 게스트 하우스를 돌며 방이 있는지 물어볼 셈이었다. 인도 모든 숙소 예약을 이런 식으로 했는데, 통했다. 다만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방법이 다 통할 줄 알았다. 가능한 곳은 대부분 없었다. 언니들은 본인이 아는 숙소가 있으며 아마 방이 남아있을 거라고 했다. 나 역시 내리자마자 허둥지둥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러겠다고 했다.





여행 일기 표지에  INDIA 를 INIDA로 썼다. 쓰고나자 스펠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나란 애는 원래 이렇다.




호텔 타이타닉


타이타닉 호텔은 사실 호텔은 아니다. 게스트하우스다. 왜 타이타닉인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주인이 취향이 반영된 이름일 것이다.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깔끔한 건물이다. 주인인 폴루는 한국어가 유창하다. 어떻게 이렇게 잘하는지 물어보았더니 한국인 손님에게 귀동냥으로 배웠다고 한다. 언니들과 아는 사이라서 폴루가 직접 픽업을 나왔다. 차 안에서 잘 지냈냐는 말과 함께 유쾌한 대화가 오갔다.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몸을 눕혔다. 하루 종일 기차를 타본 건 처음인지라 온몸이 쑤셨다. 천장을 바라보다 또 창가를 바라본다. 인도에서 대부분의 시간은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는다. '멍 때린다'는 말이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인도는 관광지를 찾아다니거나 쇼핑을 하는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워있다가 싫증이 나면 루프탑에 올라가 먼 풍경을 바라본다. 그것도 싫증이 나면 낮잠을 잔다.






루프탑 레스토랑은 타이타닉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다. 인도 게스트하우스는 옥상에 대부분 식당이 있다. 식당이라고 해도 가끔 라시 한 잔을 시켜놓고 멍 때리는 곳이기도 하다. 외부 음식에 큰 기대를 하지 않은 나는 거의 옥상에서 먹었다. 레스토랑 주방장인 가지는 꽤나 한국음식도 훌륭하게 만들어서 영 인도음식이 안 맞았던 나에게 단비 같은 존재였다.


인도는 참 신기한 나라다. 가는 도시마다 각각의 색을 가지고, 매력을 뽐낸다. 사막이 맞닿아있는 이 곳. 자이살메르. 호텔도 상점도 모든 것이 델리와 참 달랐다. 좀 더 여유가 있는 거리, 옛 모습이 좀 더 남아 있는듯한. 햇빛도 공기도 모든 것이 나를 참 편안하게 만들었다.




   

폴루와 가지


타이타닉의 오너 폴루는 내가 가진 인도인의 고정관념을 깬 첫 인도인이다. 재능도 많고 사람들에게 친절하다. 오토릭샤꾼에서 시작해서 이 호텔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그가 가진 친절함이 무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인도 사람에게 마음을 꾹 닫고 있었는데 인도인과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 줬다. 레스토랑의 셰프 가지는 조용하지만 상냥했다. 서툰 한국어였지만 따스함이 느껴졌다.


인도에는 카스트 제도가 아직도 있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그 사람에 따라 계급이 나눠지는 것이다. 계급마다 사람들에 대한 태도도 달라진다고 한다. 특히 시골에 가면 계급별로 구역을 나누어 살고 있다고도 했다. 외국인인 나는 해당사항이 없으나 주인인 폴루와 가지는 계급이 다르다. 태어나자마자 사람의 신분을 부여받는 건 어떤 느낌일까. 지금의 나로선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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