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는 왜 예술이 되는가
아빠가 좋아하는 잡채를 만들었다. 시금치를 살짝 데쳐 초록빛이 살아나게 하고 당근과 양파를 곱게 채 썰어 볶는다. 당근과 양파의 달큼한 향이 솔솔 올라오고 버섯은 고소한 맛을 더한다. 잡채의 성패는 면에 달려 있다. 덜 삶겨 꼬들꼬들해도 안 되고 1, 2분 차이로 너무 삶아 면이 불으면 쫄깃한 식감을 내기 어렵다. 알맞게 잘 삶은 면과 볶은 채소를 섞어 참기름을 뿌리고 살살 버무린다. 접시에 담아 노란 지단을 얹어 알록달록한 색감을 더하니 입에 군침이 돌았다. 아빠가 잡채를 맛보며 말했다.
“잡채 맛이 예술이네.”
전원경의 『예술, 인간을 말하다』는 미술, 음악, 문학을 넘나드는 종합 예술서다. 사랑과 이별, 시간과 운명, 일상과 행복, 슬픔과 혼란 등의 주제를 17개의 장에 담아냈다. 600쪽이 넘는 분량이지만, 그림 감상과 그림과 관련된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지루할 틈이 없다. 인간은 원시 시대부터 바위나 동굴 벽에 무언가를 새기며 그 의미를 후손에게 남겼다. 더 나아가 그림과 조각, 책과 사진, 음악으로 시대성과 인간의 마음을 기록해 왔다. 이처럼 예술은 단순한 장식의 의미를 넘어 인간의 삶을 증언하고 있다.
"삶은 용기와 의지, 지혜만으로 헤쳐나갈 수 없는 복잡한 그물이다."(279쪽)
예술은 왜 필요할까? 세상이 온통 아름답고 행복하기만 하다면 우리는 예술에 굳이 기대지 않을지도 모른다. 삶은 길고 때론 험난하며 지루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인간은 음악에 기대고 책에 마음을 기울이며 예술 작품을 감상한다. 잠깐 찾아오는 다정하고 달콤한 순간들이 우리를 단단하게 붙들어 주기 때문이다.
예술은 설명되기보다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예술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그 시대의 삶을 증언하지 않더라도 예술에는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분명 존재한다. 잡채 한 접시가 아빠의 미소를 끌어냈다면, 그 순간 잡채는 평범한 요리가 아니다. 아빠를 위해 내가 부엌에서 쏟은 마음이, 화가가 한 획을 긋는 심정과 음악가가 음표 하나하나를 새기는 섬세함과 다르지 않다. 잡채도 예술이 될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