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으로 바뀐 일상 중 하나는 점심을 혼자 먹는다는 것이다. 혼자 밥 먹는 게 어색하진 않다. 회사를 다니고 나서는 일주일 중 하루 날을 정해 일부러 혼자 먹기도 했다. 샌드위치나 김밥을 사 와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었었다. 점심시간을 알뜰하게 쓴다는 기분이 좋았다. 일과 잠깐 떨어지니 기분 전환도 됐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하고 나니 점심은 늘 고민거리였다. 혼자 먹어도 예쁘게 차려 먹는 사람이 있지만 난 거리가 멀다. 1인분만 하기에는 가스레인지 켜기가 귀찮다. 어제 남은 반찬이 있으면 밥만 데워 먹고, 그것도 없으면 빵으로 대충 때운다. 아이 낮잠 시간이 잘 맞으면 다행이지만, 틀어지면 배고파도 점심은 미뤄진다. 밥을 느긋하게 먹는 편은 아니지만, 급하게 먹다 보니 여유가 없달까. 혼자 먹는 점심에 어떤 기쁨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감기에 걸린 아이와 이비인후과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갈 때였다. 점심시간인데 상가 복도에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줄 끝에 작은 입구가 보였고, 간판은 김밥집이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줄을 섰다. "평생 한 가지만 먹고 산다면 무엇을 먹겠는가?"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김밥이라고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품에 안긴 아이는 졸린 듯 눈을 꿈벅거렸다.
김밥집은 세 명만 서 있어도 꽉 찰 만큼 작은 곳이었다. 메뉴도 단출했다. 야채, 치즈, 참치, 소고기, 매운 멸치, 그리고 어린이용 치즈 김밥이 있었다. 김밥을 말고 있던 주인아주머니는 손을 쉬지 않은 채 내게 물었다. "아기 엄마는 뭐 먹을 거야?" 나는 치즈 김밥 한 줄을 주문했다. 아주머니는 도마 앞에 서서 네모난 김 위에 밥을 툭 올려 펴 바른 뒤, 수북이 쌓인 김밥 재료 통에서 재료들을 하나둘 보기 좋게 올렸다. 두툼한 계란에 치즈 슬라이스 한 개를 반으로 찢어 마지막으로 올린 뒤, 둘둘 말았다. 참기름을 발라 옆 사람에게 건네자, 그는 날카로운 칼로 김밥을 툭툭 썰었다. 그리고 검은 봉지를 건네며 말했다. "엄마, 아기 모두 고생이 많네. 아기 몇 개월이야?" 나는 이제 9개월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아직 김밥 먹으려면 한참 남았네"라고 했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봉지를 흔들며 집으로 오니 아이는 내 품에서 잠들어 있었다. 침대에 아이를 내려놓고 식탁에 앉았다. 검은 봉지에서 김밥을 꺼내 젓가락을 들었다. 두툼한 김밥에서 고소한 참기름 향이 올라왔다. 한입 가득 넣어 먹기 시작했다. 꼬들하고 단 우엉, 아삭한 당근, 조금 시큼한 단무지, 고소한 시금치와 두껍고 부드러운 계란, 은은한 소금 간의 밥까지. 내가 먹어본 어떤 김밥보다 간이 조화로웠다. 젓가락이 쉴 틈이 없었다. 오랜만에 느낀, 만족스러운 한 끼였다.
빈 접시를 멍하니 보다가 가게 벽에 붙은 메모가 떠올랐다. 메뉴판 아래에는 A4 용지 크기의 종이에 큰 글씨로 김밥 재료와 휴대폰 번호가 쭉 적혀 있었다. 계란은 000-000-0000, 단무지는 000-000-0000 이런 식으로. 재료가 떨어지자 전화 거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자연스레 상상됐다. 김밥 한 줄, 그 맛을 내기 위해 재료 하나하나 고민의 결과같이 느껴졌다. 침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메뉴판에 적힌 어린이 김밥 메뉴가 떠올랐다.
이제는 점심에 일부러 김밥집에 간다. 메뉴를 따로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단골이 됐다. 김밥을 기다리며 메뉴판에 적힌 '어린이 치즈 김밥'을 눈에 새긴다. 그리고 안겨 있는 아이에게 "도아는 언제 커서 이 맛있는 거 먹을래?" 하고 묻는다. 지금도 훌쩍 큰 것 같아 놀랄 때도 많긴 해도, 좀 더 자라 같이 식탁에서 김밥을 먹고 싶어지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