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것조차 싫어졌던 순간
끔찍한 순간, 잊고 싶은 순간
그러나 기억해야 하는 순간
생생히 기억합니다. 저번 주 토요일, 8월 29일. 저번 글에서 밝혔다시피 공공데이터 청년인턴에 최종 합격하고, 제가 일할 곳이 중구에 있는 서울시청이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오랜만에 받은 ‘합격’이었기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 연락을 받았을 때, 엄마와 아빠와 시외에 있는 한 멋진 카페에서 휴식을 즐기고 있었습니다.(당연히 마스크는 착용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이고, 내 미래는 이랬으면 좋겠다, 앞으로 어떤 책을 읽고 무엇을 공부할 거라는 대화를 하면서. 그 시간에 동생은 성북동의 한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도 있고, 꼭 알바를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니까 하지 말라는 부모님의 말에도, 한 달 동안 일을 하겠다고 약속했기에 그 기간은 끝내고 생각해보겠다고 말하며 꾸역꾸역 알바를 갔습니다. 오후 3시부터 8시까지였습니다.
5시 즈음, 저희는 슬슬 배고파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저는 그 날 아침에 속이 좋지 않았기에 밥을 거의 먹지 않아 더더욱 배가 고팠습니다. 양수리에 있는 단골 장어집을 갈까, 새로운 곳을 찾아볼까 하다가 이마트 트레이더스를 가기로 했습니다. 저는 코스트코는 가봤어도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처음 가봤습니다. 먼저 코로나가 창궐하는데도 사람이 굉장히 많다, 또 대량으로 파는 형식이 코스트코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좋아하는 치즈, 아보카도, 회, 고기 등등 총 합 50만 원어치가 나왔습니다. 이거 언제 다 먹냐, 하면서도 먹을 것이 풍족하다는 생각에 설렜습니다. 그렇게 계산을 마친 후, 차로 모든 짐을 실었습니다. 제가 카트를 미느라 저는 핸드폰을 가방 깊숙이 집어넣고 있었는데, 차에 타기 직전에 핸드폰을 확인해봤습니다. 그때의 시각은 7시 50분쯤. 동생에게 부재중이 와있었습니다. 엄마 아빠께서도 그때서야 핸드폰을 확인했고, 부모님한테도 동생 전화가 와있었습니다. 이상하다, 동생 알바 8시에 끝나는데.라는 말을 하면서 제가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목소리가 이상했습니다. 동생은 매우 작은 목소리에 흐느끼며 전화를 받았습니다. 왜 우냐고, 무슨 일이냐고 말하면서 차분한 척을 하면서도(너무 놀라면 동생이 놀랄까 봐)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습니다. 심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디를 다쳤냐고 괜찮다고 했는데 목을 다친 것 같다며, 지금 구급대에 실려 병원에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가해자 번호는 받았냐고, 어디 병원으로 가고 있냐고 물었습니다. 가해자 번호는 못 받았고, 회기역 근처의 응급실로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집 앞이 서울대학병원인데 왜 거길 안 가고 다른 곳을 가느냐고 했더니, 의료진 파업 때문에 인력난이 심하고 심정지 환자가 들어올 예정이라는 이유로 동생의 응급실을 내줄 수 없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회기역의 한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아빠는 운전을 해야 하니까 겨우 정신을 차리신 것 같았고, 엄마는 그야말로 흥분상태셨습니다. 목이면 어떻게 하냐고, 몸의 중심인데 큰 일어나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말하시면서 울며 불안해하셨습니다. 내가 언니니까, 내가 정신을 차리고 부모님과 동생을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병원에서는 응급 환자라도 보호자 1명만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제가 가겠다고 하고 응급실에 들어갔는데, 동생은 온몸에 피투성이었습니다. 발톱이 빠져있고 온 몸은 비 때문에 젖어있고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도 온몸이 아프다고, 특히 목을 움직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일단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후, 여러 검사를 시작했습니다. 엑스레이, 시티 등을 찍었습니다.
다행히, 전문의 소견으로는 큰 이상은 없다고 했습니다. 근육이 놀랐고 차에 치일 때 충격 때문에 목에 큰 무리가 갔을 거라고 했습니다. 신경이 손상되는 것과 같은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응급병동에 들어간 후에 거의 바로 검사가 진행됐는데, 그 직전에 사고가 어떻게 난 거냐고 동생에게 물었습니다. 오늘따라 사장님이 기분이 좋아서 10분 정도 빨리 퇴근을 하라고 했고, 같이 아르바이트하던 친구와 신호등을 건너 버스를 타려고 했다고 합니다. 신호등에서 버스정류장까지 대각선으로 길을 건너는데 차가 뒤에서 두 명을 치었다고 합니다. 친구는 저 멀리 날아갔고 동생은 그 자리에서 그냥 앞으로 쓰러졌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동생의 코로나 검사가 양성인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보호자가 상주하는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제가 가서 동생의 상태를 봤는데, 심각해 보였습니다. 먼저 걷는 것도 잘 못하는 것은 물론 머리가 계속 지끈거린다고 울고 있고, 빛을 보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먹는 것도 전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빛이 싫다며 수건으로 눈을 가려달라고 했습니다. 게다가 그렇게 낮은 온도가 아닌데도 온몸이 춥다고 오들오들 떨기도 했습니다. 옆 간이침대에서 하루를 보내면서도 동생이 걱정돼 자는 게 자는 게 아니었습니다. 동생이 물 달라고 할까 봐, 화장실 가자고 할까 봐, 갑자기 몸이 안 좋아질까 봐 초초해져서 잠이 잘 오지도 않았습니다. 옆에 있던 저도 입맛이 없었습니다.
제가 하룻밤을 옆에서 자고 나서, 엄마께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엄마가 오신 입원 둘째 날에도 동생의 상태는 똑같았습니다. 빛을 보지 못하겠고, 잘 걷지 못하고 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태가 지속됐습니다. 그러다가 기적적으로 어제, 9월 2일 동생이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처음으로 전화를 하면서 웃었는데, 그게 얼마나 고마웠는지요. 너무 기뻐서 눈물이 다 났습니다. 호전되는 것을 보고 나니, 저도 힘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해자는 신호위반에 음주운전 상태였다고 합니다. 음주운전은 살인이라는 것을 몰랐을까요. 게다가 윤창호 법이 통과된 지 1년 반이 갓 넘은 지금도 음주운전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화도 났습니다. 음주로 사람이 죽은 사건으로 전 국민이 분노해 법까지 만들어졌는데.. 게다가 가해자는 피해자인 동생에게 번호 하나 남기지 않고 경찰에게만 번호를 남겼습니다. 저희는 가해자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에게 사과를 할 마음은 없는지를 알지도 묻지도 못합니다. 그저 경찰은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가해자에 대한 정보를 알려줄 수 없다고 하고, 가해자 보험사에서 연락이 올뿐입니다. 이런 절차가 위법하지 않다고 해도, 저희는 제삼자를 내세우고 가해자인 본인은 비겁하게 숨어버렸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글을 쓰기 전에도 수없이 고민했습니다. 동생의 사고에 대해 글로 남기는 것이 과연 나에게 동생에게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또 한편에서는 이런 일조차 글감으로 삼는다고 혹여나 비난하지는 않을까,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글로 남기기로 했습니다. 불편하고 괴로운 이 사건을 곱씹을 수 있는 연결고리를 만들어놔야 나중에도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계속 가질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또한 글로 제 심정을 기록하며 마음이 잠시나마 놓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