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으면서 싫어요
몇 년 동안 공부만 하다 보니, 속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해졌다. 고시 공부를 하다 보면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이랑만 대화를 하게 된다. 작고 깊은 우물 안에 갇혀있는 느낌이었다. 하루 10시간 넘게 앉아있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정말 오랜만에 찾아왔다.
원래 나는 티브이도 잘 안 보고, 연예인도 정말 모른다. 어차피 나랑 알게 될 사이가 아니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관심이 정말 안 갔다. 게다가 요즘 유튜브에서 먹방이 그렇게 인기를 끌고 있는데, 나는 먹방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먹방이 인긴데 내가 불편한걸 보면 내가 지금의 유행 흐름에 맞지 않는 사람인가싶다) 여기서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은, 먹방을 보면 식욕이 당기기는커녕 '저 사람은 나중에 괜찮을까'라는 걱정이 든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오지랖일 수도 있다.. 자기가 좋다는데) 먹방 자체가 유튜브 세계의 거대한 트렌드인 만큼 나도 즐겨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결국 나라는 사람은 그 콘텐츠를 볼수록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어쨌든 유튜브는 속세를 알 수 있는 끝판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긴 봤는데, 내가 끌렸던 콘텐츠들은 인문학을 다루거나 한 분야를 통달한 사람들이 말하는 인생 얘기같은 거였다.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것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찝찝하게(?) 자리 잡고 있는 '영어' 관련 콘텐츠였다. 생각해보면 신기하다. 초등학생 때부터 영어를 그렇게 배웠(댔)는데 막상 외국인을 만나면 말이 술술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토익과 같이 스피킹이 없는 시험은 줄곳 900점이 넘어 사실 마음 한편에는 '영어를 못하진 않지'라는 생각을 하고는 있었다. 근데 문제는 스피킹에는 잼병이라는 것이다. 유럽 여행을 갔었을 때도 섬세한 표현을 하지 못하는 한계 때문에 외국인들과 깊은 대화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쉬웠다.
일명 ‘빨간 모자 선생님’. 라이브 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아는 분도 있을 텐데, 매번 빨간 모자를 쓰고 영어를 가르쳐주셔서 별명이 그렇다. 스피킹 학원도 다녀보고 회화 스터디도 해봤지만, 결국 그 순간에만 조금 늘 뿐 그 이후에는 급격히 회화에 자신이 없어졌다. 근데 빨간 모자쌤의 강의들은 돈 내지 못해서 미안할 정도로 뛰어난 표현들을 아주 쉽고 세심하게 소개해주고 계셨다. 또 그 선생님의 눈빛이 잘 가르쳐주고 싶다는 마음이 듬뿍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실력도 실력이시지만 그 진실함이 느껴지는 것에도 마음이 끌렸다. 많은 분들이 이렇게 생각했는지 구독자는 무려 80만 명을 넘는다.
또 예전부터 좋아하던 김미경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금융전문가 존 리 씨의 강의를 듣고.. 이런 분들의 강의만 골라 들었다. 그러다 보니 유튜브 알고리즘이 내가 지적 목마름이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래서 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분들을 추천해주는데, 반신반의하면서 채널에 들어가 본다. 신기하게도 그 채널들이 거의 잘 맞았다. 요즘 빠진 유튜버로는 이연님이 있다. 전직 디자이너이자 그림 유투버다. 근데 이 분의 유튜브를 계속 보게되는 이유는 이 분이 그림은 잘 그리는 것은 물론, 말을 굉장히 잘하신다는 것이다. 그림을 보고 들어왔지만 이연님의 생각이 멋있고 똑 부러지고 그분의 철학이 궁금해지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벌써 40만 유튜버로 최근 세바시 강연을 하셨다.
또 알고리즘의 추천을 받은 유튜버로는 조승연 씨의 유튜버가 있다. 그분에 대해서는 단순히 언어 천재, 공부 천재라는 타이틀이 달려있다는 것만 알았다. 근데 그분의 유투버를 보니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짐작이 간다. 일단 철학책을 거의 마스터하고 계셨고, 그 어렵다는 철학책을 여러 번 읽으면서 자신만의 의미 해석을 하시며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고 계셨다. 또 평상시에 그냥 넘어갈 수 있었던 질문들 예를 들면 ‘미국은 왜 그렇게 총이 많을까?’ 등에 대해 입체적으로, 그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서 설명해주시는 점이 인상 깊었다. 총기협회 로비가 심하니까 그렇겠지, 라고 생각하며 지나갔던 나를 돌아보게 된다.
이런 분들을 보다 보니 이렇게 경쟁력을 갖춘 분들이 많아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창의적이고 경쟁력있는 사람들이 사회의 원동력이니까) 이런 분들이 있는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경쟁력을 확보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버로 성공하는 것은 생각도 안 했다. 그냥 이렇게 지적으로 매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분들은 몇 만 명 중 하나겠지,라고 생각하며 나를 위로하면서도 갑자기 내가 살아왔던 인생들을 돌아보며 비교를 하게 됐다. (술로 범벅인 20살 초반의 추억이 그들에겐 어리석어 보이겠지 하면서) 그들이 이렇게 어떤 분야에서 낭중지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은 적게는 몇 년, 길게는 몇십 년 동안 축적해온 시간들이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언젠가 요즘의 젊은이들은 큰 꿈을 갖고 살아가지 않는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승진을 해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고, 사업을 해서 크게 성공하는 것을 꿈꿨다. 그러나 요즘은 욜로족, 지금 행복하게라는 말이 유행하듯이 지금에 만족한다고 사는 트렌드가 있다. 큰 꿈을 갖지 않으니 죽도록 아부하며 살지 않아도 되고,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를 덜 받아도 되는 요즘의 젊은이들로 결론을 낸 기사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살면 편하겠다 싶으면서도 나는 그렇게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더 멋진 나를 위한 미래를 계획하고, 한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왔고 지금도 들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난 이런 생각을 가지며 살아갈 것 같다.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