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6. 14. (금) 하타
오늘도 시작은 담요를 도톰하고 반듯하게 접어 꼬리뼈 아래에 두고 앉아 명상을 하며 수업을 마중 나갔다. 어느 순간부터 금요 하타수업에서 담요는 필수 준비물이 되었다. 천천히 호흡을 고르게 펴내며 흩날리는 의식도 한 줄로 가다듬고 돌돌 말린 등과 주름진 미간을 활짝 펼쳐 진정시킨 뒤 고요한 호흡으로 머무른다.
관절 인형 성능 테스트하듯 계속 접었다. 자누시르사로 앉아 숙여내고 비라로 앉아서도 숙여내고 다리 접어 비틀기 후 또다시 옆으로 숙여냈다. 현자세에서 그대로 누워 몸을 수평으로 접어 발과 머리가 가까워지는 것도 했다. 옆구리와 허벅지 앞면이 한없이 늘어나는 것 같은 느낌의 유쾌한 동작이다. 천장에서 바라보면 고층빌딩에서 추락한 시신같은 기이한 자세겠지만 그 자세의 효과는 아주 만족스럽다. 그 스트레칭을 한 뒤 현자세에서 골반을 들어보니 훨씬 더 잘 열리는 것 같아 가벼운 해방감이 느껴졌다. 계속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직장에서의 활동과는 대비되는 움직임이라 그런지 막혀있던 곳에 선선한 공기가 통했다.
찬드라나마스카라를 몇 차례 반복하는 동안 골반 앞면과 허벅지가 쭉 당겨지고, 안쟈네야에서 무게가 아래로 무너지지 않도록 다리에 힘을 꽉꽉, 명치를 천장으로 들어 올리는 힘을 위해 등에도 힘을 꽉꽉 채워나갔다. 수리야가 반복되며 안쟈네야가 점점 깊어질 때쯤엔 장요근 주변이 너무 늘어나 아프기도 하지만 시원한 감각도 그림자처럼 딱 붙어 함께 표현된다. 강해지는 기분. 반복할수록 내게 적정한 수준이 어디인지를 계속 질문하게 된다. 더 가도 될까? 더 가면 과할까? 그러다 어떤 의미로든 내게 적정한 그 지점을 만났다고 느껴질 땐 힘들어서 근육이 파르르 떨려도 벗어나고 싶지 않은 묘한 쾌감이 목덜미를 훑고 지나간다.
스탠딩으로 넘어가 웃티타하스타파당구쉬타와 워리어3를 연결했다. 한쪽 다리로 균형 잡고 서는 것은 균형감이라는 단어로만 설명하면 굉장히 섭섭하다. 발바닥과 종아리, 허벅지 앞면과 햄스트링, 엉덩이와 아래 복부, 그리고 척추를 바로 세워 쇄골을 양옆으로 펼쳐내기까지 관여하지 않는 구석이 없다. 균형을 잡아야 하는 동작에서는 집중이 흩어지면 자세가 정말 금방 무너진다. 그래서 수련할 때 한 점을 뚫어져라 응시하게 되는데 눈도 한번 안 깜빡이고 있었는지 조금 지나니 눈이 피곤하고 따가워서 내심 조금 웃겼다. 잘 해보려고 애쓴 흔적이다.
하타의 마스코트 같은 부장가아사나도 잠시 들렀다가 살람바시르반가사나 후 누워서 발을 합장으로 모아 드위파다시르사처럼 목 뒤로 넘기는 것까지 연결하여 마무리했다. 드위파다시르사는 어릴 때 TV에서 봤던 장면이 기억난다. 외국인 요기가 자신의 몸을 이불 개듯 접고 결박하여 작은 상자 안에 몸이 쏙 들어가는 장면이랄까. 요가를 말하면 수카아사나로 앉은 명상좌나 드위파다시르사 같은 자세를 많이들 떠올리는 것은 TV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아무튼 골반을 마저 시원하게 열어내고 발 사이로 고개가 통과되어 뒤통수도 발에 기대어본다. 누가 보기엔 모양이 요상하지만 수련자에겐 굉장히 안정된 결박. 자기 몸을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다.
