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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ve bin Jul 13. 2021

나로 살아갈 용기

곁에 있는 사람이 무언가를 원할 때 그것을 이뤄주지 못하는 것은 참 괴롭다. 엄마가 몇 달 전부터 카페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 너무 원하지만 힘들겠지, 라는 표정으로 땅을 바라보시는데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당장 그럴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죄송하고 우울하기도 했다.


요즘 부모님을 보면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큰일이다. 인생이 무료하다고 기분이 다운되어있는 엄마에게 힘이 돼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크다. 당장에 도움이 될 수 없는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워 짜증을 내게 된다. 그런 나를 보며 부모님은 너무 까칠하다고 기분 안 좋아하신다. 엄마에게 그냥 세월을 받아들이고 즐거운 걸 찾으라고 툭 말을 내뱉는 나에게 엄마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나는 당장 뭘 해줄 수 없는데, 죄책감이 밀려온다.


23시쯤 집에 들어가서 먼저 하는 일은, 이층 구석의 안방에서 곤히 자고 있는 부모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인생을 논하는 밑줄이 그어진 책들을 머리맡에 펼쳐놓고 잠든 엄마와 퇴직 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계신 흔적이 적힌 아빠의 노트를 보면서 마음이 쓰리다. 둘이 행복하게 맛있는 거 먹고 놀 생각하라고 차마 말하지 못하는 내가 작아진다. 나의 공부 기간이 이렇게 길어지지 않았다면 부모님의 걱정 근심을 조금 덜 수 있었을 텐데.


대학원생으로 배움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집요함과 끈기일 것이다. 또 미래에 투자하는 사람이라는 마음으로 굳건한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취업한 친구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조급함이 밀려온다. 자기 삶을 훌륭히 개척해나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초조하다. 나는 지금 이 길을 걷는 것이 맞을까. 어디든 취직을 해서 커리어를 쌓아서 경력직으로 이직을 하며 좋은 직장을 잡는 것이 나았을까.


참 큰일이다. 미안한 마음을 가질 시간에 나의 성장을 꾀하면서 효도의 앞날을 앞당기는 것이 더 현명한 길일 텐데 자꾸 흔들리면서 나의 길을 걷지 못하는 느낌이다. 과거에 내가 조금 더 열심히 살았더라면, 다른 진로를 생각해봤더라면.. 과거에 대한 후회는 의미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미 지나간 일에 미련이 남는다.


무엇보다도 내가 이런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은 부모님에 대한 사랑도 있지만, 결국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부모님의 딸로서 잘해보고 싶다는 압박감이 큰 것 같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내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을 때의 그 실망감을 볼 자신이 없기에 나도 모르게 그 방어기제로 부모님께 죄송함을 짜증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나는 사실 부모님의 얘기를 할 때마다 스트레스를 왕왕 받는다. 그래서 항상 입버릇처럼 우리 부모님은 참 좋으신 분이고 나한테 부족하게 해 준 적 없다고 말한다. 그게 사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부모님이 지금 나에게 압박이 되고 있는 사실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조금은 뻔뻔해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조금 덜 죄송해하면서 나의 길을 걸어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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