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이 남긴 마지막 노래
‘거인이라고?’ 처음엔 생소하게 느껴졌다. 프랑수아 플라스의 『마지막 거인』에서 거인은 단순한 상상 속 존재라기보다는, 우리 곁에 함께 하는 자연이고, 타자이고, 소수자이며, 사라져 가는 세계다. 이 책은 신화처럼 보이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지식욕과 문명화가 타자를 어떻게 지워버리는지를 서늘하게 드러낸다.
지리학자 루스모어는 우연히 시장에서 ‘거인의 이’를 구매한다. 이 낯선 유물을 오랫동안 연구한 끝에, 그는 거인족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확신하고 긴 탐험 길에 나선다. 죽음과도 같은 고비를 넘긴 끝에 그는 마침내 아홉 명의 거인을 만나고, 그들과 1년여를 함께 살며 우정을 나눈다.
루스모어는 인간 사회로 돌아오지만, 침묵을 택하지 않는다. 그가 본 것과 겪은 것을 아홉 권의 책으로 출간하면서, 거인족의 언어, 풍속, 노래, 삶의 방식은 곧 제국주의 국가들의 관심 대상이 되고 만다. 결국 사람들은 거인의 나라를 침범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그 땅은 사라진다.
“내가 써낸 책들은 포병 연대보다 훨씬 더 확실하게 거인들을 살육한 것입니다. 별을 꿈꾸던 아홉 명의 아름다운 거인과 명예욕에 눈이 멀어 버린 못난 남자, 이것이 우리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74쪽)
루스모어는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를 뼈저리게 후회한다. 그는 명예도, 재산도, 과거의 삶도 모두 버리고 고기잡이배의 선원이 된다. 그가 남긴 지식과 기록이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터전을 잃게 하고,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는 데 일조했음을 그는 너무 늦게 깨닫는다.
『마지막 거인』에서 거인은 인간이 손쉽게 침범하고 파괴하는 ‘다른 세계’의 은유다. 인간은 그 존재를 확인하는 순간부터 그것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알려졌다는 이유만으로 침략당하고, 이해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해체된다.
생각해 보면 나도 루스모어처럼 ‘달콤한 비밀’을 침묵하지 못했을 것이다. 호기심과 열망이라는 이름으로, 나도 누군가의 세계를 무너뜨린 적이 있지는 않았을까. 악의 없이 던진 말 한마디, 무심코 퍼뜨린 정보 하나가 누군가에겐 잔혹한 폭력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 거인』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침묵해야 하는가.
거인은 사라졌지만, 그 발자국을 기억하는 일은 아직 가능하다. 우리가 그것을 진심으로 애도하고, 기억할 의지가 있다면 말이다.
프랑수아 플라스『마지막 거인』(디자인하우스, 개정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