2024. 06. 15. (토) 하타
비 온 뒤 촉촉해진 바닥과 약간은 습한 공기를 머금은 날씨. 오후에 한차례 비가 더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요가원으로 향하는 동안엔 비가 오지 않아 자전거를 타고 시원하게 달려갈 수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했다. 매트를 펼치고 앉은 자리에서 블럭과 밸런틱을 챙겨와 지난 시간에 선생님과 같이 했던 손바닥 마사지를 하며 수업을 준비했다. 손바닥을 문질 문질 하는 감각이 꼭 전신 마사지를 받는 듯하다.
오늘은 파드마를 짜는 움직임을 할 거라 다리와 발목을 풀자고 하셔서 밸런틱으로 허벅지 앞면부터 잘근잘근 마사지를 했다. 엎드려서 밸런틱 위에 얹은 허벅지를 좌우로 굴리는데 유독 감전을 일으키는 지점들이 있다. 무지하게 아프고 한편으론 너무 시원해서 정신줄을 놓았더라면 내 입에서 음란한 소리가 나올 뻔했다는 무시무시한 상황. 나처럼 등산 좋아하고 다리를 많이 쓰는 사람은 허벅지에 과도한 뭉침이 지속되지 않도록 자주 풀어내는 습관이 필요하다. 매번 결심하곤 했다. 밸런틱과 폼롤러 자주 해야지. 하지만 현실은 수업 때마다 결심만 반복하는 나를 다시 만날 뿐이다.
블럭 사이에 밸런틱을 놓고 엎드려 골반을 걸쳐 마사지를 하는데 요 며칠 계속 갑갑하고 뭉쳐서 풀고 싶었던 치골과 좌골능 주변 그 언저리를 딱 건드려줘서 근육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말랑해진 하체로 후굴도 하고 파드마도 짜고 엎드려서 부장가도 하면서 앞면과 뒷면을 돌려 깎이 하듯이 수축과 신전을 반복하였고, 아르다밧다 파드모타나아사나도 하고 블럭의 도움을 받은 바타야나아사나도 했다. 바타야나아사나는 개인적으론 이 아사나를 처음 만들었을 옛날 사람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감탄하게 만드는 자세이다. 질문하고싶다. 이 자세는 어쩌다가 만드신 건가요?
골반과 하체의 세계로 관광이라도 간 듯 여기저기를 무수히 지나다니며 발목, 무릎, 고관절의 회전과 함께 다리의 힘을 모아냈고 그 와중에 겨드랑이 아래에서부터 날개뼈 사이의 한 점 어딘가까지로 힘도 바짝 끌어모았다. 분명 격정적인 장면이 없었음에도 어느 새 땀이 줄줄 흐르는 몸이 되어 있다. 마무리 시르사아사나 중 시르사 파다를 몇 호흡 유지하고 파드마 짠 다리를 상완에 얹어 바카아사나로 들어보려 했으나 천근만근 들어지지가 않아 바닥으로 털썩. 등을 하늘로 더 말아올려 들어 올렸어야 하는데 오늘 거기까지는 차마 못 갔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모든 힘 다 쥐어짜내고 나른하게 누운 사바아사나. 달다.
2024. 06. 17. (월) 아쉬탕가
어제의 산행 중 아찔한 철푸덕을 한 여파로 무릎이 많이 아프다. 시퍼런 멍이 양쪽 무릎을 넓게 물들였고 왼쪽 무릎의 통증은 조금 더 센 편이다. 그래도 심각한 상태는 아닌 것 같아 우선은 평상시처럼 써보기로 결정하고 요가 수업에 출석했다. 무릎을 망가뜨린 대신에 목숨을 지켰다. 하다못해 얼굴과 치아를 지켜냈으니 이 정도 통증은 감수 가능하다. 일찍 도착했더라면 몸을 좀 풀었을 텐데 오늘도 못했다. 늘 붓고 피곤한 나의 하체.
플라렛바를 잡고 점프백, 점프스루를 연습했다. 무릎을 가슴에 붙여내는 힘, 복부의 힘, 팔의 힘. 전신의 힘을 완전히 끌어당겨도 될까 말까 하는 상태지만 시도는 열심히 한다. 체간의 힘이 어느 경로에서 툭툭 끊어지는 느낌이 드는데 끊어지는 그 지점을 힘으로 연결할 수 있을 만큼 단련이 되면 그땐 플로팅이 가능해질 것 같다. 길게 보자.
