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즈를 5분의 1로 줄여서.
회사가 이사를 했다. 이렇게 빨리 다시 짐을 싸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만 2년 만의 일이다.
둘째 임신 6-7개월 차에 이사를 했었고 그 아이는 아직 채 두 돌이 안 되었으니.
테헤란로 대로변에서 150명이 들어가는 공실을 점유하는 것에는 누구라도 눈이 한번 땡그래질 만한 상당한 비용이 들어갔다. 본래 우리는 몇몇 부서 별로 좁은 빌딩의 여러 층을 오피스로 쓰고 있었다. 매번 회의를 하거나 누군가를 만나러 가려면 한 대 뿐인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거나, 그마저도 못 기다릴 것 같은 시간이면 3층부터 11층까지 뛰어 올라가는 것도 다반사였다. 이사 시점, 우리는 모든 직원이 한 층 한 공간에서 부대끼기를 원했고, 전형적인 회색빛 사무실 느낌에서 벗어나길 원했다. 그리고 오직 커뮤니케이션 하나만을 보고, 단일 층의, 다양한 사이즈의 회의실이 구비된 커다란 공유 오피스로 이사를 했다. 처음은 꽤 괜찮았다. 팬시한 공간의 짜임새는 사람의 감각을 아주 자극시킨다. 하지만 지난 2년 중 1년, 그 공간에는 사람의 온기가 닿지 않았다.
삶이 많이 바뀐 탓이다. 간만에 출근하면 모니터 위에는 가라앉은 먼지가, 한기가 어린 공기가, 하나둘 비어 가는 책상이 있었다. 하지만 일은 계속되어야만 했다.
우리 회사는 전례 없는 팬데믹 가운데 선제적으로 2020년 2월 말, 전사 재택근무를 시행했다.
어떤 준비도 되지 않았지만 오직 직원의 안전과 건강만을 보고 내린 결정이었다.
우리의 강사센터인 마닐라 브랜치에도 500여 명이 넘는 직원을 대상으로 재택근무 시행을 준비했다. 하지만, 필리핀 정부의 락다운 명령으로 48시간 내에 500여 명 모든 직원이 마닐라 사무실에서 퇴거해야 하는 긴급한 상황에 처했다.
전체 서비스 운영이 그대로 마비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타이밍, 우리는 모두 각자의 집에 있었다. 서울과 마닐라의 모든 직원은 본인이 있는 어떤 그곳에서 말 그대로 밤낮없이 혼신의 힘을 쏟았다. 서울의 기획팀과 고객운영팀에서는 빠르고 투명한 고객 커뮤니케이션으로 한국에서의 서비스 운영을 방어해 냈고, 마닐라의 스태프들과 서울의 센터운영팀의 신속한 코웍으로 몇 주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강사들이 홈베이스 업무가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냈다. 한국보다 열악한 인프라 환경 탓에 당장 홈베이스 근무가 불가한 강사를 위해서는 그들의 생계를 위해 무노동 상태임에도 임금을 지불하며 근무 환경 세팅을 도왔다.
이렇게 하루도 숨 가쁘지 않은 날이 없었던, 정말로 많은 일이 있었던 2020년 한 해 우리는 떨어져서 일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비스를 지켜냈고 예전과 다름없이 운영했고(유폰 2.0), 타사 유통 플랫폼을 통해 스폿성 니치 상품 론칭도 시도해봤고(Play UFO), 무엇보다 7년 만의 새로운 서비스와 앱(유폰 3.0)까지 론칭해내며 그 어느 해보다 정말로 쉴 새 없이 달려왔다. 그 어느 해보다 많은 일을 해냈던 2020년, 우리는 집에서 일한 시간이 아주 훨씬 더 길었다.
그리고 지난 3월, 전사 재택근무가 만 1년이 지난 시점,
우리는 공식적으로 ‘Work from Anywhere’ 제도를 선포했다.
이제 정든 고향을 떠나 서울의 살인적인 물가를 견디며 자취를 할 필요가 없다. 제주도 한 달 살기 쯤이야 체력만 버텨준다면 가능하다. 이 지루한 팬데믹이 끝난다면 제주도가 아니라 보라카이 한 달, 아니 일 년 살기도 가능할 것이다. 이미 어떤 분은 가족의 직장 컨디션에 따라 미국으로 잠시 떠나셨고, 어떤 분은 결혼하며 신혼집을 서울 경기가 아닌 충청권에 구하셨다.
집에서 거하는 날이 길어지며, 우리는 작년 9월부터 오피스 공간의 효율적인 활용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왔다. 2호선 강남-삼성으로 이어지는 대부분의 공유 오피스를 샅샅이 살펴보았다. 특히 Work from Anywhere를 공식적으로 시행하며 기존 150석의 오피스 규모를 어느 정도 수준으로 유지해야 합당한 것인지, 이 결정을 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다행스럽게도(?) 코로나 19 상황이었기 때문에, 전사 재택근무를 시행한 이래 오피스 출근자를 별도로 트랙킹을 하고 있었고, 이에 따라 전체 인원 대비 최대/최소 규모의 출근 인원이 어느 정도인지, 특히 어느 부서에서 자주 나오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이사 4개월 전부터 전 직원분들을 대상으로 만일 전사 재택근무가 계속된다면 얼마나 출근하실 계획인지 사전 서베이를 진행했었다.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최종 규모를 기존 150석에서 29석 오피스로 축소하여 확정 지었다. 이것은 짐 보관용 공간까지 포함한 계약 좌석수이고 실제 사람이 앉는 규모는 27석이 되었다. 민감정보 보관 목적으로 시건장치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파이낸스 룸의 좌석을 제외하면, 직원들이 실제 이용 가능한 좌석 개수는 23석이다. 그리고 이는 기존 오피스 계약 규모 대비 약 15% 사이즈에 불과하다. 모든 좌석은 출근 전 사전 예약하여 이용 가능하고, 사장님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
이렇게 팬데믹 이후 오피스 이사(라 쓰고 다이어트라 읽는다)가 이뤄졌다. 전사 재택근무 상시화 이후 크고 작은 장단점들을 직접 체감 중인데, 이 중 하나 예전과는 확실하게 달라진 좋은 점이 있다면 출근해서 동료의 실물을 보면 너무나 애틋하고 반갑다는 것이다. 서로 손을 잡고 때론 반가워서 안아주기도 하고, 예전에는 정말 업무가 아니면 말을 하지 않았을 법한 동료와도 스몰토크를 하고, 서로 점심식사의 좋은 벗이 되어주어 미처 몰랐던 면면을 발견하기도 한다.
더욱 작아진 오피스 공간은 이제 정말 ‘만나서 이야기를 많이 하며 진행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 나오는 곳이 되었다. 가끔은 조용하다 못해 고요했던 곳은 수시로 시끌시끌 와글와글 대화와 말장난과 드립이 많이 오가기 시작했다. 아마 비대면으로 채워지지 않는 관계의 욕구들이 마구 분출 중인 것이다. 한편, 오피스가 아닌 계속 집에서 일을 해야 하는 동료들을 위해, 인간이라면 본능적으로 충족해야 할 ‘와글와글함’의 연결고리를 만들어주는 것은 이제 앞으로 나와 우리 팀의 큰 숙제가 될 것이다.
우리만의 독특한 일하는 방식을 다시 한번 다듬어 갈 포인트가 많아 더욱 기대되는 시점,
팬데믹의 끝이 보이지 않는 2021년, 이렇게도 일은 계속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할 때다.
앞으로 작아진 오피스 덕에 우리는 무엇을 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