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그랬지
중학생 때부터 친하게 지내고 고등학생 때도 대학생 때도 연락을 하면서 꾸준히 만나는 인연이 있다.
대학생이 되기 전까진 서로의 관심사가 거의 같았다. ‘공부’. 작은 트러블은 있었어도 매일 공부를 해야 했기에 그렇게 크게 부딪칠 것도 없었다. 근데 지금은 다르다. 이미 20대 후반인 우리는 서로의 관심사가 완전히 다르고,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문제의 발단은 시간 약속이었다. 우리는 보통 6명이서 모이기에 한 두 명이 약속 시간에 늦게 오더라도 그렇게 티가 안 났다. 나머지 사람들끼리 얘기하고 있으면 되고, 그냥 늦게 온 사람은 늦게 합류하면 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빨리 오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상황이 됐다. 한두 명이 늦게 오는 게 별 문제가 되지 않자 모두 늦게 오는, 이상한 버릇(?)이 생긴 것이다. 이런 상황이 한두 번이 아니고, 그 시간도 길게는 30분 이상 늦는 사람들도 생기다 보니 슬슬 서로 화가 나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지각을 한 적은 있지만, 이런 이상한 문화가 생기다 보니 서로 늦는 것에 대해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이 생겼고, 약속 시간은 서로 지켜야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다.
나만 바뀐다고 이 불만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기에 이 심각해진 상황에 대한 내 생각을 단톡에 얘기했다. 물론 모두가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이 카톡에 아무도 적극적으로 동참하지고 공감하지도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인연이 소중하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불만이 쌓인다고 바로 연을 끊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지인들을 만나면, 이런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해야 이 모임이 지속될 수 있는지 끊임없이 물었다. 그러던 중 한 명이 얘기했다. 지각비를 쫌 세게 걷으니까 아무도 지각을 안 했다는 얘기였다. 돈이 모든 걸 해결해주지는 않아도 어떤 것은 확실히 해결해줄 수 있는 것처럼.
그래서 얘기했다. 나는 우리가 지각을 서로 안 했으면 좋겠고, 정 안되면 지각비를 걷자는 얘기였다. 이 모임에서 그나마 지각을 안 하는 친구도 내 생각을 거들었다. 그 정도를 넘어서 저녁을 다 사게 하자고. 이렇다는 것은 적어도 우리의 지각 습관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왔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일종의 몸부림에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냥 다른 얘기로 넘어갔다. 이제는 내 마음도 차갑게 식어갔다. 이렇게 노력했는데, 또 지각을 하면 그냥 내가 인연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이기로 한 날짜 전날 -그냥 또 늦으면 끝내야지라는 차가운 마음이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친구들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았다. 제발 늦지 않았으면 싶었다. 마지막으로 우리 늦지 않게 내일 7시에 보자고, 단톡에 말했다.
그랬더니 한 친구가 말했다.
“그렇게 네가 불안하면 그냥 네가 늦게 와”라고.
이 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제 끝났다, 싶은 생각이 가장 크게 들었고 화가 많이 났다. 내 한계를 건드린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 친구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볼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에, 고민하다가 개인 톡으로 내 심정을 말해보고 싶었다. 근데 그러는 사이, 그 친구가 보낸 긴 톡이 단톡 방에 뿌려졌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내가 늦지 말자고 자꾸 말하는 게 엄포를 놓는 것 같아서 기분이 안 좋았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10분 기다리는 시간이 그렇게 아깝냐고, 말을 했다.
일단, 나는 늦지 말자고 말해도 아무도 답이 없기에 내 톡을 못 봤거나, 무시하고 있다는 생각에 지각하지 말자고 몇 번을 말했다. 더해서 그 사람이 누구든 내 10분을 뺏어가는 건 나는 싫다. 그게 친구라서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그 누구라도 이유 없이 지각을 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을 것 같지 않다.
이렇게까지 답답하고 나 혼자 스트레스받으면서 누군가와의 인연을 이어가려고 애쓴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오래된 인연이기에 그 끈을 계속 놓지 못하고 혼자 마음을 썩히고 있었다는 생각이 난다. 나이가 들수록 맞춰가기 싫고 맞는 사람과 만나고 싶어 한다는데, 그 말에 천 번 만 번 고민한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20살 이후로 이렇게 친구와 얼굴을 붉힌 것은 처음이었지만, 마음이 오히려 후련하고 편해진 것은 그 이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