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때 대학에 갓 들어갔을 무렵 첫 엠티에서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는데 나랑 참 반대인 성향을 갖고 있는 한 친구가 있었다. 성격도 강해 보이고 감정 표현도 바로바로 하고 옷 스타일도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스타일. 친해질 생각은 당연히 들지 않았다.
근데 신기하게도 어쩌다 보니 둘도 없이 친해져 있었다. 서로 보기만 해도 웃기고 대화가 끊이지 않고 서로 호감인 상태. 몇 년을 그렇게 붙어 다녔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은 물론 남자 친구도 그 친구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될 만큼 우리는 가깝게 지냈다. 참 신기했다. 20년 넘게 각자 다른 환경에서 살다가 만났는데 이렇게 친해질 수가 있구나, 싶었다. 모든 일상을 공유하며 시시콜콜한 내용도 서로 낄낄거리며 재밌어했다.
그러다가 내가 전공을 틀게 됐다. 그게 대학교 3학년 때였는데, 전과는 불가능한 시점이었다. 그래서 난 지금의 전공인 디자인학과를 다니면서 내가 관심 있는 분야를 같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양다리를 걸친 셈인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디자인학과도 과제가 많아 밤을 새우는 일이 허다한데 내가 공부하지 않았던 분야를 배우려는 욕심도 가득했다. 전공을 약간 소홀히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과 친구들과 야작을 하지 않고, 전공을 빨리 끝내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친한 친구가 서운해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매번 같이 밥을 먹고 얘기도 많이 하면서 과제를 같이 했었는데. 나는 밥 먹을 시간이 없어 대충 김밥을 따로 먹겠다고 하면서 빨리 자리를 떴고 그 친구도 그 순간에는 허전함을 느낀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당시에 그 친구와 너무 친했기에 그러다가도 또 만나면 그 관계가 유지될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생각보다 같이 대화하는 시간이 줄어드니 마주칠 때 어색함이 느껴졌다. 오히려 적당히 친한 사이면 어색하진 않을 텐데, 너무 친했다가 대화가 갑자기 줄어드니 서로를 피하는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순간에는 그 친구가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과 많이 친해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다른 무리와 친해지게 됐고, 서로는 그렇게 더 멀어졌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그 친구와 친했을 때 느꼈던 행복함이 다시 생각나면서 연락해야지 싶었다.
졸업전시를 끝내고, 나는 나름의 용기(?)를 내서 친구한테 오랜만에 밥을 먹자고 했다. 근데 그 장난기 많은 친구에게 “내가 너랑 왜?”라는 카톡이 왔다. 나는 굉장히 고민하면서 보낸 카톡인데, 그렇게 답이 오니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웃어넘기려고 언제 시간 되냐고 물었지만, 답이 늦는 그 친구의 답에 서운함이 쌓여갔다. 결국 나는 마음의 문을 잠시 닫았고 먼저 연락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오 년이 지났다.
“방금 너 본 것 같은데”
이렇게 무심한 듯한 카톡이 왔다. 그 친구였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런지 반가웠고 보고 싶었다. 근데 나는 그때 공부를 하고 있었기에 시험이 끝나고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만난 게 3일 전이다. 약간 긴장 아닌 긴장을 했다.
친구는 보험을 팔러 왔냐며(ㅡㅡ?), 결혼하냐며 의심 어린 눈초리로 장난을 쳤다. 나도 신천지 관련 팸플릿을 들고 가려다가 진짜 도망갈 것 같아서 그러지는 않았다. 압구정역에서 만났는데 서로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살이 쫙 빠져 달라 보였지만 그래도 똑같았다. 그동안 우리 왜 안 만난 거냐는 얘기가 나왔다. 신나게 네 시간을 넘게 떠들다가 집에 가는데 그 길이 아쉬웠다. 물론 전에 느꼈던 서운함, 확 사라졌다. 나의 단순함 때문인가?
인연은 무엇이며 친구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