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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May 17. 2020

버터 계란 간장밥

소소하지만 따뜻한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다. 중불로 20초를 기다린다. 대충 휘저어 푼 계란물을 붓는다.
따끈한 밥 한 공기를 떠서 중앙에 동그랗게 홈을 만든 뒤 작은 버터 한 조각을 넣는다.  
계란이 익을 때쯤 밥공기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짭조름한 간장 한 스푼.

 

취업준비를 일본에서 시작했다. 4학년에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고, 대학교 세미나에 들었다. 세미나 친구들과 팀 과제도 하면서 친해졌는데, 3학년 말이 되면 그들은 일제히 취업전선에 뛰어든다. 

나는 덩달아서 같이 뛰어들었다.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4학년 취업준비생이다. 당장 나는 뭐라도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들었다. 당시 환율이 1500원대였으니 신입사원 기본급 20만 엔이라는 금액은 매력적이기도 했다.


채용시스템은 비슷하다. 이력서를 넣은 뒤, 시험을 보고 면접을 본다. 면접은 2차, 3차까지 봐야 한다. 기업에서 졸업예정자에게 먼저 연락이 오는 경우도 있긴 하다. 하지만 나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게임이 안 되는 시장이다. 일본 대학 출신도 아니고 교환학생으로 1년 조금 넘게 산 정도로 이력서를 내놓았으니까. 그것도 유명한 대기업 위주로 지원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그 정도로 밖에 찾아보지 않아서. 


수십 장의 이력서를 넣고 몇 군데에서 합격 연락이 왔다. 통과해도 문제였다. 시험은 그렇다 치더라도 면접이 문제였다. 얼어붙은 나 자신을 데리고 면접실 앞에 섰다.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면접 예상 답안을 외워갔지만 소용이 없었다. 손에 땀이 나고 떨리는 목소리로 몇 분의 대화를 마치고 끝이 났다. 


결과는 참패다. 자괴감에 빠졌다. 1년 동안 일본에서 도대체 뭘 한 거지. 아니 대학생활은 어떻게 한 거야. 면접 때 해야 할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뭘 내세울 수 있을지 억지로 적어놨던 면접 예상용 답안도 부질없이 느껴졌다. 일본어가 당연히 서투르고 부족한 게 정상인데도 다른 일본인과 나의 발음조차도 비교하기 시작했다. 괜히 시작한 걸까. 인생에서 내가 이렇게 하찮게 느껴진 적인 있었던가. 한 사람 밥그릇을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두를 질질 끌고 풀이 죽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먹고 싶은 의욕도 없다. 흰 냉장고를 열었다. 텅 비었다. 있는 거라곤 계란 몇 알과, 버터 몇 조각.

며칠간 마트를 가지 않았다. 대충 있는 걸로 배나 채워야 할 것 같아 프라이팬을 꺼냈다.




버터 간장 계란밥은 단순하고 심심한 맛이다. 참기름을 넣으면 더 풍미가 살 텐데, 자취 시절에는 참기름이 없었다. 그래도 그게 맛있었다. 자취생활을 10년이 훌쩍 넘기고 지금은 결혼을 했지만, 나는 아직도 가끔 혼자 버터 간장 계란밥을 먹는다.

먹으면 그 유학시절이 자연스레 생각이 난다. 스스로 할 수 없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던 유학생활 끝자락에서 서투른 어린 시절의 음식. 괜히 코끝이 시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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