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

사랑해요...

by 유연

제때 전해야 하는 마음이 있다. 차마 하지 못한 말, 미처 건네지 못한 인사, 끝내 내뱉지 못한 고백, 그렇게 미뤄진 말들은 전하지 못한 마음으로 남는다. 그 말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부재중 통화처럼 마음 안쪽 어딘가에 쌓여 있다가 문득 울림으로 나타난다.


국내 웹아트 1세대 작가 설은아가 기획한 ‘소외된 소통’ 전시가 있었다. 관람객들은 전시장 한쪽에 설치된 공중전화 부스의 수화기를 들고 세상 누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을 전했다. 그렇게 그곳에 담긴 목소리는 한 권의 책이 되었다. 바로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이다.

그 부재중 통화에는 떠난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대한 후회, 다시는 닿지 못할 곳을 향한 간절한 부름이 담겼다. 절실하게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불안을 견디는 이들의 목소리,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싶고 집에 가고 싶다는 평범한 통화에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나 역시 수없이 많은 그런 부재중 통화를 마음속에 담으며 살아왔다. 혼자만 아프면 되리라 여겨 내비치지 않은 말들, 그만 살고 싶다고 되뇌었던 힘든 순간들, 거절이 두려워 고백하지 못한 첫사랑, 이 책을 읽는 동안 수많은 나의 부재중 통화들이 마음을 울렸다.

“누가 먼저 나한테 괜찮냐고 물어봐줬으면 좋겠다. 괜찮다고 답해도 끈질기게 물어봐주면 좋겠다.” (P.241)

10만 통이 넘는 부재중 통화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사랑, 행복, 엄마, 사람, 미안, 아빠, 힘듦, 친구, 고마움’이었다. 우리 삶에서 끝내 놓을 수 없는 그런 말들이다. 진실한 마음이 담긴 그 말들 속 알맹이는 서로를 보듬는 사랑의 표현이다. 삶의 속살을 드러낸 타인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우리가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사랑은 ‘괜찮냐’는 물음처럼 아주 작고 다정한 확인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은 아끼지 말고 제때 전해야 한다.

전시는 끝났지만, 여전히 1522-2290으로 전화를 걸면 부재중 메시지를 남길 수 있다. 나는 어떤 마음을 수화기 너머로 전해볼까.
“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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