처참한 내 무릎. 적어도 앞굽이 자세에서는 괜찮았다. 그러나 무릎이 바닥에 닿거나 파드마를 짜거나 다리를 뒤로 접을 땐 피하조직에 고인 피멍 때문에 붓고 뻑뻑하고 욱신거리며 아팠다. 닿을 때마다 너무 아파서 나만 알 수 있는 호흡정지와 동작 버퍼링이 1-2초간 지나간다. 내 기준에서 멍이라는 증상은 정말 하찮고 사소한 건데 내가 겪으니 너무 고통스러울 따름이다. 앞으론 멍든 이들에게 좀 더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야겠다.
내 신경이 온통 무릎으로 가 있다. 무릎이 어딘가에 닿을 때마다 내적 비명을 질렀고, 자세에서 빠져나오면 무릎에 심장이 달린 것처럼 욱신거렸다. 오늘의 주인공은 무릎이었다. 모처럼 부상을 당한 몸이라 살살한답시고 했지만 습관적으로 힘차게 움직였고 어쩌다 보니 시퀀스는 피니싱까지 와 있었다.
사바아사나 하는데 아무리 들썩거려도 몸이 바나나 모양으로 커브를 이루며 삐딱하게 눕혀진 느낌이 들었다. 벌떡 일어나 앉아서 다시 드러눕고 싶었지만 송장이 좀비처럼 굴면 안 되니까 꾹 참았다. 40년을 사용한 몸이라 잘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미세한 비틀어짐도 쉽게 인지하지 못하다. 나의 몸에 과도한 요구사항을 늘어놓으며 기대치를 올리고 일방적으로 실망하는 태도들이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평생 내 곁에서 함께하는 존재에게 가장 친절해야 할 사람은 나 자신이다.
2024. 06. 18. (화) 복원
오늘도 아로마 에센스로 수업을 열었다. 장미, 국화는 기억이 나는데 나머지 두 가지는 들었던 내용을 잊어버렸다. 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 대해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배경 삼으며 손목에서 피어나는 귀한 꽃향기를 맡는다. 코 끝에서 은은하게 표현되는 꽃의 서사가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꽃을 에센스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양의 꽃이 필요하고 소량씩밖에는 만들어지지 못해 가격도 비싸다고 한다. 그런 귀한 것을 나눠 주시다니 감사했다. 사람들에게 좋은 경험을 선물하기 위한 준비과정에 선생님이 들이는 정성이 꽤나 수고스러울 것 같고 대단하다는 생각도 교차한다.
오늘은 우르드바다누라사나, 시르사아사나를 할 때 쓰이는 체간의 힘을 테마로 수련해 보자고 했다. 앉은 자세에서 척추를 마사지하듯 천천히 누웠다가 일어나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등뼈 하나하나를 꾹꾹 누르는데 특정 부분이 멍든 것처럼 아팠다. 거기는 자주 아프다. 하이런지에서 발 방향 헷갈려서 다른 사람들과 반대로 움직였다. 옆 사람 뒤통수가 보여야 하는데 마주 보게 되어 잠시 상황 판단하느라 일시정지. 그렇게 두어 번을 옆 사람과 마주 보았다.
마무리 시르사아사나 시간, 시르사가 익숙한 사람은 파드마를 짜고 변형 자세로 머물러 보라고 하셔서 천천히 움직여 좌우 몇 호흡 유지했다. 확실히 익숙한 방향과 어색한 방향 간 관절 가동범위도 다르고 안정감도 다르다. 익숙지 않은 방향에서는 골반이 계속 옆으로 도는 느낌이 들고 교차된 정강이뼈도 아프다. 숨겨둔 약점을 들킨 기분 같은 게 슬쩍 느껴지기도 한다. 익숙한 모양으로 움직일 땐 능숙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걸음마 중인 뒤뚱이 아가들과 다를 게 없다. 익숙함에서 빠져나와 방향 전환이 필요한 이유를 오늘도 마주한다. 그러나 익숙함에 잘, 잘못은 없다.
