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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상인 Nov 17. 2015

할머니는 정말 미스터리해!

시인할머니, 치매 환자랍니다.

진짜 답답하네요.
저는 치매 환자라니까요!


  몇 년 전 내가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할 때 만난 잊지 못할 할머니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농담이라고 하기엔 너무 단호하게 말씀하셔서 진심이긴 한 것 같다. 스스로 치매환자라 자기소개를 하는 할머니께 내가 무어라 대꾸해야 좋을지 짧은 시간 머리를 굴려보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정체불명의 먹먹함에 떠밀려 맘속으로 질문해 본다.

할머니,
그런데 할머니가 치매환자라고 누가 알려줬어요?




  할머니를 처음 만난 건 2주 전이다. 폐렴으로 입원하여 폐부전 상태가 될 만큼 병세가 심각해져 호흡곤란으로 병실에서 중환자실로 급하게 침대를 밀고 내려왔고, 인공호흡기 치료를 위해 목에 인공기도를 삽입하여 집중치료를 시작하였다. 할머니와 나는 거의 베스트프렌드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3교대 스케줄로 출근을 하다 보면 며칠마다 담당환자가 약간씩 달라지기 마련인데 이상하게 지난 2주 동안 내 스케줄마다 담당환자엔 꼭 할머니와 '짝'이 되는 바람에 할머니의 손가락에 난 티눈부터 옆구리 수술자국, 잇몸 상처, 청진기에 들리는 고글고글한 폐음, 팔의 주사자국까지 속속들이 외우게 되었다.

  인공호흡기 치료를 하는 동안은 진정제가 들어가다가 상태가 호전됨에 따라 기계의 도움으로부터 조금씩 독립하기 위해 서서히 진정제를 끊게 되는데, 의식이 깨었다 싶으면 눈을 보고 차근차근 설명한다. 안녕하세요. 많이 불편하시죠? 여기는 집중치료실입니다. 숨이 차서 급하게 응급처치받으셨는데요. 며칠 동안 수면제 주사를 맞으며 주무시느라 모르셨을 거예요. 지금 중환자실에 누워서 치료를 받고 계시는데요. 조금만 더 애쓰면 내일은 호스를 빼준다고 하니 훨씬 수월해지실 겁니다.

  이때부터였다.
  할머니는 화가 난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 인공기도 튜브 때문에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어떻게든 내보려고 안간힘을 쓰셨다. 왜 화가 난 건지 알고 싶었다. 보통 이런 경우 우리의 스킬이 있다. 마치 스무고개 게임 하듯 계속 유추하며 질문을 던지거나 연필을 손에 쥐어주고 글씨를 쓰도록 하는 것, 반복된 요청사항이나 질문은 문장에 번호를 매겨 손가락으로 표시하도록 하는 방법 등이다. 사실은 환자들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간호사는 일부분 짐작할 수 있다. 목에 있는 호스는 언제 빼나요? 숨쉬기 불편해요. 목말라요. 어딘가 가려워요, 손 억제대를 풀어줘요—인공기도는 기도 내에서 풍선이 부풀려져 고정되어 있는데, 환자가 괴로워서 엉겁결에 빼버리면 기도와 성대에 엄청난 손상을 줄 수 있어 대부분 억제대를 착용한다—등이 그것인데, 할머니는 쥐어드린 연필을 집어던지고 손을 내저으시기만 했었다.

  눈빛과 행동이 불안 불안했지만 환자카드에 떡하니 적힌 연령은 자그마치 만 96세였기 때문에 힘든 치료를 받고 있는 연세 많은 노인에게 맑고 온전한 의식 상태를 기대하는 건 어쩌면 욕심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우선 할머니의 소리 없는 아우성을 숙달된 위로와 격려로써 무마하고 내일이면 그 호스를 빼준다고 하니 하고 싶은 말은 그때 하자고 타이르며 다음 근무 간호사에게 이러한 상황을 인계했더랬다.

할머니 멘털 잘 관찰해야 할 것 같네요.

