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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Jan 20. 2024

1인칭 관찰자 시점

눈을 뜨니 지하철 문은 열려 있었고 오래도록 닫히지 않았다. 바깥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얼굴 정면으로 부딪혀 나는 몸을 더욱 동그랗게 웅크리며 눈을 다시 감았다. 그러다 문득 지하철에 나 혼자라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몸에 불이라도 붙은 듯 헐레벌떡 열차 밖으로 뛰어나오자 인천이라는 푸른 두 글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플랫폼을 가득 메우는 환한 형광등 불빛 너머에는 컴컴한 어둠이 가득했다. 손에 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가지고 온 가방과 휴대폰을 마지막에 본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을 더듬어도 잘 생각나지 않았다. 예전에 까먹고 빼놓지 않은 체크카드 한 장을 뒷주머니에서 찾은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돈이 얼마나 남았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이 카드로 지하철을 탔으리라. 플랫폼에서 시간을 확인하니 열두 시 오십 분이었다. 텅 빈 계단을 비틀거리며 올랐다. 개찰구가 보이는 쪽으로 몇 걸음 옮기다 다리가 꼬여 중심을 잃자마자 회색 바닥이 내 얼굴을 덮쳤다. 바닥의 냉기가 볼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듯했고, 곧이어 누군가에게 주먹으로 한 대 맞은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누군가 보고 있지도 않았을 텐데도 나는 재빨리 아무렇지 않은 척 일어나 술은 한잔도 먹지 않은 듯 개찰구를 빠져나왔다.   

버스는 모두 운행종료되었고 주변에 물어볼 사람은 없었다.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자 이 세상에 나밖에 없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적막만이 흘렀다. 술기운에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눈꺼풀은 계속 감겼다. 이대로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때 멀리서 하얀 불빛이 보였다. 우주선 같은 기계음이 점점 커지더니 빈차 표지등을 켠 택시가 다가와 멈췄다. 

"어디까지 가세요?"

나보다 열 살 정도 어려 보이는 남자가 운전석에서 물었다. 행선지를 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타라고 했다. 새 차 냄새가 훅 코끝에 들어왔다. 차는 조용히 움직였고 나는 등을 기댔다. 푹신한 가죽 시트에 등을 기대니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카드에 돈이 모자라도 사정을 말하고 잠깐 집에 들어가서 가져오겠노라고 말하면 믿어주지 않을까.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이해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창문에 서리가 끼어 밖이 잘 보이지 않았다. 흘러내리는 물방울의 궤적을 눈으로 좇다가 몇 시간 전 현준과 나눴던 대화가 마치 광고 팝업창처럼 불쑥 튀어 올랐다. 헤어진 여자친구 때문에 괴로워하던 나를 현준이 불러 마지못해 나간 약속이었다. 말없이 몇 시간 동안 술만 마신 나는 이제 다신 연애 따윈 안 하겠다고, 불필요한 감정소비에 더 이상 인생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얼굴이 벌게져 고래고래 소리를 쳤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더 이상 못 들어주겠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는 현준의 표정은 기억이 나기도 하는 것 같다.

왼쪽 볼의 고통이 다시 저릿했다. 큰 멍이 들면 어떡할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언젠가 이렇게 볼이 아팠던 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맞았었는데, 그게 누구였더라. 그런 생각을 하면서 눈꺼풀은 다시 무거워졌고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시 눈을 뜨자 암막커튼으로 가린 듯 컴컴했다. 내 몸은 바닥에 붙어있는 상태였고 볼에 까끌까끌한 작은 돌이 닿아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보아 아스팔트 바닥 같았다. 전신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는데 뒤통수를 제외하고 물방울들이 몸에 툭툭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순간 귓가에 피가 몰려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들려고 했으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몸이 안 따라주는 것이 이상해서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 검은 장막이 반으로 갈라져 빛이 흘러왔고 손가락 몇 개가 눈에 보였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왔다. 

"이서야, 괜찮아?"

