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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ve bin Oct 07. 2020

사람은 사람에게 치유를 받는다

사람은 사람에게

이 스토리를 봐야 하는 분


1. 미래에 대해 혼란스러운 분

2. 소소하지만 감동적 스토리를 좋아하시는 분

3. 당근 마켓에 대해 알고 싶은 분


  사고 싶은 목걸이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경제적 능력으로는 턱도 없는 명품 브랜드 목걸이었어요.(보고 들은 건 있어가지고..) 문제는 저는 한번 꽂히면 쉴 새 없이 그 물건을 검색해보고 최저가를 찾아보고, 결국에는 아무것도 못하다가 원하는 물건을 사고야만 다는 점입니다.

   미친 듯이 검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고는 꺼림칙하긴 한데 그래도 반값이면 살 '수'는 있겠다는 생각에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이용한 사이트는 당근 마켓입니다. 별생각 없이 중고나라나 번개장터에서 검색을 하는 것처럼, 당근 마켓 인터넷 버전으로 해당 목걸이를 검색했었습니다.

  근데 당근 마켓의 운영정책상 자기 동네 인증을 완료하고나서야 채팅을 걸 수 있게 해놨더라고요. 그래서 그 동네에 잠시 갈까 고민도 했지만, 조금 오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놀라운 것은, "당근 마켓 타 지역 도움방"이라는 오픈 채팅방의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어떤 답례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솔직히 귀찮을 수도 있는 이 중간상 역할을 누가하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긴가민가하면서 해당 동네를 언급했습니다. 아주 놀랍게도, 도움을 바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가령 성북구 삼선동 도움 필요합니다!라고 카톡을 올리면, 해당 지역에 사시는 분들이 무료로 저의 구매 의사를 전달해 주시고, 서로 연락을 할 수 있게 전화번호를 전달해주십니다.

  운이 좋게 바로 도움을 받아 판매자 분과 문자로 연락을 시작했습니다. 바로 다음날 만나기로 해서 제가 군자역에 가기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살 때 체크해야 할 리스크를 훑어보며 군자역에서 기다리고 있던 찰나, 판매자 분께서 느낌으로(?) 저를 알아보시더니 말을 거셨습니다. 처음 보는 분이기도 하고 군자역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대화를 어떻게 시작하게 된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목걸이를 확인하고, 그분께서 제게 어려 보이는데 취직을 하고 사신 거냐고 여쭤보시며 대화가 시작됐을 것입니다. 그 분과 저는 나이 차이도 꽤 나 보였고, 공통점이 있을까 싶었지만 말을 하다 보니 군자역 앞 은행 앞에 서서 얘기를 꽤 오래 하게 됐습니다.

  시간을 너무 뺏는 것 같아서, 대화를 마치고 다시 지하철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그분께서 고맙게도, 시간 있으면 잠깐 카페에 가자는 제안을 하셨셨습니다. 몰랐던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기에 신이 났습니다. 모든 사람의 인생을 살아볼 수가 없기에, 개개인을 만날 때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인생을 살아왔으며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항상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역시 저보다 인생을 더 살아오셔서 그런지 말도 잘하시고, 자신의 결혼 얘기도 해주시고, 인생 얘기까지 해주셨습니다. 한 시간 가량 얘기를 했는데, 쉴 새 없이 떠들었습니다. 그분께서 하신 말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요즘 쫌 기분이 우울하다고, 뭘 해야 할지 앞으로 결혼은 또 언제 하고.. 생각이 복잡하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시는 말이, "젊으니까 두려울 게 없겠는데^^, 지금 이 순간을 누리면서 모든지 해보세요"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냥 젊은 사람들한테 하는 의례적인 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근데 이 말이 하루 종일 제 마음속에 맴돌았습니다. 내가 뭘 이렇게 두려워하는 걸까, 난 내가 20대 후반이면 이룬 게 이미 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초조해했는데, 또 조금 더 먼 미래에서 보면 지금이 젤 좋은 때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너무 조심스럽고, 소심하고, 무서워하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신기한 것은 제 또래 친구들도 이제는 공무원 해야지, 이제는 뭐 할 수가 없지, 이런 말을 달고 산다는 점입니다. 저도 공감했고요. 그래서 어제오늘 친한 친구들과 전화하며 이 얘기를 해줬는데 친구들이 제가 신나 보이고 자신감 넘쳐 보여서 좋다고 말을 해주더군요.

  처음 봤던, 아니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짧은 인연이었습니다. 정말 갖고 싶었던 목걸이를 가져 행복했지만, 눈에 보이는 목걸이보다도 그 분에게서 용기를 얻은 것 같아 더더욱 행복하더라구요.  그분의 말이 제게 큰 자신감과 용기를 줬다는 사실에 벅차고 감사하고, 저도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설렘이 가득한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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