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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를 덕질중

by 요니

오래전부터 나는 무언가 하나에 빠지면 깊게 파고들곤 했다. 만화책이 그랬고 아이돌이 그랬다. 학생 시절에는 학교를 마치면 항상 만화책 대여점으로 향했다. 유명한 소년 만화와 순정 만화는 모르는 것이 없었다. 마음에 드는 책은 다시 빌려 보기도 했었다. 친구들과 코믹월드를 가기도 했었는데 처음에 눈이 휘둥그래졌던 기억이 난다. 남포동 헌책방 골목에서 몇십 권의 만화책을 사서 책상 한켠을 만화책으로 채우기도 했었다.


만화책만큼 아이돌도 좋아했다. 한번 빠져들면 시간의 대부분을 아이돌에게 바쳤다. 지금까지 나온 각종 영상을 다 찾아보고, 라이브는 꼭 챙겼으며, 팬클럽에도 가입했다. 비공식 굿즈도 구매하려고 트위터에 계정을 만들기도 했다. 고3 시절에는 같은 덕질을 하는 친구와 아이돌 팬사인회를 가려고 2시간 넘게 버스를 탄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빠졌었나 싶지만, 당시에는 그게 인생의 빛과 소금이었다. ‘나를 파괴하러 온 나의 구원자’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했으니 말이다.


요즘은 그런 열정을 아이에게 쏟는 것 같다. 아이와 외출을 하면 인생네컷을 같이 찍는다. 네임스티커 기계를 찾으면 꼭 아이 이름으로 스티커를 만든다. 어린이집 가방에 달 귀여운 수제 네임택을 주문하고, 이름이 귀엽게 자수된 고리 손수건도 여러 개 주문한다. 문화센터에 가서 아이에게 코스튬을 입힐 때면 사진첩에는 수십 장의 사진이 늘어난다. 아이돌의 포토카드를 만드는 것처럼 아이 사진으로 포토카드를 만든다. 다이소에 가서도 아이 이름으로 뭘 꾸밀 것은 없는지 서성거린다. 아이가 잠들면 소파에 누워 쉰다. 쉬면서도 휴대폰으로 아이의 옛 동영상을 본다. ‘이때는 더 작았네, 너무 귀엽다’하면서. 그러다 보니 어느새 깨닫게 되었다. 지금 내가 아이를 덕질 중이라는 것을.


‘특정 인물, 콘텐츠, 취미에 깊이 몰입해 열정적으로 즐기는 활동’을 덕질이라고 한다. 그러니 역시 나는 덕질 중이 맞다. 아이에게 깊이 빠져 열정적으로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이제는 ‘엄마, 맘마, 물’ 등 특정 단어를 알아듣는 소통이 되면서 더욱더 그렇다. 아이돌의 몸짓, 손짓 하나처럼 나는 아이의 작은 행동 하나에 놀라하고 기뻐한다. 같은 덕질을 하는 남편과 매일 사진을 공유하며 항상 실물을 못 담는다는 것을 아쉬워한다. 왜 아이 낳은 사람들의 프로필과 SNS에 아이 사진으로 도배되는지 알 것 같다. 그들도 덕질 중인 것이다. 1열에서 직관할 수 있는 덕질이라서 쉽게 빠져나오지도 못한다. 아마 이번 생에 탈덕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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