나만 보면 저렇게 역정을 내시는 게 완전히 명료한 정신은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할머니 연세에 맞지 않게 윗몸일으키기 엄청 잘하세요. 몸을 반으로 접어서 손으로 입에 있는 튜브를 뽑으려고 몇 차례나 시도하셨다가 나한테 딱 들켰으니까.


  우리는 이렇게 미주알고주알 모든 상황을 다 아뢰느라 인계시간에 이미 에너지를 다 써버리곤 한다.




  의사소통 요령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한 번은 베트남 여성이 응급수술 후 출혈로 혈압이 불안정하여 중환자실로 입원한 적 있다. 한국말과 영어 둘 다 할 줄 모르는 이 여성에게 통역 봉사자가 없는 시간엔 아픈 곳 없냐는 기본적인 질문도 할 수가 없어 답답했다. 결국 우리는 인터넷 검색 결과를 모아 베트남어 기본회화 리스트를 작성하여 알고리즘까지 짰고, 상황별 질문은 인터넷 번역기를 이용하여 스피커 소리를 들려주는 등 오만가지 방법을 써보기도 했었다. 여하튼 외국인 환자, 인공기도 환자, 아주 가끔 있는 농인 환자—이때는 왜 수화에 관심 없었을까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를 막론하고 환자들과 의사소통을 위해 동원하는 노력들이 많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건데, 할머니는 이런 노력을 모조리 거부하며 일방적인 분노만 표출하던 상황이었다.

  다음날 출근 했을 때 인공기도를 제거하기 위한 준비로 분주한 의료진들 틈에서 할머니는 마치 생일 파티에서 고깔을 쓰고 당장 초를 끄고 싶어 축하 노래가 끝나기만 기다리는 들뜬 아이와 같은 표정으로 차분하게 앉아 계셨다. 말똥말똥한 눈빛과 고분고분함으로 전공의가 묻는 질문에 적극 고개를 끄덕이며 멀쩡한 리액션을 보여줌으로써 인공기도를 제거하겠다고 한 의사의 결정이 틀리지 않았음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

드디어 호스는 제거되었고 나는 할머니께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이제 시원하시죠? 며칠만 더 잘 치료받으시면 중환자실에서 나갈 수 있어요. 나름 상냥하게 건넨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너 잘 만났다!’하는 표정으로 하신 말씀이 바로 이거였다.

- 진짜 답답하네요. 저는 치매환자라니까요!!

  첨엔 내가 잘 못 알아들었나 생각했지만, 이어지는 확인사살에 내 청력과 인지능력은 멀쩡했음이 증명되었다.

- 저는요, 중환자가 아니라 치매 환자라고요!

- 아... 네.. 중환자라는 말이 듣기 싫으셨군요. 응급처치받으러 집중치료실 오실 때는 몹시 아프셨지만 열심히 치료를 받으셨으니 이제는 중환자가 아니에요. 할머니 말씀이 맞아요. 하하하.

- 아니 글쎄, 나는, 중환자가 아니라, 치매 환자, 라구요.

  이렇게까지 단호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또박또박 똑 부러지게 하신 말씀에 뭐라 대꾸해야 할지 요량이 생각나지 않았다. 알겠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왜 그런 말씀을 하는지 물어볼까, 대체 중환자랑 치매환자가 무슨 상관이냐고 논쟁을 벌여야 할까, 치매 어르신 말씀이니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야 할까. 그나저나 할머니의 그 말이 왜 이렇게 내 코를 콕콕 찌르는 거지?