나는 요가 초보 시절 시르사아사나를 처음 할 때도 한 번에 성공했었다. 점프 없이도 다리가 쉽게 달랑 들어올려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버둥대다가 중심을 잃고 구르기도 여러 번 굴렀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무척 신기한 일이다. 그땐 아사나 이름이 머리서기인데 내 몸은 머리보다 어깨와 팔에 힘이 더 들어가는 게 느껴져 지금 잘못하고 있는 걸까 하는 걱정도 했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있다. 선생님들의 큐잉들을 빠짐 없이 귀담아듣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성실한 성향도 수련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니 익숙함에 안기기까지 나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닌 거다.
시간 여행을 간다면 초보시절의 나는 어떤 표정, 어떤 마음, 어떤 움직임과 호흡을 하고 있는지 한번 관찰해 보고 싶다. 그때 즐겨 입었던 뮬라웨어 자주색 탱크탑은 아직도 못 버리고 간직하고 있다. 아기들 배냇저고리처럼 내게는 그 옷에 순수한 추억이 스며있다. 내가 그걸 버릴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나는 좀 더 성장해 있으려나. 궁금하다.
2024. 6. 19. (수) 아쉬탕가
평소보다 5분 정도 일찍 도착한 덕분에 수업 전에 여유가 있었다. H와 원장님과 함께 스몰토크를 주고받다가 수업 시간이 임박하여 급히 매트를 펼쳤다. 이야기꽃이 활짝 피기 시작하면 밤을 지새워도 시간이 부족하다. 패럴렛바를 여러 개 줄 세워 놓고 줄 서서 밟고 지나가기도 하고 사람들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서 지나가기도 했다. 흡사 유격훈련을 모방한 놀이 같은 장면에서 상기된 얼굴로 점프백-점프스루 연습까지 하는 격정적 워밍업이 끝났다. 아쉬탕가 시퀀스에 들어가기 전 이렇게 미리 몸을 풀고 쓰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끄덕끄덕, 고단했지만 공감되었다.
사람들이 모두 일찍 도착하여 각자 열이 날 만큼 몸을 풀고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선생님이 워밍업을 시켜주는 것이다. 이런 워밍업으로 각성된 근육들이 더 안정적인 움직임을 도와줄 것이다. 뜨끈해진 덕분에 숙이는 자세들에서 호흡이 편안했다. 호흡이 편안하니 반다를 잡을 여유가 생기고 스탠딩 자세들도 조금은 더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선생님과 언제 한 번 수련을 '쉽게'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 있다. 방법이 쉽다는 뜻보다는 내 귀에는 의도와 태도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되었고 그 부분에 많은 부분을 동의했다.
요가 수련을 오래 해온 사람들일수록 아쉬탕가를 '쉽게' 하는 것이 의외로 어렵다. 아쉬탕가를 바라보는 의견은 다양할 수 있지만 대체로 그 바닥의 '씬'이라는 게 있다. '아쉬탕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쉬탕가 빈야사를 주로 수련하는 사람, '마이솔' 수련 방식 등 아쉬탕가에 특정된 수련의 여정이 있고 거기엔 엄격하고 체계적인 수련 시스템이 같이 형성되어 있다. 그로 인해 수련을 거듭할수록 느끼는 성장과 성취감도 클 테지만 그 수련의 '씬'이 더 많은 사람들이 아쉬탕가를 즐겁게 수련하는 데에 접근성을 떨어트리기도 한다는 측면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수련을 시작한 의도는 저마다 다르지만 나아가는 방향은 동일하다. 요가에서는 늘 자연스러운 호흡을 강조하는데 요기에게 자연스러움이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마치고 R과 걸어가며 산행 여파로 그녀의 어깨에 남은 피부 화상에 대한 슬픔과 그날의 무용담을 나누며 깔깔거렸다.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그녀에게 순조로움이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는데 결론적으로 순조롭게 끝이 난 것에 대단함을 표현했다. 어쩐 일로 R이 이번 주 러닝에 나오겠다고 말했다. 비장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작고 경쾌한 결심과 무심한 실천들이 우리 삶을 더 건강하게 다듬어주는 것 같다. 아쉬탕가도 그렇게 수련하고 싶다.