익숙하지만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어디서 들었더라. 그런데 이서라니, 내가 아는 이서는 오래전에 사귀었던 그녀밖에 없는데. 고개가 자연스럽게 들어졌고 나는 한 얼굴과 마주했다.      

그런 분명 내 얼굴이었다. 평소 거울에서 보는 모습과 좌우 대칭으로 보여 익숙하진 않은 얼굴 형태지만, 분명 나였다. 다만 처지지 않은 새하얀 피부였고, 해마다 부풀어 골칫덩이였던 아랫배는 탄탄했다. 그는 내가 10년 전 자주 했던 쉼표머릴 하고 있었다. 그런 그 사람이 나를 향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산을 들고 몸을 앞쪽으로 굽힌 채로.  

"많이 아프겠다. 멍들 거 같은데"

그제야 나는 그 목소리가 가끔 친구들이 찍은 동영상에서 내가 말을 할 때 흘러나오는 목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목소리를 내려고 해도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내가 생각지도 않은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파. 머리도 울려"

여자의 목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헬륨을 마셔 목소리가 바뀐 것처럼 내 목소리에 스스로 놀랐다. 그 이후에도 빠르게 여러 번 내 생각대로 몸을 움직이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감각을 느끼는 것 외에는 할 수 없었다. 눈앞에 4D 영화가 일인칭으로 흘러나오고 있다고 할지라도 표현하기 힘든,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공유하고 있는 몸을 어린 내가 부축했고, 몸이 힘을 주어 일어났다. 그리고 한동안 아래를 응시했다. 무릎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 나는 샌들 위에 있는 빨간 매니큐어가 더 신경 쓰였다. 무릎에서 피가 길게 흐르고 있었다. 어린 나에게 기댄 몸은 근처의 편의점까지 뚜벅이며 걸었고, 하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았다.  

편의점 간판을 보자 머릿속에서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내가 이서에게 고백했던 날에 지나쳤던 편의점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떠올린 적 없었던 기억이었음에도 마치 예전의 감각이 파도처럼 단숨에 밀려와 그때의 상황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같은 대학교의 신입생이었던 우리는 우연히 연극 동아리에서 알게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던 나는 같은 고향에서 온 그녀에게 금방 친근감을 느꼈다. 더군다나 둘 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했기에 자주 서로를 불러 저녁을 같이 먹었다. 이서는 쾌활하고 명량한 성격에 술도 곧잘 먹어서 동아리 모임을 빠지는 일이 없었고 나도 그녀를 따라 자주 술을 마셨다. 그날도 동아리 사람 선배가 연출한 연극을 보고 뒤풀이를 갔을 때였다. 술자리에서 하는 대부분의 대화는 1분 뒤에 공기 중에 사라져도 상관없을 만큼 시덥잖았지만, 이서는 자주 웃었고 나도 그녀를 따라 웃었다. 막차가 끊기는 시간이 되자 사람들은 하나둘 사라졌다. 그리고 결국 이서와 단 둘이 남았다. 술집을 나오자마자 여름 비가 내리기 시작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가방에서 접이식 우산을 꺼내 이서와 함께 나란히 썼다. 그리고 같이 택시를 타러 길가에 서 있었다. 그러나 도무지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한 시간 내내 위치를 바뀌어 가며 택시를 기다렸지만, 빈 차를 찾을 수 없었다. 길가에 한 시간 가까이 서있을 때였다. 이서가 말을 꺼냈다. 

"그냥 걸어서 갈까?" 

"그럼 시간은 걸릴 텐데?"

"영원히 택시를 탈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래. 그전에 아침이 먼저 올걸. 차라리 걸으면서 아침공기를 맡으면서 술을 깨는 게 더 좋겠어"

그녀는 자주 이런 식이었다. 갑자기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바로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것이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는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마치 이 순간만을 살 것처럼 사는 게 이서였다. 막차가 끊길 것 같아도 기분이 좋으면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자 하고, 더 마시는 그녀였기에 그런 점이 신경 쓰여서 지금까지 계속 그녀 옆에 남아있기도 했다. 이전에도 결국 내키지 않아도 그녀의 제안에 끄덕였던 나는 그날도 이서의 말에 따랐다.    

