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쓰고 싶어서 그런다.
나는 일과의 대부분을 중학생인 사람들과 함께 보낸다. 그리고 역할의 특성상 그들의 사생활 전반 사소한 일까지 대화를 많이 하게 되다 보니 나와 어쩔 수 없이(어쩔 수 없다고 표현해서 미안한 몇 명이 있지만)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과 그들의 정서적 상태를 공유하고 있는 친구들이 꽤 있다.
그래서 요즘 나의 언어생활 전반은 거의 다 중학생의 인지 수준에 맞춰져 있다. 말하자면, 우리 중학생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어휘를 사용하여 쉽고 간단하게 설명을 해 주어야 하는 이유로 인해 나의 언어영역 중 어휘력은 거의 기초적이고 단순한 단어로만 구성되어 있고, 더군다나 은유적인 표현은 절대 금물이기 때문에(돌려 말하면 절대 내가 원하는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언제나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끄집어내어 직설적으로 콕 집어서 말하다 보니 점점 내 언어생활의 지적 퀄리티가 하향 평준화 되고 있다는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중학생 사람들의 지적 능력이 낮다고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들의 발달지점에서 나름의 지적 성장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는 믿고 있는 것)이고, 그와 별개로 나라는 어른은 또 다른 기준을 가지고 내 현재 상태를 점검해봐야 하는 건데 그게 영 시원찮아 보인다는 말이다.
어쨌든 요즘 나의 언어생활에 불만이 가득하여 자꾸 기름칠을 해야 그나마라도 쓸만해지지 않나 싶어 출퇴근 시간을 활용하여 자꾸 이런 식으로 글을 쓰고 있는데, 문제는 왜 나의 머릿속 이 한 보따리나 되는 복잡하고 많은 생각들이 글로 내려올 때는 숱한 사연들과 부연설명과 은유적 표현과 정갈한 단어선택을 모두 제치고 이렇게나 단편적이고 간단하게 정리되어 일필휘지로 튀어나오는지 정말로 갑갑해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피아노 연주실력으로 치면 거의 바이엘 하권 정도(그래도 학창 시절 백일장 산문부문 장원은 놓친 적이 없으니 상권은 졸업했다고 쳐주자)에서 더 이상의 진보가 없고 그렇다고 진득하게 앉아 연습을 반복해야 하는데 학교도 가야 하고 학원도 가야 하고 밥도 먹어야 하고 친구랑 놀기도 해야 하고 숙제도 해야 하고 그래서 피아노 앞에 앉을 시간이 안 나는(핑계인 건가) 상태라 그러지는 못하고 다만 쇼팽과 모차르트를 치는 언니야들을 동경하며 난 왜 아직 바이엘인가를 골똘하게 고민하는 그런 것이다.
그럴 때면 항상 책으로, 음악으로, 영화로, 대화로, 심지어 어린 시절 구구절절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던 번뇌가 그득한 내 일기장으로 도피를 떠난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펜을 잡으면, 결국 내가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것은 아, 나란 인간 뛰어 봤자 벼룩인 것을 뭘 그리 버둥버둥거리면서 현실을 부정하고 있나 하는 것이다. 그냥 이대로가 원래 딱 내 수준인가 보다 여겨야 하는가. 개탄스럽다.
