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불꽃같은 여름 그리고 그 이후

by 유연


이디스 워튼의 『여름』은 짧지만, 강렬한 계절의 기록이다. 미국 시골 마을에 사는 열여덟 살 소녀 채리티 로열은 보호자 로열 변호사 밑에서 답답하고 따분한 삶을 살아간다.

“모든 게 지긋지긋해.”라는 말을 자주 하는 채리티에게 대도시에서 온 청년 하니는 여름의 태양처럼 눈부신 존재로 다가온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녀에게 처음으로 몸과 마음을 흔드는 자유의 감각을 안겨 준다. 낡은 도서관에서 일하는 채리티에게, 하니는 “책들은 공기와 햇볕을 조금만 쏘여도 도움이 된다”라고 말한다. 채리티는 그 말처럼, 하니를 통해 색다른 공기와 햇볕을 온전히 느끼며 삶이 확장되는 환희를 맛보았을 것이다.

어릴 때 나는 사랑은 불변한다고, 불변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살면서 환경이 바뀌면 마음도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래전 광고 문구처럼 사랑도 움직인다. 때로는 우정이나 의리로 모양을 달리하기도 하고,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이별로 끝나기도 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처럼 사랑도 덧없이 흩어진다. 채리티의 사랑 역시 계급, 성별, 여성의 운명을 비껴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사랑의 찬란한 순간'을 헛되이 여기지 않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태도로 한층 더 성숙해진다.

뜨거운 연정이 한차례 지나가면 사람은 성장한다. 채리티가 마지막에 선택한 것은 로맨스의 연장이 아니라, 불안 대신 안정, 무책임 대신 책임이었다. 하니와의 이별은 아쉽지만, 로열과 맺어지는 결정 속에는 삶을 감당하려는 어른스러움이 담겨 있다. 워튼은 이 선택을 단순히 비극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가 살아갈 토대를 마련하는 과정으로 그려낸다.

워튼은 『순수의 시대』로 잘 알려졌지만, 『여름』은 그녀의 작품 세계 속에서 여성의 욕망과 선택을 더욱 직접적으로 드러낸 소설이다. ‘여름’이라는 계절은 짧지만 강렬한 사랑, 그리고 지나가면 남는 성숙과 책임을 상징한다. 작품 속 채리티가 그 여름을 통과하며 성장했듯, 나도 이 뜨거움의 끝에서 삶을 감당하는 또 다른 힘, 지금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여름』은 100여 년 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에게도 충분히 공감과 감동을 안겨줄 만큼 세련된 감정 묘사와 섬세한 배경을 담고 있다.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으며 다양한 감상을 나누는 시간은 덤으로 즐겁다. 하니와 예기치 않은 결별이 아쉽기도 했지만, 안정적인 삶을 위해 로열을 선택한 채리티에게 모두 공감했다. 하니와의 사랑이 무르익어 우리가 들떠 있을 때, ‘어남로(어차피 남편은 로열)’라는 이슈로 한차례 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것 또한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다.『여름』만큼이나 우리에게도 여름은 뜨거운 청춘의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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