2024. 06. 20. (목) Yin flow
요 며칠 사이 계절의 보폭이 넓다. 자전거를 타고 요가원으로 달려가는 동안 바람을 계속 마주했지만 멈추면 이내 더워졌다. 땀으로 끈적이지만 내심 오늘만큼은 3층이 시원하지 않기를 바랐다. 인요가 시간엔 모든 것이 그저 있는 그대로인 상태가 수련에 더 도움을 주는 것 같고, 특히 조직을 이완시키고 늘리기에는 더운 온도가 더 안전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수업 시작 전에 누군가가 덥다는 이야기를 하여 결국 에어컨을 틀게 되었다. 날씨는 덥지만 그래도 아직은 6월이라 에어컨을 트는 것이 지구에게 미안했다. 에어컨의 혜택 속에 사는 것이 익숙해지니 도시가 뿜어대는 열기와 탄소 배출을 생각할 여력은 점점 쇠퇴하는 것 같다. 6월도 더운 것은 사실이고 불편한 점이지만 지금 인류에게 주어진 환경 상황을 생각하면 그 정도의 불편감은 정말 사소하고 하찮은 게 아닌가 늘 마음이 찝찝하고 죄책감이 든다. 안타깝게도 3층엔 선풍기가 없었다. 그래도 친절하게 틀어주신 시원한 공기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니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긍정적인 생각을 소환하여 가슴에 흡수시켰다.
오늘은 여름과 관련된 경락을 이야기해 주셨다. 여름-더위-여행 또는 휴가-기쁨과 행복-심장, 혈관으로 연상작용을 연결하는 설명이었다. 그리고 여름 이후 가을엔 추수하고 수확하는 계절이 찾아오니 그 시기를 대비하여 잘 준비하는 계절이 여름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세월을 통과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말이다. 추수를 대비하여 지금 잘 준비하자는 말. 비장, 위장의 기능이 떨어질 수 있는 시기라 관리가 필요하며 식이와 관련된 것을 넘어서서 삶에서도 잘 소화해 내고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설명이 갈무리되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 어딘가 잘 보이는 곳에 포스트잇을 붙였다.
잘 소화해 내자.
잘 받아들이자.
모든 것은 결국 양분이 된다.
양분은 내게 살아가는 힘을 준다.
블럭에 엉덩이를 얹고 비라아사나로 앉아 어깨와 손목을 자극했다. 다리 벌려 앞숙이기도 하면서 다리 내측을 자극하고 엎드려서 스트랩으로 발목을 걸어 한쪽 다리를 접으며 허벅지 앞쪽도 자극했다. 마음 같아서는 시원하게 늘려내고 싶었지만 지금은 강한 자극을 주기 위한 수련시간이 아니기 때문에 자제력을 발휘하고 잔잔한 자극 속에서 섬세한 감각을 느껴보고자 집중해 보았다.
볼스터에 기대고 옆으로 고개를 돌리는 자세에서 급격한 졸음이 쏟아졌다. 선생님의 큐잉에 바로바로 깨긴 했지만 자고 일어났을 때의 그 피로감이 느껴지며 좀처럼 눈이 잘 안 떠졌다.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다시 정신이 또렷해졌고, 언덕을 오르는 동안 몸에서 열이 나며 후끈거려 수련 때보다 옷이 더 많이 젖었다. 여름이 문턱을 넘으려 한다.
2024. 06. 25. (화) 복원
이번 주에는 저녁마다 일정이 있어 요가원에 갈 시간이 없다. 오늘이 어쩌면 이번 주에 유일한 출석일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코어와 다리의 지지하는 힘을 이용하여 마지막에 극락조 자세를 시도해 본다고 안내해 주셨다. 척추 웨이브를 타며 앞뒤로 왔다 갔다 소고양이 자세를 하다가 아르다 비라아사나로 앉아 골반도 정성껏 살살 돌렸다.
내가 좋아하는 측면 늘리기도 하고 등도 늘려냈다. 등에 느껴지던 통증이 이제는 갈비뼈 아래로 내려왔다. 등 쪽 갈비뼈 하단부의 통증이 원래도 자주 있었지만 다른 통증에 가려져 있다가 최근 들어 자신의 존재감을 과감하게 드러내기 시작하여 오른쪽 측면을 수축하거나 수그릴 때 꽤 아프다. 언제쯤 소실되려나. 몸이 점차 변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수련하면서 여러모로 사용해 봐야 알 수 있는 통증이기에 이 또한 흥미롭다. 건드리지 않았으면 모를 통증.
