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는 프랜시스

가라앉는다는 의미

by 유연


갯벌에 보이는 칠게는 고둥의 빈 껍질 속이나 진흙을 은신처로 삼는다. 내가 고둥의 껍데기를 톡톡 건드려도 칠게는 없는 척하며 꿈쩍하지 않는다. 칠게를 보며 마쓰이에 마사시의 『가라앉는 프랜시스』가 떠올랐다. 우리도 칠게처럼 자신만의 은신처를 찾아 들어가야 할 때가 있지 않은가. 은신처가 될 수 있는 건 사람일 수도, 자연물일 수도 있다.

도쿄에서 일하던 게이코는 모든 일을 정리하고 조용한 홋카이도의 산골, 안치나이 마을로 왔다. 그리고 계약직 우편배달부로 새 삶을 시작한다. 구름, 물, 거목, 눈 같은 자연 속에서 위안을 얻는 그녀에게 가즈히코라는 남자가 다가온다. 세상의 모든 음(音)을 수집하는 그는 게이코에게 자신이 모은 소리를 들려주며,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이야기한다. ‘프랜시스’는 가즈히코 집안에서 관리하는 수력 발전용 장치다. 가즈히코는 소리가 전기 에너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하며, 프랜시스를 통해 음을 제대로 들을 수 있도록 직접 보수하고 관리한다. 내게 ‘프랜시스’는 수력 발전용 장치를 넘어선 소설 속 인물들이 어느 정도는 자신을 숨기고 잠기게 하는 내면의 은유로 읽힌다.

게이코와 가즈히코 사이에 낯선 긴장감이 사라지고 미묘한 감정이 싹튼다. 둘 사이에 오감이 섬세하게 깨어나면서 사랑이 시작된다.
“마른 피부와 젖은 입의 미세한 감각이 입술 주위의 좁은 지도 안에서 서로 다툰다.”(p.66)
마쓰이에 마사시 특유의 감각적인 묘사가 살아 있다.

“서로의 몸에 담쟁이덩굴처럼 휘감겼다”(p.105)는 격정적인 표현에는 내 마음도 설렜다.

그러나 사랑은 순탄하지 않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서로를 샅샅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침묵을 고수하는 가즈히코가 답답했다. 지나간 시간 같은 건 말하고 싶지 않다고, 지금 함께 있는 이 순간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는 남자. 그런 그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의 조각을 알고 싶어 하는 여자. 둘의 어긋남은 깊은 긴장으로 이어지고 책을 읽는 나까지도 그 긴장 속에 잠기게 한다.

"형태가 있는 것은 언젠가 사라져버리지만, 사라진 것은 형태를 잃음으로써 언제까지고 남지요. 나한테 보이는 것은 그런 거예요." (P.101)

사랑은 형태를 잃음으로써 오히려 오래 남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누구에게도 목적지가 아닌, 그저 서로의 곁에서 흘러가는 시간 속에 머문다. 가라앉는다는 것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자기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일이다. 게이코가 안치나이의 고요한 풍경 속에서, 가즈히코의 침묵 속에서 발견한 것은 아마도 그런 내면의 음이었을 것이다.


『가라앉는 프랜시스』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에 남는 소리를 들려주는 섬세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소설이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인물들은 세상의 표면 위로 떠오르기보다 자신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는다. 가라앉음 속에서만 비로소 들려오는 소리가 있다. 그런 소리는 우리에게도 잠시 머물 수 있는 또 하나의 은신처가 되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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