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차갑다. 동시에 포근함과 따뜻함을 품고 있다. 눈은 가볍다. 그러나 그 한없이 부드러운 것조차 무게를 갖추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눈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때로 우리의 마음을 날카롭게 찌른다.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모호한 상태, 육신과 영혼이 중첩된 그 공간 위로, 눈은 끊임없이 내린다. 무심한 눈송이들이 천천히 쌓여가면서 모든 것을 덮고 동시에 모든 것을 드러낸다.
한강 작가는 우리가 쉽게 손대지 못했던 역사적 상처를 이 소설에서 깊이 들여다본다. 소설이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마치 시처럼 응축된 감정을 품고 있다. 우리는 이제 그 시절, 그때, 그 사건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편안한 일상을 살고 있다. 그런데도 굳이 그 고통을 다시 들추어야 할까? 왜 우리는 그 상처를 다시 바라보아야만 하는가?
작가는 그 질문에 답하듯,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공감해 주기를 바라는 것 같다. 고통을
공감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기억하게 되고, 기억을 통해 진정으로 작별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알기 전과 알고 난 후는 분명히 다르다. 한번 알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잊을 수 없다. 그 기억은 어느새 우리 안에서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자리 잡는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또다시 그 사실을 깊이 느꼈다.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우리가 외면했던 과거를, 이제는 마주 보고, 온전히 기억해야 할 과거임을 아름답고도 서늘한 문장으로 일깨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