오늘 선생님이 수업 때 쓰신 음악들 중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이 줄줄이 등장하여 길에서 우연히 만난 친한 친구처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차에서 자주 듣던 음악들이라 마치 드라이브를 하는 기분도 살짝 다녀갔다. 그런 지 몇 년 되었지만 새로운 음악은 거의 듣지 않게 되었다. 나의 플레이리스트처럼 내 삶에도 늘 익숙하고 친숙한 것으로만 둘러싸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는 것을 즐겨 하지 않게 되었다. 늙.
저녁에 돼지고기를 구워 쌈까지 싸먹고 배가 볼록하게 부른 상태로 온 탓에 속이 더부룩하여 걱정과 후회를 가득 안고 수업을 시작했었다. 수련 때 불편할 것 같아 걱정이었는데 선생님이 수업 때 나눠주신 오일 속 로즈마리 향 덕분인지 마치 장면이 바뀐 듯이 소화가 되어 어리둥절했다. 대단한 소화력, 다행이고 신기한 일이다.
쿵쾅거리는 음악소리로 공간을 울리며 마지막 빈야사 플로우를 연결하고 뜨끈해진 몸으로 극락조 자세를 연습했다. 각자 시간을 두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단계에서 머무르기로 하고 호흡에 많은 투자를 하며 여유로운 마음으로 임했다. 세 번 정도 좌우 연습을 하고 아기 자세로 휴식을 취했다. 계속 쓰고 돌아보는 삶, 이렇게 움직여도 등이 멀쩡하니까 이번 통증도 잠깐 한 번 내버려두기로 한다.
2024. 06. 28. (금) 하타
초록색 탑에 파란색 바지, 요즘 즐겨 입는 색깔 조합이다. 매일 어둡고 무채색 계통의 색깔을 선호하지만 요가복은 밝은색으로 입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 원색이 주는 착각과 환상을 몸에 품으면 나도 그런 사람처럼 느껴지곤 한다. 요 며칠 정신없이 바쁘게 지낸 탓에 몸에 피로가 많이 쌓여 있다. 특히나 어깨와 고관절은 마치 열흘은 움직이지 않은 것처럼 굳은 느낌이었는데 금요일 수업에 참여할 수 있어 다행이다.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호흡명상이 시작되고 얼마 후부터 기분이 좀 이상했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지만 마치 술을 마신 듯 알딸딸한 기분이랄까 의식의 한구석으로 기운이 어딘가에 빨려 들어가듯 오목한 지점이 발생하고 거기에 발을 담그고 잠깐 동안 고요하게 머무르게 되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냥 졸렸던 것 같다. 집중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덩치가 커져서 졸린 상태를 인정하지 않았을 뿐, 나는 졸 뻔한 거다.
앉은 자세에서 고관절과 다리를 풀고 트위스트도 하면서 축을 이용한 가동 범위와 스트레칭을 이어갔다. 젖은 수건을 비틀어 짜듯 비틀리는 순간에 나의 축이 어디에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나는 주로 꼬리뼈를 생각한다. 꼬리뼈가 바닥에 나사로 박힌 것 같은 상상을 하며 몸을 세워서 비트는데 잘나가다가 항상 문제가 되는 지점은 역시나 목이다. 체간보다 성급한 모가지. 타이트하고 긴장된 나의 흉쇄유돌근이 유독 드러나는 동작 중 하나가 비틀기인 것 같다.
부장가아사나에서 등에 힘을 채워 나갈 때는 등이 별로 아프지 않다. 그런 걸로 봐서 최근 내 등 통증의 원인은 등의 어느 지점에서 과도한 수축이 일어나는 것 같다는 추론을 해본다. 그것을 조일 때는 아프지 않은데 반대 방향으로 늘릴 때는 무척 뻐근한 것이다. 알게 모르게 쌓여가는 것을 문제점으로 인식하기보다는 과정으로 인식하기로 했다. 어쩌면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결론에 대한 합리적인 사유를 대야 하기 때문에 지어낸 핑계일지도 모르지.
브릿지와 세투반다, 그리고 우르드바다누라사나까지 연결하고 마무리 비틀기 후 사바아사나. 내일 떠날 주말여행 생각에 사바아사나에서 잡생각으로 자주 길을 잃었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가장 편안한 자세에서 가장 길을 잘 잃어버린다. 졸린 상태로 시작했지만 끝까지 잘 몰입해서 임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