  알고 보면 할머니는 근사한 분이었다.
  100년 가까이 사는 동안 은빛으로 갈아입은 단발머리칼과 지팡이를 짚고 매일 면회시간마다 오시는, 할머니가 화백이라 불렀던 풍채 좋은 할아버지만 봐도 그랬다. 당시 나는 26살이었는데 나 같은 애송이의 삶을 할머니는 네 배나 살았다고 생각하니 신기하기까지 했다. 할머니는 젊을 때 미국에서 대학도 나왔다고 했는데, 코리안식 친근한 발음이지만 영어도 잘하셔서 나는 재밌다며 자꾸 영어로 말씀해 보시라고 조르곤 했고, 그때마다 할머니도 ‘까짓것’하며 자신 있게 영시를 읊어주시곤 했다. 애틋하기 그지없던 두 노인의 면회시간에 하루는 할아버지가 배낭에서 앙골라 털로 짠 밤색 빵모자를 꺼내시더니 직접 할머니에게 씌우셨다.

우리 할멈은 치매에 걸려서 머리를 항상 따숩게 해 줘야 돼. 여차하면 영감도 못 알아본다고.

  그 말에 이어지는 두 분의 폭소. 숨이 넘어 갈듯 꺼이꺼이 한참을 웃으신다.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이냔 말이지. 할머니는 정말 영민하고 멀쩡해 보이는데 두 분 다 왜 이렇게 치매타령을 하시는지. 두 분의 꺼이꺼이 웃음바닷속에서 정신 차려 보려 가까스로 나는 헤엄쳐 빠져나왔지만 당황하지 않을 순 없었다.

우리 할망구가 이래 봬도 시인이야. 시집도 있어요. 이 손으로 시를 써야 한다고요.

  무척 알쏭달쏭한 두 노인에게 자꾸 질문을 하고 싶은데 그 질문이 현재 상황을 변화시키는데 큰 의미가 있을까 싶어 관두기로 했다. 100세를 바라보고 있는데 중증 증상이 아니고서는 약간 엉뚱한 대화를 한다거나 약간의 건망증을 동반한 치매 증상 정도야 가질 수도 있지 않은가. 담당 의사가 오면 한 번쯤은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이 또한 인계로 넘겼다.(기-승-전-인계, 맞습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엉뚱하고 미스터리한 행동들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하루는 처음으로 할머니의 자녀, 손주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면회를 하는데 방금까지 나랑 멀쩡하게 대화를 해놓고선 자식들이 오자 할머니는 아주 깊은 수면에 빠진 양 흔들어 깨워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잠자는 연기를 하시는 거다! 자식들도 뭔가 수상하다 싶으니 내게 심문하듯이 수십 개 질문폭탄을 던졌고 난 이상한 해명을 늘어놓느라 정신이 혼란스러워 답답하고 짜증도 올라왔는데 면회시간이 끝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부르셨다.

갔어? 저 애가 내 막내딸이야.

무슨 대학교 무슨 학번 무슨 과 졸업, 저 애가 자기 아들들 다 장가보내놓고 지금 일본에 살고 있는데 날 보러 한국까지 온 거야. 쟤는 내일 또 올 거야. 도장 달라고 그러겠지만 난 절대 안 줄 거야.

너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응?

  알긴 뭘 어떻게 알아듣나요. 다만 할머니는 지금 제게 너무 하시다는 것 하나는 충분히 알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 난데없이 할머니의 그 단호했던 얼굴 표정과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바라볼 때의 사랑 그득한 눈빛과 보는 것만으로도 코가 간지러웠던 앙골라털모자와 두 분의 꺼이꺼이 웃음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내게 말을 걸어오면서 나는 그냥 입을 다무는 쪽으로 선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목한 이 미스터리한 사항들에 대해서 이제부터는 알고 싶어 하지 않기로 결심했고, 결국 끝끝내 사연을 듣지는 못했다.



  내가 할머니를 담당하는 동안 할머니도 나를 자기가 ‘담당’한 간호사로 여기셨는지 한시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으셨다. 나는 할머니 외에도 다른 중증환자를 함께 담당하고 있어 바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정신이 없었는데 할머니는 그 모든 상황을 관찰하시며 너는 대체 일만 하고 밥은 언제 먹으러 가느냐부터 저 환자가 너를 부른다, 저 기계가 소리를 낸다, 이 팔 주무르는 기계 좀 그만 멈춰라(자동혈압계), 저 사람 주사가 다 들어갔다, 전화벨이 울린다까지 사사건건 걱정과 관심과 잔소리와 간섭과 보고를 담당하시며 우리의 사이는 더욱더 돈독해져 갔다.

