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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ve bin Sep 22. 2021

애초에 정답은 없었다

가까워질수록 멀어지고 멀어질수록 가까워진다

우리는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의하고 분류하는 것을 좋아한다.

변수 투성이인 인간의 심리도 예외는 아니다.


‘a라는 카톡에 b라고 답을 했다면 그건 관심이 없는 것이다’

‘a라는 말은 그만큼 사랑하지 않을 때 할 수 있는 말이다’

‘a라는 카톡에 b로 답한다면 그건 100% 그린라이트다’


이런 조언과 해석을 들어봤는가?


사랑의 역사는 사람의 역사만큼 오래됐지만, 아직도 어려운 문제다. 시대를 막론하고 국경을 뛰어넘는 관심 주제인데도 그렇다. 항상 고민되고 어렵다.

그래서인지 카톡이나 행동으로 이성 간의 마음을 확인하는 방법, 오래갈 수 있는 인연인지 알 수 있는 방법 등의 콘텐츠들이 인기를 끈다.


그래도 쌓인 데이터라는 게 있으니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맞는 것들이 있어서, 그것이 정답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우려하는 부분은 이것이다. 연애 경험이 많지 않은 이들은 생각보다 이런 쪽집게 같은 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불안할수록 조급할수록 그렇다. 자신의 직감보다는 남의 말에 의존하는 것이 어쩌면 조금 더 마음이 편해서일지도 모르고,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느낌보다는 누가 확실하게 단언해줄 때 더 믿을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남의 말을 그대로 믿고 행동한 뒤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결국 나다. 언젠가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남의 말을 듣고 아닌 것 같아서 헤어졌는데, 직감을 믿었어야 했다는 말이었다. 친구의 말이 맞는지 틀린 지 내가 알 수는 없지만, 직감을 무시한 채 사랑의 정답을 찾으려다가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자신의 직감을 믿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나 하나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을 듣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사바사 케바케라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다. 어떤 상황이었는지, 어떤 맥락이었는지, 어떤 생각이었는지에 따라 같은 말이어도 의미와 뜻은 쉽게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떠올리고 있는 그 사람을 겪어본 적이 없는 그들이 하는 얘기의 신빙성은 얼마나 될까? 옆에서 봐온, 그 사람을 겪어본 나의 눈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한다.


사랑에 정답은 없다. 사람의 마음을 카톡 한 줄, 행동 한 부분으로 판단할 수 있는 거였으면 우리는 사랑앓이를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수많은 변수가 숨어있는 사랑에 공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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