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교과서에서 보던 그 장면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
하늘은 맑았고, 관중들이 가득 차고, 파란 하늘 밑에서 투우가 시작됐다. 햇볕이 내리쬐는 그 화창한 날에 소들은 화가 나기 시작했다. 투우사가 빨간 천으로 화를 슬슬 돋웠기 때문이다. 소는 자신이 놀림감이 된 줄도 모른 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관중석에선 휘파람을 불면서 웃는 소리가 났다. 소가 흥분해서 이성을 잃어가는 모습을 보니 불편하고 불쾌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불안하고 속이 울렁울렁거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이때 자리를 떴어야 했는데.
고민했다. 거금을 주고 겨우 구한 티켓인데 그래도 끝까지 보고 갈까? 아니면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냥 경기장을 박차고 나가버릴까?
'그래, 네가 오버하는 거야. 한 나라의 문화를 존중해줄 줄 알아야지'라고 생각했다. 주변은 다들 아무렇지 않은데 왜 나만 유난이야!
이렇게 나갈까 말까 고민하며 정신이 팔린 사이, 소는 이미 아주아주 흥분해있었다. 투우사의 꾐에 넘어갔다.
그 순간, 투우사는 아주 긴 칼로 소를 찔렀다. 온 관중이 소리를 지르며 같이 흥분했다. 엄청나게 웃는 소리와 온갖 휘파람 소리, 손뼉 치는 소리, 카메라 소리가 한 데 뒤섞였다.
관중에서 나는 큰 소리에 소는 더 놀란 듯했다. 그 틈을 타 투우사는 소의 등에 더 깊은 칼을 꽂았다. 햇빛을 받아 빛나던 허연 땅 위에 빨간 피가 뚝뚝 떨어졌다. 점점 소가 흐물흐물 힘을 못쓰더니 비틀비틀 방향감각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정확히 말하면, 눈물이 흐른 정도가 아니라 거의 오열하고 있었다. 피가 날 정도로 손을 물어뜯고 있었다. 내 생에 그렇게 고문을 받는 느낌을 받은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내가 너무 웃겨서 우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 순간, 투우사가 들고 있던 칼들이 소의 등에 모두 꽂혀 있었다. 한 5-6개쯤 됐던 것 같다. 빨간색 천과 피가 오버랩되어 보였다. 몸집이 산만했던 건실했던 그 소는 맥아리 없이 툭, 생명이 없는 돌이 무심하게 쓰러지는 것 마냥 쓰러졌다.
빨간 피가 범벅된 그 흙 위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 죄 없는 소는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또 한 번 죽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얗게 겁에 질려서 출구를 정신없이 찾고 있었다. 자리를 떠야 했다. 나처럼 겁에 질린 사람이 없나 주변을 둘러봤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죄책감과 자기 혐오감에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았다.
다들 소가 찔린 장면에 낄낄댔을 뿐이다. 생명체가 아닌 그저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짜 소가 쓰러지는 것으로 오해했다고 해도 믿을 것이다. 저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다고? 하나의 생명이 스러지는 저 장면이 그렇게 웃겨서 배꼽을 잡을 수가 있다고?
솔직히 말하면, 그 모습이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처절하게 죽어가는 동물을 보고 낄낄대는 그 모습은 전혀 공감되지도 이해되지도 않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순간 중 하나다. 경기를 보면서 즐기지도 못할 거면서 왜 온갖 마음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그 자리에 있었을까? 생명 하나를 놀리면서 죽이는 그 모습을 문화생활의 일부라고 믿었었던 그 순간들을 후회한다.
나처럼 돈을 내고 이곳에 오는 관광객들 때문에 처절하게, 수치스럽게, 끔찍하게 소 한 마리 한 마리가 죽어 나가는 거겠지.
꿈에는 처절하게 죽어가는 불쌍한 소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