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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탕

아이와 영도3

by 요니

본가 근처에 장수탕이라는 오래된 목욕탕이 있다. 어린 시절 엄마와 목욕하러 가던 곳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과일 장사를 해서 주말에도 가게를 열었다. 일 년에 쉬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여서 엄마와 놀러 간 기억이 많이 없다. 동생도 둘이나 더 있었기 때문에, 둘이서 무언가를 했던 적도 거의 없다. 다만, 항상 목욕은 둘이 갔다. 그래서 나는 장수탕이 좋았다. 15년 동안 서울에서 한 번도 목욕탕을 찾지 않았는데, 부산에만 오면 목욕탕에 가고 싶어진다.


이번에 부산에 있었을 때도 그랬다. 도아를 재우고 엄마에게 말했다. 장수탕에 가고 싶다고. 도아는 한 시간이 넘게 잘 테니 둘이서 가자고 했다. 혹시나 깨면 남동생에게 부탁하면 되니, 이때 아니면 언제 가겠냐는 내 말에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집 주변이 많이 바뀐 만큼 장수탕도 변해 있었다. 건물 옆에 있던 금목서 한 그루는 사라져 있었고, 목욕탕 주인도 바뀌었다고 한다. 라커룸은 최근에 바뀌었는지 새것 같았다. 하지만 오래된 건물의 구조나 목욕탕 냄새는 여전했다. 나이 든 아줌마들이 밖에서 수다를 떠는 풍경도 오랜 기억과 같았다. 목욕탕 안은 더욱 그대로였다. 짙은 바다색 타일의 온탕과, 바닥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냉탕. 뿌연 수증기 때문인지, 창문을 타고 흐르는 푸른빛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몸을 가볍게 씻고 온탕에 들어갔다. 탕 중앙에서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왔고 나는 다리를 쭉 뻗었다. 늘 샤워만 하지만 나는 탕에 들어가는 걸 좋아한다. 그러면서도 왜 집에서는 한 번도 탕목욕을 하지 않는 걸까. 이런 생각을 이어나가보니, 어느새 몸은 땀으로 흥건했다. 자리에 돌아와서 몸을 씻으려는데 엄마가 이태리타월을 양손에 낀 채 등을 대라고 했다. 나는 다 컸다며 창피해하면서도 결국 등을 내어줬는데, 오랜만에 엄마의 손길이 닿는 게 낯간지러우면서도 좋았다. 이번에는 내가 할게,라며 엄마의 등을 밀었다. 엄마는 피부가 연약해서 금방 빨개진다. 점점 빨개져 가는 등을 밀면서 이상하게 도아 생각이 났다.


목욕탕에서 돌아오니 도아는 남동생 품에 안겨 잠들어 있었다. 우리가 나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서 깼다고 한다. 내가 사라진 것을 깨달았는지 내내 울다가 이제 막 잠에 든 참이라며, 남동생은 고개를 저었다. 그제야 나는 목욕탕에 간 지 두 시간이나 지났다는 걸 깨달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뜬 도아는 나를 멍하게 바라보다가, 베시시 웃었다. 기저귀를 갈며 도아에게 말했다. “미안해, 엄마도 우리 엄마랑 같이 있고 싶었어. 도아는 조금만 커서 목욕탕 같이 가자.“ 도아는 눈을 꿈벅거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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