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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ve bin Sep 23. 2021

부모님의 가치관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

부모님께 가치관을 직접적으로 물은 적은 없지만, 어림짐작으로 알 수 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믿으며, 너무 튀는 것보다는 무난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괜찮은 삶이며, 결혼은 하는 게 좋고, 직업은 돈을 버는 목적이면 충분하며, 사랑은 유효 기간이 있으니 능력과 존중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고, 부모가 하라는 대로 해서 나쁠 게 없다, 자식을 키울 때는 방목하는 것보단 제대로 이끌어가는 적극적인 부모가 낫다 정도로 요약된다.


부모님의 가치관은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친밀한 우리 가족 관계도 한몫했다. 우리는 정서적으로도 매우 밀착돼있는 관계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의 생각을 따라가려는 성향이 있다. 나도 그랬다. 부녀라는 관계적 특성과 나의 애착 정도는 부모님의 가치관을 따라가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했다. 사실 지금도 의식적으로 부모님의 영향을 빼고 생각해보자고 최면을 걸지 않는 이상 나는 내 생각을 부모님의 입장에서 하는 습관이 배어있다.


누군과의 관계를 이어가려고 할 때도, 무엇을 공부할지 결정하려고 할 때도 부모님의 의견이 어떨지 자동적으로 고민한다. 내가 이걸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계속 따르고 있는 이유는, 부모님의 말을 따랐을 때 지금까지 크게 탈이 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재밌거나 가슴 뛰는 선택은 아니라도 일종의 보험 같은 선택은 될 수 있었다. 솔직히 부모님의 생각과 행동이 그만큼 괜찮았기에 내가 여기까지 따라온 것이다. 어린 시절 힘들게 살아왔지만 힘들게 극복하고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의 입장에선 자기 딸이 꽃길만 걸으며 편안하게 살았으면 하는 소망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바를 밀고 나갔을 때 성공적인 길을 걸은 것도 아니다. 변명을 하자면, 그렇게 부모님의 생각과 다르게 행동하려고 마음먹으면 나의 일단 마음이 참 불편하다. 또 경제적으로 부모님께 도움을 받고 있는 상황도 한몫한다. 집에 오면 부모님의 잔소리를 매번 듣기 때문에, 결국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방향을 틀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내가 원하는 바를 제대로 끌고 나가는 그 첫발부터가 나한텐 도전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요즘 탈이 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이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품게 됐다는 얘기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 인생 전반을 곰곰이 되짚어 볼수록 나의 의지보다는 부모님의 의지가 개입된 삶을 살았던 것 같기 때문이다.


가령 내가 어떤 시험을 준비해본다고 얘기했을 때도 그랬다. 네가 선택했으니까 해보라는 말 대신, 왜 그런 걸 하냐는 말부터 나왔다. 부모님의 생각에는 그건 '좋은' 직업은 아니라는 건데, 돈은 많이 벌어도 너가 24시간 신경써야 하는 일은 맘에 안든다는 이유였다. 일을 하는 목적은 잘 먹고 잘 사는 평온한 가정을 꾸리는 것인데, 왜 굳이 사서 고생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때 백만 번 들었던 '그걸 해서 뭐 하냐'는 뉘앙스의 말들은 나의 마음속에 항상 남아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인데, 부모님 말처럼 일은 돈벌이 수단일 뿐이고, 직업 이외의 것에서 성취감을 얻으면 되는 건가? 내가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건가? 혼란스러웠다.


친구나 이성친구를 만나는 것에도 부모님의 가치관이 영향을 미쳤다. 너를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능력 있는 안정적인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라는 말을 귀에 못에 박히듯 들었고,  말은 능력이 없으면 생각도 하지 말라는 일종의 불문율처럼 여겨졌다. 짐작하자면,  능력을 판가름하는 부모님의 기준은 학벌이나 직장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살아올 때 가장 괜찮은 삶이란 최고의 기업에 들어가 편하게 일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미는 일이다.


부모님의 가치관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나 스스로 그것을 판단할 기회가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얘기다. 부모님의 속상해하는 표정이 보기 싫어서 애초에 싹을 잘라버렸던 경험들과 꿈들 그리고 인간관계를 한번 내 맘대로 해보고 후회할걸, 하는 미련이 남게 했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내가 괜찮은 길을 찾았더라면 후회라는 것은 없을 텐데. 지름길을 알려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나도 사람인데 내 맘대로 한 부분도 있을 테지만, 결과적으로는 부모님의 그 속상한 표정이 주는 압박을 참아내지 못하고 방향을 휙 튼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나를 정서적으로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키워준 부모한테 감사해야 하고, 그들의 말을 잘 따르는 게 맞다고 믿었다. 나를 가장 지지하고 사랑해주시는 분들에게 실망을 끼쳐드리지 않고 싶었던 걸까?


학창 시절 모자라지 않은 훌륭한 환경을 제공해주신 것에는 참 감사하다. 다만 적어도 성인이 된 20살 이후에는 주도적인 삶을 살았으면 어땠을까? 옆에서 부모님이 그냥 내 생각을 믿어봐 줬으면 나의 인생이 달라졌을까?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딱히 좋은 길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 삶에 대한 책임과 후회는 전적으로 나의 몫이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부모님의 말씀을 따르도록 나를 허용했기 때문에, 내 책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어쩌면 우리 부모님의 말이 그만큼 괜찮은 말이니까, 또 멋있는 인생을 살아오신 분들이니까, 내가 사랑하는 분들이니까 내가 따르기로 결정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주체적으로 살아가지 않고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삶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면?


이제 29살이 몇 달 남지 않았다. 사춘기가 참 늦게 온 걸까? 그렇지만 나는 이제라도 조금씩 발버둥을 치면서 나에 대해 조금 더 탐구하고, 오로지 내 생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해볼 생각이다. 부모님의 가치관과 나의 가치관은 뒤섞여버린 지 오래다. 이를 무짜르듯 분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도 시도는 해보려 고 한다. 그게 옳든 아니든 선택도 내가 하고 책임도 내가 지는 삶을 살아보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든다.


누군가가 ‘이런 것을 인식하고 있는 것 자체가 주체적인 거야’라는 말을 했다. 힘이 된다. 여기서부터 발걸음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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