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빠가 옆에 있으면 손을 만지게 된다. 1,2년 전부터 볼 때마다 연로해지는 아빠의 모습이 안쓰러워 손을 잡고 싶었다. 평생 농사일을 해온 손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빠 손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처음 손을 잡았을 때는 머쓱하고 어색했지만, 그렇게 우리는 잠시, 때로는 길게 손을 가만히 맞잡고 각자의 생각에 빠져든다.
올 1월 아빠는 대장암 판정을 받았다. 간으로 전이가 된 상태라서 항암 치료로 암 크기를 줄이고 나서야 수술을 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아빠는 따르기로 했다. 그렇게 3월 말부터 아빠는 2주 간격으로 한 번 입원해서 48시간 동안 여러 가지 항암 치료를 받고 계신다.
1차 항암을 받고 며칠 후부터 아빠 머리카락은 힘없이 빠지기 시작했다. 베갯잇에 수북한 머리카락이 복잡한 지도처럼 그려져 있을 때 아빠는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셨다. 몸이 나으면 되지, 머리카락이 무슨 대수냐고 태연한 척 말씀드려도 아빠는 한없이 가라앉았다. 아빠는 나중에 그러셨다.
"머리카락이 다 빠져서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해도 내 몸이 이상했다"
건강한 우리들도 몸의 작은 변화에 예민한 것처럼 몸의 미세한 변화들이 환자의 마음을 크게 위축시키며 절망으로 몰아간다는 걸 느끼고는 아빠를 더 유심히 살피게 된다.
4월 간호 담당은 내가 맡기로 하여 지금 3일째 아빠와 병실에 있다. 30년 가까운 학원일에 지쳐 올 하반기부터는 주 3일 정도만 일하고 싶었는데, 그 계획이 아빠의 병간호로 갑자기 당겨졌다. 학원과 수업 조율이 잘 이루어져서 일단은 두 달만 주중 목요일과 금요일 수업은 빼기로 했다. 여유 있게 쉬고 싶었던 휴일이었지만 아빠와 함께 하니 더 좋다.
아빠 손을 쓰다듬어 본다. 그러면 아빠도 내 손을 쓰다듬는다. 울컥할 때가 많지만 마스크 안에서 입에 힘을 주고 눈에도 힘을 주며 눈물을 참는다. 아빠에게 눈물 대신 이런저런 말들을 쏟아내다 보면 슬픔에서 잠시 멀어질 수 있다. 병실에서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아빠의 손을 만지작거리는 시간, 이대로도 나는,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