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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

by 요니

담임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낮잠 이야기를 꺼냈다. 어린이집에 입소한 지 이제 두 달 가까이 되어가니 슬슬 도아도 낮잠을 재워봐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었다. "지금 스케줄이 고착되면 도리어 아이가 나중에 힘들 수도 있어요"라는 말도 덧붙였다. 여태까지 도아는 오전 아홉 시에 등원한 다음, 점심을 먹고 하원했다. 집에서 낮잠을 자고 오후는 나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렇게 다닐 수 없다는 건 나도 알았다. 복직하는 날은 성큼성큼 다가왔으니까. 그날 나는 새로 산 낮잠 이불을 세탁망에 넣었다.


그리고 오늘 낮잠 이불을 챙겨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낮잠 자는 게 힘들 수 있으니 연락을 주겠다는 선생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나왔다. 열두 시가 땡 하고 지나면, 키즈노트에 "도아가 너무 엄마를 찾으며 우네요"라고 하지 않을까. 머릿속에는 울먹거리는 도아의 모습이 그려졌다. 집에 돌아온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커피를 탔다. 아기띠는 곧장 쓸 수 있도록 의자에 걸쳐 놓았다.


커피를 들고 책상에 앉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전혀 글이 써지지 않았다. 괜스레 블로그와 브런치를 들락거렸다. 결국 오늘은 못 쓰겠구나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점심을 간단히 챙겨 먹었다. 아이의 장난감을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렸다. 이유식을 만들고 음악을 좀 들었다. 열두 시가 지난 지 한참이지만 연락은 없다. 울리는 것이라곤 보험 권유 전화뿐이다. 다시 책상에 앉았다. 나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노트를 펼쳐 펜을 들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써본다. 그 와중에도 시선이 자꾸만 휴대폰으로 간다. '정말 잘 자는지, 울지는 않는지.' 시간은 어느덧 두 시를 훌쩍 넘었다. 여전히 연락은 없다.


오랜만에 생긴 여유지만 이상하다. 마치 채소가게에서 덤으로 받은 청경채를 계속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는 기분이다. 예전에 육아가 힘들 때마다 '자유시간을 얻으면 하고 싶었던 일들을 마음껏 하면서 보내야지' 하고 긴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막상 현실이 되니 떠오르는 일도 없다. 오히려 예전에 내가 무엇을 하고 시간을 보냈던 건지 모르겠다.


되돌아보니 지금껏 나는 도아가 태어난 이후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었다. 내 뱃속에서 나와 지금까지, 계절이 여러 번 바뀔 동안 자석처럼 붙어 있었다. 내 곁에는 항상 아이가 있었고, 아이 곁에는 내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함께 붙어 있는 상태가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 같다.


오후 세 시가 되니 알림이 하나 울렸다. 알림장이었다. 오늘은 낙엽 놀이를 하고, 어린이집 놀이터에서도 놀았나 보다. 낮잠 이불을 덮고 곤히 자는 도아 사진도 있었다. 세 시 반이 되어 나는 참지 못하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다시 만난 도아는 평소와 비슷했다. 울지도 않고 조금 신나 보이는 상태. 그냥 살포시 내 품에 안기는 게 다였다. 선생님은 칭얼거렸지만 결국엔 잘 잤다고 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서 다리를 붕붕거리는 아이에게 "엄마 없어서 외롭지 않았니?" 하고 물었다. 대답은 역시 없다. 하지만 나는 아이에게 계속 말을 건다. 어쩌면, 떨어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건 아이가 아니라 나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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