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라는 것은, 하다 보면

by 유다람


살다 보면 누구나 감정적으로 미운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미움은 때로 오래 남기도 하고, 때로는 나도 모르게 흐려지기도 한다.

나에게 그중 가장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았던 대상은,

바로 ‘계모’라는 이름의 여자였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어릴 적, 나는 학대를 당했다.

훔치지 않은 물건을 훔쳤다고 오해받아 매를 맞고,

조그마한 손으로 온 집안을 청소해야 했다.

한밤중, 잠든 내 몸을 깨워 다시 바닥을 닦게 하던 날들.

아무도 없던 새벽의 부엌에서, 나는 수건을 꼭 쥐고 울었다.

2.png
4.png

그러나 그보다 더 잔인했던 건

그녀가 나를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옷장 뒤, 반지하의 창문 틈, 병풍 뒤—

그녀는 몇 시간씩 숨어 있다가,

내가 배가 다른 동생을 어떻게 돌보는지 감시하듯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알면서도 방관한 친아버지.

나는 방임과 외면 속에서, 매일을 살아야 했다.

중학교 3학년.

폭력이 이어지던 어느 날, 나는 집을 뛰쳐나왔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우산도 없이 버스를 타고, 무작정 성당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내가 오래도록 따르던 수녀님이 계셨다.

5.png
“살려주세요.”

나는 그 한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

수녀님은 말없이 내 손에 따뜻한 코코아를 쥐여주셨고,

젖은 몸을 닦을 수건을 건네주셨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삶에게 '괜찮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았다.

그 손길이, 나의 첫 번째 구원이자,

이후의 삶을 조금씩 살아내는 시작이 되었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

“나이 들면 다 이해하게 돼.”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용서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다.

용서는 ‘결심’이다.

마음을 다잡고,

이제는 나를 더 아프게 두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

나는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마음은 풀어주기로 했다.

용서는 결코 그 사람을 위한 일이 아니다.

그 기억을 없애는 일도 아니다.

그저, 나 자신을 더는 가두지 않기 위한 작은 탈출구일 뿐이다.

“이제 그만 괜찮아져도 돼.”

내 안의 어린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는 일.

그건 내가 나를 구하는 방식이자,

그날 성당에서 받았던 따뜻한 손길을,

이제는 스스로에게 건네는 일이다.

나는 아직도 용서 중이다.

완전히 다 용서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있다.

이 글이,

지금도 마음속에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작은 숨구멍처럼 다가가기를 바란다.

당신이 오늘, 스스로를 단단히 안아주는 하루이기를.






작가의 메세지.png


용서는 화해가 아닙니다.

그 사람을 이해하겠다는 선언도 아닙니다.

그저 더 이상 그 기억에 붙잡히지 않겠다는,

아주 사적인 결심입니다.

많은 이들이 ‘용서’를 위로처럼 말하지만,

진짜 위로는 나 스스로가 나에게 건네는

그 작고 다정한 말 한마디에서 시작됩니다.

“이제는, 괜찮아도 돼.”

이 글을 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단어 하나하나를 쓰며 다시 울고, 멈추고,

또다시 이어나가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남은 건,

누군가를 용서한 내가 아니라

그럼에도 살아낸 '나 자신'이었습니다.

혹시 당신도 지울 수 없는 상처 하나쯤 가슴에 안고 있다면,

부디 이 글이 당신의 밤을 조금은 덜 춥게 해 주기를 바랍니다.

브런치 아래에.png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3화지랄총량의 법칙, 나도 한 몫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