우리는 이날 밤 새벽까지 함께 걸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우리는 녹색 도로 표지판을 보며 방향을 어림잡았다. 주황색 가로등만 있는 다리 옆 골목을 걸을 때는 어둑해서 무서웠는데도 그녀 앞에서는 아닌 척 무심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세 시간이 지났을까. 걷다가 다리를 접질리게 된 이서를 나는 결국 등에 업고 걸었고, 어렴풋하게 푸른빛이 드러난 새벽이 돼서야 집에 도착했다. 등 뒤에 닿았던 그녀의 온기가 어떤 열정을 불러일으켰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집 앞에서 나는 그녀에게 고백했다. 새벽빛에 비친 이서가 무척 예쁘게 웃었던 것 같다. 그녀와 새벽 공기를 함께 마시며, 술이 덜 깼지만 정신은 이상하게 또렷한 채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5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처절하게 서로의 얼굴에 욕을 하며 끝이 났다.

그런데 나는 왜 지금 헤어진 여자친구가 아닌 이서를 만난 첫 순간으로 돌아가 있는 걸까. 그것도 내가 아니라 이서가 된 몸으로. 목소리를 내려고 해 보았으나,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의 감각으로 숨을 쉬었고, 몸의 떨림이 느껴졌다. 다만, 나는 이서의 생각은 들리지 않았다. 내가 그녀의 감각을 공유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은 이서에게 공유되지 않는 것 같다. 마치 운전석 옆에 앉아 달라지는 풍경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듯이 밖을 볼 뿐이었다. 나는 내가 공유한 몸이 본 한밤중의 길거리의 풍경을, 어린 내 모습을 보았다. 얼큰하게 취해 볼이 빨갛고 어딘가 쑥스러운 듯한 내 모습이. 분명 그때의 상황이다. 


*


어린 나는 편의점 문을 열고 갔다가 반창고를 손에 들고 왔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물티슈를 꺼내 상처 부분에 뭍은 검은 모래를 털어냈다. 무릎이 따끔거렸다. 그 위에 정사각형의 밴드를 붙어줬고, 볼에도 똑같이 밴드를 붙였다. 그리고 어린 내가 말했다. 

"그냥 우리 여기서 택시를 타자"

이런 말을 내가 했었던가, 이상하다. 우린 분명 계속 걸었고 여섯 시가 되고 나서야 집 앞까지 도착했다.  중간에 이서가 더 걷지 못하겠다고 말하고 나서야 업어주긴 했었지만. 분명 나는 택시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하더라도 그걸 이서에게 말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어린 나는 진지하고 단호하게 말을 하고 있었다. 

고개가 좌우로 흔들렸다. 따끔하긴 한데 괜찮아. 못 걸을 정도도 아닌데, 뭘. 이서의 목소리게 몸의 진동을 타고 느껴졌다. 이렇게 다정하게 말할 수 있었구나, 아니 예전에는 늘 그렇게 이서는 말했을지도 몰랐다. 내가 지금 기억하는 이서는 늘 건조하게 대답하는 거나,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던 것 밖에 없었다. 마지막 헤어질 때는 차 안에서 자신의 휴대폰에만 얼굴을 고정한 채 건성건성 답을 하며,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헤어지자는 말에 그래라고 문을 여고 나갔었다.  

그때 노란 택시가 우리 앞으로 천천히 지나갔고, 어린 내가 따라가자 택시가 멈춰 섰다. 이서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택시 문이 열렸다. 노란 택시 안에 나는 먼저 타고나서 이서를 불렀다. 왜 상황이 바뀐 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런 상황이라면 미래가 바뀔까. 그렇다면 지금도 계속 후회하는 우리의 연애도 시작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걸까. 

