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ve bin Jul 13. 2021

순환론

광화문 교보문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다.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귀한 공간이기도 하거니와 책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의자를 곳곳에 배치한 점이 인상깊었기 때문이다. 상업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따뜻함도 갖춘 그 공간이 참 좋았다.


처음에는 책을 읽을 공간이 많아 편하다고만 생각했지만, 교보문고 창업주의 철학이 궁금해진 날이 있었다. 찾아보니, 신용호 창업자께서는 책이 결국 지혜와 희망의 핵심이라고 믿었고, 다른 수익을 더 창출 할 수 있는 금싸라기 땅에 교보문고 개점을 밀어붙이셨다고 한다. 1) 모든 고객에게 친절할 것 2) 한 곳에 오래 서서 책을 읽어도 그냥 둘 것 3) 책을 이것저것 보고 사지 않더라도 눈총 주지 말 것 4) 책을 노트에 베끼더라도 그냥 둘 것 5) 책을 훔쳐가더라도 망신 주지 말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좋은 말로 타이를 것. 그가 정한 5가지 지침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조금씩 수정된다고 하더라도 그의 철학은 지금 봐도 참 세심하고 자상하다.


273 버스타고 갈 때 마주치는 교보생명 건물 광화문글판은 항상 눈이 간다. 계절의 변화와 시대의 변화를 모두 담는 글귀를 심사숙고해서 그곳에 붙이는 것은 보통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 노고가 빛을 바라듯, 항상 울림을 주는 문구들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번 여름 문구는 ‘올여름에 할 일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는 일’. 두려움, 불안, 고통.. 그늘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나는 사람들의 그늘을 읽는 것을 두려워하는 편이다. 마치 상대방의 그늘을 읽고 나면 그 그늘에 스며드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그늘에 스며들어 괜히 피해를 더 주는 것은 아닐지 조심스럽다. 때로는 내가 과연 그들의 그늘을 감히 읽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한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의 특성상, 처음 본 사람들의 사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야기 속에서 무엇을 그늘이라고 규정해야 할지도 참 고민스러운 일이다. 최근, 새벽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자기는 자신의 아버지가 없는 것을 이겨내려고 평생을 노력하면서 극복해왔는데, 엄마가 자기에게 '우리가 너의 결점이 돼서 미안하다'라고 말을 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고 말했다. 그 순간 엄마가 자신이 쌓아왔던 것들을 망가뜨리는 것 같다고 했다.


내가 누군가의 그늘을 찾으려고 하는 것 자체가 선을 넘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르는 눈물을 애써 감추며 든든하게 친구를 위로해주려고 애쓰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나도 그 점이 무의식적으로 친구의 아픈구석일거라고 생각해왔다는 점이 부끄러웠다.


'모르는' 사람의 그늘이라고 특정한 것도 눈이 들어온다. 아는 사람의 그늘은 미리 읽고 있다고 전제하는 문장일까. 나는 가까운 사람들의 그늘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일까. 가까운 사람의 그늘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내가 모르는 사람의 그늘을 읽어주며 다독여줄 수 있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나는 누군가의 그늘을 읽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 다고 말하고 있으면서도 그늘을 맴돌아왔다는 것이다. 하고 싶었던 일이 누군가의 그늘을 찾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기자가 되려고 했던 것도 사회적으로 힘이 약한 사람들의 무기가 되어줄 수 있는 수단이 기사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에서 출발했다. 또 정신적으로 나약한, 마음의 그늘이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 미술치료를 배우게 됐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그늘을 갖고 있다. 그늘을 읽어준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 곁에서 묵묵히 있어주는 것이 그늘을 읽어내는 가장 세련된 방법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애초에 정답은 없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