  미스터리함으로 똘똘 뭉쳐진 우리 시인 할머니 환자. 할머니는 시인이 확실했다.
  할머니에게 섬망이 찾아온 그날 밤 나에게 퍼붓는 창의적이고 무수했던 그날의 욕설들을 주워 먹으며 나는 그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중환자실은 24시간 내내 불이 꺼지지 않기에 의식이 있는 환자들이 지내기에는 더없이 피로한 곳이고, 허구한 날 시끌시끌하게 들이닥치는 중증 환자, 갑작스럽게 터지는 심폐소생술 상황, 가래 뽑는 소리, 식도정맥류 환자의 피 토하는 소리와 냄새, 임종환자 가족들의 울음소리, 각종 모니터와 치료 장비들의 알람소리도 거기에 한몫을 하여 결코 숙면을 취하기란 쉽지 않다. 내일이면 일반병실로 올라가기로 계획되어 있는데 하필이면 대망의 하루 전날 섬망이 찾아온 것이다. 낯선 환경과 수면부족, 피로함, 불안함이 누적되면서 일시적인 정신착란 증상이  생기는 것인데, 그렇게 타령을 부르시던 치매가 아니라 이것은 섬망이었고 곱상하고 요조숙녀같이 새침하던 할머니가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어여쁜 자기 담당간호사도 못 알아보고 화를 내면서 몸에 착용한 치료선을 다 잡아 뜯고 누군가의 이름을 애타게 외치는 것이 아닌가. 시간은 새벽 세시. 할머니의 난동에 의식이 있는 다른 모든 환자들은 일제히 말똥말똥 각성상태로 돌아오게 되었고, 우리는 의사에게 연락하여 조치를 상의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의 알쏭달쏭 할머님이 나에게 던진 수많은 욕설들은 내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참신한 내용이어서 듣는 순간 나는 바닥에 쓰러져 굴러다니며 배꼽을 잡고 웃느라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했던 기억이 난다. 푸하하. 할머니, 뭐라고요?

야! 이 똥물에 튀겨 죽일 년아!
야! 이 가랑이를 찢어서 새끼를 꼬아버릴 년!
야! 이 발바닥에 구녕을 내서 전봇대에 매달아 버릴 년!


  이 외에도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듯이 다양하고 기상천외한 욕설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차마 글로 써 내려가기엔 모두의 정신건강에 해로울 것 같아 더 이상은 밝힐 수가 없다. 한 동안 우리 간호사들 사이에선 할머니가 남긴 그 욕들이 히트가 되어 상대방을—특히 나에게—놀려 먹는데 유행어처럼 사용되곤 했다. 어르신에게서 흠씬 욕을 들어먹고 있는데도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나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는 할머니의 작문 실력에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웃고 또 웃었고, 더불어 할머니의 욕설을 함께 청강하고 있었던, 그날 밤 한숨도 자지 못한 다른 환자들을 위로하느라 짬짬이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여야만 했다는 점도 할머니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들 중 하나이다.

  다음날 아침에 나는 퀭한 눈으로 퇴근을 했지만 할머니는 해가 밝자 그제 서야 부족한 잠을 다시 채우기 시작하셨고, 아침식사도 거르고 선택한 깊은 수면 끝에 서둘러 일반 병실로 이동을 하셨다고 하는데, 가시면서 오전 근무 간호사에게 대고 그렇게 나를 찾으셨다고 한다. 동그란 안경을 낀 그 아이에게 전달하라며 말씀하신 할머니의 전갈은 이러했다.


그 애기한테 그동안 고생했다고 전해.
네 덕분에 결국
내가 또 살아서 병실로 올라간다고
꼭 말해. 응?



어이구, 우리 치매 할머니,

할머니는 정말 미스터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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