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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ve bin Oct 19. 2021

존중을 받는다는 것

너는 귤이지만 존중할게

존중, 느낌으로는 알겠는데 설명하기는 어려운 단어다. 높은 () 귀중할  () 쓴다는 것을 알고서는 어쩐지 부담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렇게 높여질 만한 사람인가?라는 자아 성찰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존중받을 사람이 누구냐  질문을 받으면 (1차원적인 생각이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키워드는 부모님과 검사, 판사 정도였다. 그들 사이에 내가 슬쩍 끼는 것이 자연스럽지는 않았나 보다.


네이버 지식백과에는 ‘사람은 왜 존중하며 살아야 할까요?’라는 물음에 ‘인간은 누구나 소중한 생명을 가졌기 때문에 ’라고 나온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만으로 서로 존중하는 세상이면, 존중을 강조할 필요가 있었을까?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우리가 서로 존중해야 한다고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는 존중이 그렇게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 이상한 사람, 예의가 없고 질서를 안 지키는 사람,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포함해서 그 누구나 존중한다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범죄자도 어쨌든 인간이니까 존중한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몇이나 있을까?


우리는 서로를 쉽게 존중하지 않는다. 내 생각과 너무나 달라서,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존중해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은 어렵지만 존중해야 하지 않을 이유는 무수히 많기 때문일 것이다.


존중이라는 단어를 육성으로 들어본 적은 거의 없다. 보통 존중은 느껴지는 성격의 것이다. 긍정적인 감정인 것만은 분명한데, 그렇다고 나와 친밀하거나 유대감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이일수록 존중받을 확률이 커질 수는 있을 것이다.


존중을 받는다는 느낌은 언제 받는지 특정하기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분명 느낀 순간들이 많았는데. 애초에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는 서로에게 어느 정도의 존중이 깔려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서로 의견이 대부분 같을 때는 그냥 스무스하게 흘러간다. 존중이 낄 자리가 없다.


그렇다면 내가 존중을 받는다고 강하게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아무리 쿵작 이 잘 맞는 사람이라고 해도 의견이 안 맞을 때가 있다. 그런데 자신의 의견과 다르면 그게 불편하다는 티를 사람이 있고, 내 의견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의견이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아무리 자신과 다른 의견이라도 귀 기울여 들어주면서 ‘너의 생각은 그랬구나’라며 내 생각을 ‘존중’해주는 사람이 있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데도 내 생각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겠다는 그 표시를 받을 때 나는 존중을 느낀다. 여기서 나의 생각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나의 의견도 자신의 의견만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 의견대로 하진 않아도 된다. 나는 짬뽕이 먹고 싶다고 했는데 상대방은 짜장면이 먹고 싶다면 짬짜면을 제안하는 그런 사람. 그런 존중에서 나는 현명함도 함께 느낀다. 오늘은 너 먹고 싶은 거 먹자, 라는 한 마디가 가능한 사람. 타인과 자신의 욕구를 모두 만족시킬 그 합의점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런 존중받은 경험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나의 자존감을 형성한다. 나의 말과 행동을 표현하고, 상대방이 그런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서 나도 소중한 사람이구나라는 확신을 해가는 것이다. 나의 희로애락을 표현하고, 내 감정에 솔직해질 때, 내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을 때도 사람들은 나를 좋아한다는 그 경험이 쌓일 때.


그래서 자신을 존중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느냐가 참 중요하다. 학습된 무기력 이론이 문득 떠오른다.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 곁에 있는 것이 익숙해져 있으면,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기 꺼려지고, 감정이 억눌리기 시작하면서 감정을 표현하지 않게 굳어질 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존중하는 경험, 내가 존중받는 경험이 참 소중한 이유다. 구성원의 감정을 존중해버릇한 가정환경이 제일 좋은 발판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주변의 존재들이 존중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자존감을 세워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약간 아이러니한 점이 있었다. 남의 욕구에 전적으로 맞춰주고 싶은 생각에(깊이 사랑하는 마음에, 혹은 자존감이 낮거나)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지 않는다는 사람의 목적 은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상대방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지만 정작 상대방은 자신을 존중한다고 느낄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니까, 동등하게 자신과 타인의 욕구를 잘 표현하고 그것을 조율하는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서로 존중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깊이 사랑하는 마음에서의 존중은, 상대방이 눈치채고 알아서 상대방의 욕구도 채워줄 수는 있을 것 같다.


존중하고 싶고 존중받고 싶은 나는, 내 욕구와 상대방의 욕구 균형을 잡을 줄 아는 사람이 돼야겠다. 나의 욕구에 깨어 있는 사람이자, 남의 욕구에도 민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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