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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산책

by 요니

저녁을 치우고 거실로 돌아와 보니, 도아가 이마를 창문에 대고 서 있었다. 한참 동안이나 밖을 보고 있었다고 남편이 말했다. "이제 집에 있는 게 지루한가 보다"라고 하니, "우리 산책 갈래?" 하고 그가 물었다. 집 근처에는 걷기 좋은 산책로가 있다. 결혼하고 자주 걸었던 곳이다. 달리기에 한참 빠졌을 때는 새벽에 갔다가 다시 저녁에 가기도 했었다. 나는 시계를 바라봤다. 곧 밤잠 시간이었지만 아이의 눈은 말똥했다. 남편은 아기띠를 매고 도아를 들어 올렸다.


아파트를 나와 작은 공원을 지나치고 언덕길을 오른다. 신호등을 건넌 다음,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백 년은 족히 될 큰 나무를 지나면 다리 아래 하천이 보인다. 잔잔히 흐르는 강 옆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선선한 날씨 덕분인지 달리는 사람이 많다. 우리 가족도 그 산책길 풍경에 녹아든다. 이어폰을 끼고 달리는 여자 뒤에 어느 노부부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그 옆으로 자전거가 쉭 지나간다. 귀뚜라미 소리가 찌르르 울려 퍼진다. 아기띠에 안긴 아이는 밤 풍경이 신기한지 다리를 연신 붕붕거린다. 아빠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도 반응조차 없다. 아이의 시선은 빛나는 가로등, 강아지, 그리고 테니스 치는 사람들로 이어진다.


그런 도아의 모습을 보며 나는 아이의 다리를 매만졌다.

"좋다. 그런데 도아 모기 물리지 말아야 할 텐데."

"이렇게 다리를 쉬지 않는데 괜찮겠지. 물리더라도 약 바르면 되지, 뭐."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예전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네 달이 갓 지났을 때였다. 아파트 창문 너머로 봄이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오랫동안 집에서만 있었더니 마음이 들떴다. 아이가 깨어나길 기다렸다가 밖으로 나왔다. 바람이 살랑 불었고, 나뭇가지 잎들이 바스락거렸다. 고양이 한 마리가 햇빛을 쬐며 어슬렁 기어 다니고, 까치 두 마리가 보도 블록 아래에서 무언가를 쪼아 먹었다. 벚꽃은 아직 피지 않아 봉오리만 져 있었다. 나는 아이를 안은 채 천천히 걸었다. 햇빛이 비치니 아이가 눈을 찡그렸다. 걷다 보니 하천까지 도착했다.


도로 옆에 벚꽃나무가 일렬로 늘어서 있고 그 사이에 흙길이 있다. 나는 그 길을 걸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한적했다. '오랜만에 나오니 좋네' 하며 걷고 있는데, 새끼손톱보다 작은 벌레가 아이의 어깨 위로 툭 떨어졌다. 나는 놀라 손가락으로 벌레를 튕겨냈다. 그리고 도망치듯 집으로 향했다. 자동차 배기음이 크게 느껴졌다. 신호등 소리마저 귀에 거슬렸다. 나는 아이의 귀를 막고 더 빨리 걷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일에 예민하게 굴었다 싶지만 그때 나는 그랬었다. 올해 봄만 해도 어느 것 하나 아이에게 어떤 영향이 갈지 몰라 허둥지둥댔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 지금, 심지어 잘 보이지도 않는 밤에 나는 아이와 아무렇지 않게 걷고 있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우리 부부 몸에는 벌레 물린 자국이 여러 군데 생겨 있었다. "우리가 도아 대신 물렸네" 하고 남편이 웃었다. 늦은 목욕을 하고 도아는 금방 잠이 들었다. 침대에 누운 나는 그때와 다른 간극에 좀처럼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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