택시에서는 시트러스 계열의 방향제 냄새가 났다. 어린 나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왜 내 기억과 다른지는 모르지만 차라리, 이대로 끝나는 게 좋을 지도 모른다. 여기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지도 있을 테니까. 우리는 그저 친구로 잘 지내고, 나는 고백하지 않은 채로 졸업을 할지도 모른다. 사실은 그게 더 나다운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문득 몸에서 심장소리가 커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서의 시야는 어린 나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다. 곧이어 왼쪽 손이 들렸고 조금 멀리 떨어진 옆의 손 위에 다가갔다. 그리고 다시 시야는 창가로 향했다. 노란 가로등 불빛이 선으로 이어진 것처럼 보였다. 귓불이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포개진 손은 택시가 흔들려도 떨어지지 않았다. 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  

그녀는 알까. 나와의 연애가 정말 최악으로 끝날 것이라는 것을. 서로의 인간관계를 망치고, 한 번도 듣지 못할 상처되는 말을 하고, 결국에는 영원히 상대방의 행복을 저주하며 끝날 것을. 나는 그 이후에도 여자 친구를 사귀었지만 사이가 틀어질 때마다 이서의 얼굴이 떠올렸다. 그녀와 다른 스타일의 여자를 만날 때도, 그랬다.

그제야 그녀와의 연애로 인해서 모든 사랑의 에너지를 다 소모해 바닥이 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녀 이후에 이어지는 무미건조하게 연애들에서 그 어떤 감정도 진지해질 수 없었던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만약 내가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이 일은 없는 일이 될 수 있는 걸까.  내가 그의 말을, 이 관계를 어떤 힘을 빌어 어긋나게 만든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닐까. 나는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듯 외쳤다. 그만두라고,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택시에서 내리자 비는 이미 그쳐있었다. 암청색 밤하늘에 둥그런 달빛에 비친 구름이 비쳤다.  마주 잡은 손에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땀이 찬 듯 조금 손이 미끌거렸다. 이서가 웃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젊은 나의 얼굴을 보았다. 한 번도 보지 못한 환희에 찬 얼굴이었다. 저런 표정으로 이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


눈을 다시 뜨자 택시 유리창에 기대고 있었다. 옆에는 이서도, 젊은 나도 없었다. 앞에는 모니터에서 오래전 유행했던 드라마를 힐끗힐끗 보는 택시 운전수만이 있었다. 창밖을 둘러보니 환한 가로등이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강가에 반사된 불빛들이 반짝반짝 빛났다. 멀리서 검은 산이 보였다. 내가 모르는 고속도로를 그는 달리고 있었다. 마치 이 길을 눈감고도 갈 수 있다는 듯이 무심하게 운전했다. 내가 깼다는 걸 알아챈 듯 그는 나에게 갑자기 말을 걸었다. 

"아는 길로 가고 있으니까 안심하고 주무셔도 됩니다"

다시 눈이 감겼다. 아무런 꿈을 꾸지 않았다. 

"손님 다 왔어요"

나를 흔들어 깨우는 택시 기사의 얼굴이 보였다. 머리가 아팠고 땅에 부딪힌 얼굴이 여전히 얼얼했다. 택시 기사 혼자 잘 갈 수 있겠냐며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며 카드를 건넸다. 다행히 카드에 돈은 충분했다. 카드를 카드를 건네받은 다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니 집 앞이 아니었다. 택시 유리문을 두드렸다. 택시 운전수는 놀란 눈으로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여기로 와달라고 했잖아요."

"제가요?"

"네.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이곳은 분명 이서와 함께 있었던 그곳이었다. 중앙에 있던 편의점 그리고 저 가로등 끝에서 이서가 넘어졌었다. 멍하니 서있는 나를 보더니 운전수가 말했다.

"다시 태워다 드려요?"

나는 고개를 저었고 운전수는 유리문을 다시 올리며, 바람이 차니 감기 조심하라는 말을 했다. 택시등의 불빛이 켜졌고, 백라이트의 빨간 불빛이 점점 작게 보이다 결국 사라졌다. 네온사인에 반사된 아스팔트 바닥이 보라색으로 빛이 났다. 볼의 통증은 가신 것 같았고 술이 좀 깬 듯했다. 서늘한 바람이 살갗에 부딪혀 열이 사그라들었다.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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