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아는 집 근처 5분 거리의 어린이집에 다닌다. 도서관 건물 1층에 있는 국공립으로 어렵사리 중간 입소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 원장 선생님과 면담을 하고 돌아와 침대에서 울었던 기억이 난다. 어른의 사정으로 갓 8개월 된 아이를 보내는 것이 맞는 걸까? 아직 엄마 품이 필요한 아이에게 가혹한 게 아닐까. 그런 속도 모르고 내 옆에서 뒹굴거리며 방긋 웃는 도아 얼굴을 보자 더 눈물이 났다. 이상적인 시기에 어린이집에 보내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회사 복귀는 다가왔고, 생활을 유지하려면 일을 해야 하니까.
걱정이 무색하게도 도아는 어린이집에 잘 적응했다. 등원한 지 둘째 날은 같은 교실에 있던 나를 찾지도 않았다. 한 달이 넘은 지금 헤어질 때도 울지 않는다. 하원 시간에는 밝은 얼굴로 내게 안긴다. 복귀 전까지는 점심 먹고 하원을 하기로 해서 3시간 외에는 모든 시간을 함께한다. 요즘 집안을 조금도 쉬지 않고 이곳저곳을 기어 다니는 도아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기도 해 가끔은 등원 시간을 기다리기까지 한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그럴 거면, 울긴 왜 울었어."라며 놀린다. 집에서 할 수 없는 활동도 매주 있고, 아이의 키즈 노트를 통해 생활하는 모습의 일부를 엿볼 수 있다. 하원할 때마다 오늘 아이가 잘 생활했는지 이야기해 주는 선생님에게서는 세심함이 느껴진다.
생각해 보니 출산부터 지금까지 나는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분들 덕분에 무사히 출산을 했고, 산후 조리원에서도, 집에서도 산후 도우미분의 도움을 받았다. 출근하는 남편 역시 가능한 시간에는 늘 살림과 육아를 같이 했다. 지금까지 도아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도움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라는 존재는 하나이기에 나는 마음이 무거웠던 것 같다.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지 않으면 애착이 형성되지 않을까 걱정도 들긴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정작 나도 부모님이 맞벌이라 함께 보낸 시간이 거의 없었다. 부모님은 명절 외에는 쉬지도 않았고 늦은 밤에서야 집에 돌아왔다. 온 가족이 함께 밥을 먹은 기억도 잘 없다. 어릴 적 기억에 대부분은 가게에서 이리저리 분주하던 엄마와 새벽에 나가해서 일찍 잠을 자던 아빠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부모님이 내게 주는 사랑은 항상 느꼈던 것 같다. 오히려 그렇게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나도 최선을 다해야지 다짐하기도 했다. 엄마는 늘 너희들을 키웠을 때가 어떻게 흘렀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하지만, 아침마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으로 밥을 내주던, 애정 어린 손길을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몇 달 전 워킹맘인 분에게 회사 복귀와 어린이집에 대해 걱정을 토로한 적이 있다. 그러자 그분이 내게 "나는 3개월 되자마자 복귀해야 해서 우리 애는 그때 어린이집에 갔어. 그런데도 잘 크니까 걱정 마."라고 했다. 그 옆에서 대게를 잘 먹고 있는 아이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면 워킹맘 선배들은 이렇게 육아휴직을 길게 쓰지도 못했을 테다. 배부른 소리처럼 들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회사를 다닐 때는 더 빨리 회사에 복귀하고 싶지 않을까를 걱정했는데, 지금은 조금이라도 아이를 오래 보고 싶다니. 내 마음이지만 참 하루가 다르게 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