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내 아이를 삼킨 단어

정작 우리 아이들의 인권은 누가 지켜주나요?

by 유다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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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열 살이었던 우리 큰딸은 말 그대로 ‘지옥 같은’ 초등학교 생활을 견뎌야 했다.
3학년이 되고 개학 후 불과 2주 만에, 같은 반 여학생의 언어폭력이 시작되었다. 그 아이가 내 딸에게 던진 말들은 도무지 초등학생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 나는 너무도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처음 딸아이가 조심스레 말했다.
“엄마, 나… 너무 힘들어.”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아이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거야. 너도 혹시 그 친구한테 속상하게 한 건 없었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지금 돌아보면, 그게 가장 큰 화근이었다.
뉴스에서나 보던 ‘학교폭력’이, 그것도 겨우 10살짜리 내 딸에게 벌어진 일이라는 걸 너무 늦게 인식한 것이다. 아이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표정이 굳어졌고, 결국엔 버틸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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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학폭"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구조

결국 우리는 학교폭력으로 신고를 결심했다.
그러나 그전에 담임 선생님께 중재를 부탁드렸다. 가해 아동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만 해준다면, 신고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오히려 가해자 쪽에서 우리 아이를 학교폭력으로 신고한 것이다.

지금의 제도에서는 한쪽이 학폭을 신고하면, 맞은편에서도 ‘맞학폭’을 동시에 제기할 수 있는 구조가 허용된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누가 진짜 피해자인지를 증명하기 위한 싸움이 시작된다.

심지어 얼굴에 멍이 든 아이를 두고도, 가해 아동은 “저 아이가 먼저 나를 놀렸어요.”라는 말 한마디로 상황을 뒤바꾸려 한다.
결과적으로는 쌍방 폭력으로 간주되며, 진짜 피해자였던 우리 아이는 더 큰 고통을 받게 된다.

언어폭력의 경우, 명백한 증거가 없으면 더더욱 밝혀내기 어렵다. 가해자가 끝까지 거짓말을 고수하면, 진실은 묻히고 만다.

교육청의 심의 절차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학교폭력 문제가 합의되지 않으면, 마지막엔 교육청 면담으로 넘어간다.
국회의원 청문회처럼 줄지어 앉아 있는 10여 명의 어른들 앞에, 아이는 마이크 하나만 놓인 책상에 앉는다.
이 장면은 성인인 나조차 숨이 막혔고, 특히 정신과 약을 복용 중이던 우리 딸에겐 공포 그 자체였다.

가해자도 아닌 아이에게, “너는 이런 행동하지 않았니?”라며 범죄자를 심문하듯 쏟아지는 질문들.
딸은 마이크를 붙잡은 채 한참을 떨며 말을 잇지 못했고, 결국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엄마… 내가 뭘 잘못해서 여기까지 온 걸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1호, 2호 처분의 허술한 실효성

학교폭력의 처분은 대부분 1호(서면 사과) 또는**2호(접촉·협박·보복행위 금지)**로 마무리된다.

1호: 서면 사과

가해 학생이 사과문을 쓰고 제출하면, 형식적으로 마무리된다.
생활기록부에는 기록되지 않는다.


2호: 접촉 및 보복 금지

직접적·간접적인 접근을 금지하는 조치다.
SNS나 친구를 통한 접촉도 금지되지만, 실질적 제재력은 약하다.


이 조치는 어디까지나 ‘가해자 측의 협조’가 전제돼야 작동한다.

부모가 아이를 제대로 제지하지 않으면, 똑같은 일이 반복되기 마련이다.
결국 피해자 쪽에서는 다시 신고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조용히 ‘버티는 쪽’을 선택한다.

우리 딸도 그랬다. 교육청에서의 경험이 너무나 커다란 상처로 남았기 때문에, 다시는 그 자리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나는 아이의 결정을 존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후로 딸아이는 사람을 의심하고, 쉽게 믿지 못하는 아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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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아이의 고통을 미처 몰랐을까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사설 상담센터를 찾았다.
무료 상담도 있었지만, 나는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다. 아이의 마음도, 내 양육 방식도.

그곳에서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째 아이는 ADHD 증상이 있었고, 특히 통각 둔감증이 있었다.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부딪혀도 아프다고 느끼지 못하는 정도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많은 장면이 떠올랐다.
아이의 병원 진료 기록. 늘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던 아이. 열이 40도가 넘어도 무표정했던 아이.

그제야 나는 알았다. 나는 첫째라는 이유로, 너무 믿고 방관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 나는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꼭 물어본다.
“오늘 친구랑은 잘 지냈어?”, “선생님이랑은 어땠어?”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큰 방패가 되는지를, 이제야 깨달았다.


평범함이 간절한 하루

1년이 지났다. 딸아이는 이제 4학년이 되었고, 11살이 되었다.
새로운 반,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선생님. 딸은 말했다.
“엄마, 지금은 진짜 천국 같아. 친구들도 너무 좋고, 선생님도 너무 좋아.”

나는 그 말에 감사했다.
하루하루가 기적 같았다.
더 이상 큰걸 바라지 않는다.
우리 가족이 이 평범한 일상을 평범하게 살아낼 수 있기를, 나는 매일같이 간절히 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내 삶은 점점 저 너머로 희미해진다.
아이의 상처가 곧 나의 상처이고, 아이의 인생이 곧 나의 인생이 되었다.
그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나도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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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고통의 시간은, 우리 가족을 한 뼘 더 성장하게 했다.
지금도 나는 믿는다. 학교폭력은 미연에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선생님들이 조금만 더 아이들에게 귀 기울여준다면,
공부 못지않게 친구 관계를 지켜봐 주신다면,
사건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학교폭력에는 더 이상 ‘관대함’이 존재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1호, 2호 처분이 아이들에게 ‘괜찮다’는 메시지로 전해지지 않길 바란다.
“난 미성년자라 처벌받지 않으니까.”
이런 인식이 퍼지지 않도록, 어른들이 더욱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요즘 나는 길을 걷다가도 문득 주변을 살핀다.
혹시, 누가 누군가를 괴롭히고 있지는 않을까.
그런 내 작은 관심 하나가, 누군가의 인생을 구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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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내 아이가 겪은 상처를 다시 꺼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누군가의 아이가, 누군가의 가족이, 나와 같은 길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학교폭력은 결코 한 아이의 일로 끝나지 않습니다.

가족 전체의 삶을 흔들고, 오래도록 흔적을 남깁니다.

이 글이 어딘가에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아이들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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