고등학교 때 버지니아 울프의 의식의 흐름 기법을 흉내 내며 한때 신나게 문장을 갈겨대던 때가 있었다. 오락실에서 철권 게임기 앞에 앉아 갖은 싸움 기술을 쓸 때 조이스틱과 버튼을 사정없이 휘갈기던 그때처럼, 문장과 단어를 알뜰하게 사용하지 못하고 뭐든 하나만 걸려들어라 하며 사정없이 낭비를 했다. 그러나 그 시절 우리 여자 문학 선생님의 따끔한 한마디, 정성 없이 쉽게 쓴 글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두통을 유발한다는 것. 그땐 그 말이 귀에 거슬리고 섭섭했지만—지금이라고 딱히 장족의 발전을 이룬 상태는 아니라 해도—크고 나서 다시 생각해 보니 백번 천 번 옳은 말씀이다. 무조건 날리기만 하면 의식의 흐름이냔 말이지. 쓰고 나서 다시 읽으면 도대체 네가 원하는 게 뭔지 나도 도저히 모르겠다. 라며 혀를 차고 이불을 걷어차며 속 쓰린 고통을 맛보게 될 것을, 이럴 거면 쓰지를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응당 어휘력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계속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고 누가 물어보기라도 한다면 정말 이렇기도 저렇기도 하여 이유를 딱 한 가지만 꼽기가 참 어렵지만, 그래도 왜 자꾸 글을 쓰려고 하느냐고 몰아세워 하나만 딱 고르라고, 옛날에 울 엄마의 엄격한 그 표정으로 엄마표 사랑의 회초리를 들고 질문한다면... 나는 글을 쓰는 동안이 가장 안정된 시간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 추상적이면서 단순하지만 소통의 결핍을 글로 해결하고 있는 것이고, 사사롭지만 그래도 꾸준히 시끄러운 내 속을 진정시키려면 어디에든 쏟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 선배는 날 보고 정신적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중이냐고 놀리지만 고민도 없이 휘갈기는 이따위 글쓰기를 하는 미천한 인간이 감히 글이라도 쓰면서 예술 근처에서라도 얼쩡댈 수 있다면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다.
앞에서 소통 소리가 나와서 하는 얘기인데 요즘 같이 각종 SNS의 춘추전국시대에서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남발되는 소식전파에는 이제는 너무 지치고 피로하여 더 이상 나는 SNS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한 가지 SNS를 하지 않는 이유를 들자면(사실 이 이유가 더 크다) 우리 중학생 사람들이 자꾸 친구를 신청하거나 조용히 팔로우를 하고 있다거나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도 내가 '알 수도 있는 사람'이라며 친구추천으로 뜨는 것인지 내가 알 수는 없지만 어쩐지 그들과 친구가 되고 나면 나는 직장상사에게 감시를 받는 기분으로 SNS에 임해야 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SNS의 특징이 친한 사람끼리 소식을 올리고 시답잖아도 소소한 내 일상을 이야기하며 서로의 질문에 대꾸를 하는 모습을 감출 수가 없는 것인데, 그러면서 나도 가끔 친한 친구에게 막말이나 욕설(은 거의 하지 않는다만)을 할 수도 있는 일이고 그런 일거수일투족을 우리 중학생인 사람들이 본다고 생각하면 내 언행은 완전히 컨트롤되어 자동 필터기능으로 간사한 미사여구만 퍼붓게 되겠지. 심지어 비싸고 좋은 스마트폰 24개월 약정에 묶어두고 문명의 혜택을 업고 한껏, 정말 온갖 예쁜 척 다해서 찍은 '셀카' 하나도 제대로 올리지 못한단 말이지. 이건 뭐 현대판 판옵티콘과 다를게 뭐냔 말이다.
아무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면 난 요즘 심적 안정이 필요하고, 이를 해결해 보려고 음악을 듣는다, 책을 읽는다, 노래를 부른다, 영화를 본다, 공부를 한다, 춤을 춘다, 사진을 찍는다, 기도를 한다 등의 오만가지 행동들을 다 해보고 있지만 가장 효과적인 것은 글쓰기가 단연 최고라는 것이고, 글쓰기로 생각을 풀어내다 보니 온전히 내 생각을 잘 담아내고 싶지만 내 언어생활의 퀄리티가 내 마음만큼의 정도를 따라오지 못하여 답답하다는 소리였다. 내일이나 모레쯤 또 오늘의 글을 읽어보면 난 또 어두운 새벽 어느 시점에 이불을 박차고 일어날 수 도 있는 일이지만 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