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어사전

여름 단어 안에서

by 유연

여름어사전

여름의 청량함이 좋아진다. 예전엔 네 번째로 밀렸던 여름이, 이제는 한없이 사랑스럽다.
『여름어 사전』은 '냉방병', '열대야', '콩국수'처럼 여름 안에서 녹아 없어질 단어 157개를 모아 편집자, 시인, 아침달 서포터즈 분들의 일화로 다시 불러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한여름 낮의 가시 같은 따가움이 피부에 닿고, 인적 드문 계곡의 차갑고 맑은 물소리가 귀에 스민다.

올여름이 내게 유난히 긍정적으로 다가온 까닭은 부모님의 무탈함 덕분이다. 안도감이 마음을 단단하게 지켜주니, 뜨거운 태양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초록은 더 선명해지고 여름은 오히려 나를 지탱하는 계절이 되었다.

나는 이 책의 157개 단어 사이에 ‘배롱나무’가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여름을 바라보는 내 시선을 담아 본다.

배롱나무

배롱나무는 여름의 속살을 드러낸다
분홍이 아니라 뜨거운 숨의 색
가지를 끝까지 뻗어 태양에 뺨을 문댄다

비가 내리면 꽃잎은 젖은 비단처럼 무거워진다
그 무게에 고개를 숙이면서도, 다시 들고, 또 든다
빗방울이 꽃잎 위에서 구슬처럼 굴다 떨어진다

여름은 천천히 저문다
꽃잎이 지는 건 끝이 아니라 약속이다
길 위에 흩어진 분홍빛은
내일 다시 피어날 마음의 모양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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