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그리고 우리
“당신네 백인은 그렇게 많은 화물을 개발해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우리 흑인에게는 우리만의 화물이 거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p.26)
뉴기니에서 만난 얄리의 질문은 제레드 다이아몬드를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왜 어떤 문명은 다른 문명을 지배하게 되었을까?
그는 『총 균쇠』에서 유라시아에서 문명이 먼저 발달한 궁극적인 원인을 ‘농경의 출발점’에서 찾는다. 문명의 흥망을 결정짓는 건 천재의 출현이나 군사 전략이 아니라, 곡식을 저장하고 가축을 길들일 수 있었던 환경적 조건이라는 것. 유라시아 대륙의 동서 방향 지형은 작물과 기술의 전파에 유리했지만, 아프리카나 아메리카는 그러지 못했다. 환경적 차이 하나가 수천 년의 문명 격차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그는 700페이지가 넘는 책으로 통찰력 있게 풀어냈다.
『컬처, 문화로 쓴 세계사』, 『사피엔스』, 『총 균쇠』는 온라인 독서모임 <다정한 책생활>에서 함께 읽은 책이다. 세 권 모두 공통적으로 '농업 혁명'을 중요하게 다룬다. 문명의 토대가 ‘농업’이라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떠돌던 수렵과 채집의 삶에서 농경은 정착을 이끌었고, 정착은 저장고와 정치 체계를 낳았다. 학창 시절에 배웠던 내용이지만 책으로 다시 접하니 새롭고 감탄스럽다.
이 책은 유라시아 국가들이 남미나 아프리카보다 부유하게 된 이유가 지리적 위치라는 ‘우연’에 있었다고 말한다.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한 DNA를 가졌다는 인종차별적 시각을 뒤집는 설명이다. 우연히 좋은 기후와 환경을 만났을 뿐이라는 것. 나 또한 온대 기후의 대한민국에 태어나 살아가는 걸 보면, 어쩌면 복 받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함께 읽은 독서모임 친구들의 감상도 인상 깊었다.
▪️남보다 먼저 출발한 이점이 이후의 발전에 반드시 결정적이지는 않다.
▪️잉카나 아즈텍 문명이 유럽에 정복당한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안타깝다. 승자의 기록인 역사 속에서 승자와 패자를 선악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진 쪽에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역사는 잉카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지만, 피사로 등 침략자들의 말년이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약간의 위로를 받는다.
▪️인생은 서바이벌 게임 같다.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했는데 누구는 비옥한 땅에서 농사도 잘 되고 가축도 잘 키우는 금수저처럼, 누구는 척박한 땅에서 헬존을 뚫고 나아간다.
▪️결국 중요한 건 어떤 환경에서든 끝까지 살아남는 힘이다.
읽고 싶었던 책을 한 달여 만에 완독 했다. 중간에 포기할까 고민도 했지만, 다 읽고 나니 뿌듯하다. 역사는 흐르고 반복된다. 서로를 밀어내며 살아온 긴 역사 속에서도 결국 사람들은 다시 만나고, 연결되고, 함께 살아가는 길을 찾아왔다.
우리가, 내가 가야 할 길도 더 선명하게 보인다. 함께 가는 것이 곧 나를 돕는 길이라는 확신이 든다. 서늘한 날에도 명랑하게, 오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