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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머니가 된다

by 요니

임신했을 때 가족과 관련된 영화를 몰아 본 적이 있다. 그중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있었다. 짧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병원의 실수로 태어나자마자 두 아이가 바뀌었다. 그 사실을 모르고 살던 가족은 6년이 지난 후 진실을 알게 된다. 주인공인 아버지는 다른 사람에게 길러진 자신의 아이를 만나고 고민에 빠진다. 같이 살았던 아이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얼굴을 닮은 아이와 살 것인가. 핏줄이냐, 함께해 온 시간이냐, 복잡한 문제다. 감독은 부성애라는 것이 어떤 식으로 생겨나는가에 대한 고민으로 영화를 찍었다고 했다. 당시 영화를 봤을 때 아버지의 선택에 고개를 끄덕이긴했지만 그뿐이었다. 태동이 느껴지는 배를 쓰다듬으면서도 하나의 생명이 내 안에 있다는 걸 실감하지는 못했으니 말이다.


초음파로 처음 심장 소리를 듣고 눈시울을 붉혔던 남편과 반대로 ‘진짜 생겼군’이라는 생각 정도였다. 부부 모두 원했던 임신이지만 막상 되고 나니 무덤덤했달까. 화면에 비치는 초음파 영상을 보면서도 그 속이 내 배는 아닐 것같다는 거리감이 있었다. 매번 가는 검사에서도 ‘이게 허벅지 뼈네요’, ‘지금 입을 벌려 양수를 먹고 있어요.’라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의사 선생님과 화면을 보면서 ‘신기하네요’ 정도의 반응이었다. 오히려 하루가 다르게 변했던 내 몸이 피부로 와닿았다. 당시 늘 피곤해 잠이 오고 멍했다. 느껴보지 못했던 고약한 냄새 때문에 냉장고를 열 수조차 없었다. 나 때문에 라면도 눈치 보며 먹는 남편이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배가 점점 불어나 배꼽이 늘어나는 걸 보면서 몸이 그만 무거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에 대해서도 기대보다는 막연함이 더 컸다. 한편으로는 나 자신이 아닌 존재를 헌신적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부모님이 내게 해준 만큼 아이에게 해줄 자신이 없으니까. 정작 자신은 고무신을 신으면서 내게 늘 좋은 운동화를 사주던 엄마와 같이, 그럴 수 있을까. 부모님과의 기억이 떠오를 때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출산은 짧고 강렬했다. 순식간에 지나갔다. 뿅 하고 내 앞에 나타난 작은 존재를 보며 ‘이 아이가 내 뱃속을 툭툭 치던 그 아이라고?’ 싶었다. 아이를 귀여워할 새 없이 생명 하나를 살려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다. 2시간마다 분유와 모유를 먹였다. 침대의 조명등은 밤새 꺼질 줄 몰랐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심해졌다. 어제 무엇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이 하루가 빨리 지나가길, 아이가 조금만 더 크길 바랐다. 아이를 감당하는 게 싫지는 않았지만 좋지도 않았다. 확실한 건 피로한 일이었다. 이 모든 육아를 버틴 선배들이 대단해 보였다. 내가 아닌 누군가를 돌보며 사는 일이 전에는 없었으니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다. 3개월 동안 태어난 몸무게의 두 배를 훌쩍 넘어섰다. 그리고 조금씩 내 존재를 알아가는 듯했다.


이제는 한시름을 놓아도 되겠다 마음을 놓을 때쯤이었다. 갑자기 아이가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원인으로 추측되는 것은 많았으나 답은 몰랐다. 열은 없었지만 계속 설사는 멈추지 않았다. 다음 날 병원에 갔다. 의사가 배에 청진기를 대보더니 장염이라고 했다. 약을 처방해 주고 며칠을 더 지켜보고 심해지면 설사 분유를 먹이라고 했다. 약은 효과가 없었다. 엉덩이를 씻기고 말리고 기저귀를 채우면 다시 또 엉덩이를 씻겨야 했다. 사흘이 넘도록 이런 일이 지속되자 아이는 기저귀를 벗기기만 해도 울기 시작했다. 약을 먹어도 설사는 멈추지 않았고 새빨갛게 짓무른 엉덩이에 약을 발랐지만 차도가 없었다. 칭얼거리는 아이를 들고 씻기고 말리는 일이 반복되자 나는 점점 지쳐갔다.


하루 종일 아이의 엉덩이를 씻기며 보낸 탓이었을까. 소파에 앉아 천을 대고 아이 엉덩이를 말릴 때였다. 아이가 온몸을 버둥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그때 무언가 머릿속이 뚝하고 끊겼다. ‘이제 그만 좀 칭얼대’라고 소리쳤다. 아이는 여전히 울었다. 남편이 “왜 아이한테 짜증이야”라며 아이를 데려갔다. 고개를 떨궜다. 아이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모든 걸 다 포기해 버리고 도망치고 싶어졌다.


우두커니 앉아있는 내게 따뜻하고 작은 손길이 닿은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기저귀를 차고 온 아이가 내 다리에 몸을 비볐다. 고개를 들자 아이는 티 없이 맑은 눈동자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랬다. 항상 아이는 내게 다가왔었다.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을 무렵부터 늘 내 곁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잠깐만 멀리 가도 온 힘으로 기어서 곁으로 왔다. 누구에게 안겨 있어도 팔을 벌리면 와락 안겼다.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미소를 보였다. 사랑은 주고 있는 게 아니었다. 아이가 내게 주고 있는 것이었다.나는 아이를 다시 안았다. 품에서 코를 킁킁대던 아이는 고개를 들고 물끄러미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손을 뻗어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나는 아이 이마에 뽀뽀를 했다. 그리고 ‘화내서 미안해’라고 속삭였다.


한때 누군가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게 별로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누구누구 맘이라고 붙이는 것도 영 싫었다.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나 자신으로 불리고 싶다.’라는 오래전에 주워들은 말이 머릿속에 박혀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도아의 엄마’라는게 좋다. 보호자이자 양육자가 되어서가 아니다. 아이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존재라는 증거 같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기분을 예전에는 몰랐다. 엄마는 아이의 무조건적인 희생해야 하는 존재로만 치부했었다. 책임감을 가지고 해내야 하는 것. 그래서 임신을 미루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아이가 주는 사랑이 더 크다는 것을. 그 사랑이 엄마로서의 힘이 된다는 것을. 한 사람만 무조건 주는 사랑이 아니었음을.


현실에서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같은 상황에 빠질 확률은 높지 않다. 나의 어릴 적과 꼭 닮은 아이를 보면 더욱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내게 똑같은 상황이 일어나더라도 주인공과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주인공의 마음을 깊이 이해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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