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지지 않는 끝없는 상처,
여성 할례

이젠 우리가 바라보고 알려야 할 숙제

by 유다람
KakaoTalk_20250713_185904604_01.jpg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서야 알게 된 진실이 있다. 여성 할례.

처음 그 존재를 알았을 때, 심장이 조여들고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 끔찍한 통증과 공포를 견뎌야 했을 수많은 소녀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났다.

한때는 나 역시 사회 문제에 무관심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해야 한다. 여성 할례는, 절대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인권의 문제다.

여성 할례(Female Genital Mutilation, FGM)는 여성의 외부 생식기를 의학적 이유 없이 절제하거나 손상시키는 행위다. 전통, 문화, 종교 등의 이름 아래 대부분의 경우 어린 소녀들에게 강제로 시행된다. 세계보건기구(WHO), 유니세프, 유엔은 이 관습을 명백한 인권 침해로 규정하고 있다.


WHO는 여성 할례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제1유형 (Clitoridectomy): 음핵의 일부 또는 전부 절제

제2유형 (Excision): 음핵과 소음순 제거 – 가장 흔한 형태

제3유형 (Infibulation): 음핵과 대음순을 절제하고 질 입구를 거의 봉합하는 방식

제4유형 (기타): 찌르기, 긁기, 화상, 자상, 산 삽입 등 기타 손상 행위


이 잔혹한 관습은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소말리아, 기니, 수단 등에서는 시행률이 90%를 넘는다.

많은 경우 0세부터 15세 사이, 심지어는 갓 태어난 아기에게까지 이뤄진다.

부모와 지역사회는 이를 순결과 정숙의 상징이라 믿으며, 성인식이자 결혼 준비 과정으로 강요한다.

하지만 여성 할례는 결코 종교적 의무가 아니다. 코란이나 성경 어디에도 이를 지시한 구절은 없다.

할례는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울부짖는 다리를 어른들이 붙잡고 진행된다.

청결하지 않은 칼이나 유리 조각이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절제된 부위는 의료적 처치 없이 그대로 방치된다. 이로 인한 합병증은 상상을 초월한다.

감염, 난산, 요로 손상, 불임, 만성 신장질환, 극심한 통증, 그리고 평생에 걸친 정신적 트라우마가 뒤따른다. 어떤 소녀는 시술 직후 과다출혈이나 감염으로 숨진다. 평균적으로 전체 시술자 중 0.5~1%는 급성 사망에

이른다고 한다.

더 끔찍한 건 살아남더라도 시작된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여성은 출산 때 산도 절개 없이 출산이 불가능하며, 이로 인해 산모와 아이 모두 위험해진다. 삶 전체가 고통으로 점철되고, 일부는 우울증과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유엔과 WHO는 매년 2월 6일을 ‘여성 할례 반대의 날’로 지정하고 전 세계적으로 근절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UNICEF, Plan International, Equality Now, End FGM Network 등 다양한 국제 단체들도 캠페인과 구조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후원, 서명, 공유만으로도 충분히 힘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이 고통을 ‘타인의 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여성의 인권은 국경을 초월하며, 아이의 고통은 모든 인간이 함께 나눠야 할 몫이다. 대한민국처럼 의료와 교육이 보장된 나라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단순하지만 분명하다.

먼저, 이 문제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주변에 ‘알려야’ 한다. SNS 공유, 후원, 서명 캠페인 참여, 관련 다큐멘터리 시청 등도 모두 실천이다. 작은 관심이 결국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KakaoTalk_20250713_185904604_03.jpg
KakaoTalk_20250713_185904604_02.jpg
KakaoTalk_20250713_185904604_04.jpg
어디서,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


캡쳐.png


또한, 다음과 같은 영상 자료와 책을 통해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다:

영화: 《데저트 플라워 (Desert Flower)》

다큐멘터리: 《The Cut》

책: 와리스 디리, 『데저트 플라워』

예전 우리가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 먼 타국에서 조선을 위해 싸워준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의 역할이 되어야 할 때다. 누군가의 절망에 손을 내미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인간다운 행동이다.


“이 글이 여성 한 명의 고통에 닿기를 원한다면,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행동은

알리는 것, 외치는 것, 멈추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엔, 연결되어야 한다.

그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할 때, 우리가 대신 말해야 한다.

그들이 도움을 청할 수 없을 때,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고통을 나누는 일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알리고, 읽고, 공유하는 것. 때로는 단 한 번의 서명으로도 누군가의 삶이 바뀐다.

이제 우리는 알고 있다. 알고 나면, 외면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방조다.

KakaoTalk_20250713_185904604_07.jpg
KakaoTalk_20250713_185904604_08.jpg
KakaoTalk_20250713_185904604_05.jpg
KakaoTalk_20250713_185904604_06.jpg


그래서 우리는 말해야 한다. "나는 너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우리가 매일 누리는 안전과 자유가 누군가에게는 평생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사실. 그것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의 무관심은 특권이 된다.

그러니 지금, 이 글을 읽은 당신이 그 연결점이 되어달라.

목소리가 되어달라.

당신이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 클릭 한 번, 공유 한 줄이

한 생명을 지킬 수도 있다는 걸—우리 모두, 기억하자.

우리는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더 넓게 전해야 하며, 더 오래 기억해야 한다. 소셜 미디어는 때로는 가벼운 관심을 넘지 못하지만, 당신의 '공유'는 누군가의 '살아 있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행동했던 이 작은 움직임이 하나의 흐름이 되고, 세상의 잔인한 관습을 뿌리째 흔들 수 있는 힘이 된다는 걸 믿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 이것은 그저 먼 나라의 잔혹한 풍습이 아니다. 이건 아이들에 대한 폭력이고, 여성에 대한 학대이며, 인류 전체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그러니 오늘만이라도, 이 글을 다 읽은 당신이라면 행동해 달라. 잠시 멈춰 웹사이트를 열고, 단체 하나를 클릭해 보자. 후원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읽어주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시작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해주자. "이런 일이 아직도 존재해, 우리가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어."라고.

우리는 바꿀 수 있다. 아주 천천히, 아주 작게. 하지만 분명히, 우리는 바꾸는 중이다.

그 시작이 당신이면 좋겠다.

작가의메세지1.png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세상의 많은 슬픔이 더는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뉴스에서 스치듯 지나가던 일도,

이젠 내 딸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여성 할례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숨을 멈췄다.

그저 낯선 나라의 잔혹한 풍습이라고 생각했던 일.

하지만 그건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아이의 다리를 붙잡고 칼을 들이대는 현실이었다.

그 아이가 “싫어요”라고 외쳐도, 그 말은 공기 중으로 증발해버리고,

그 아이의 몸은, 삶은, 존엄은 너무나 쉽게 잘려 나간다.

나는 이 글을 쓰며 여러 번 울었다. 엄마로서,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이건 단지 어떤 국가나 문화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건, 우리가 얼마나 인간답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 아이들이 우리보다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더 안전한 곳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렇게 살 수 있었을 뿐이다.

그 특권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침묵하는 것은,결코 중립이 아니다. 그건 방조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쩌면 처음 알게 되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하다.

알리고, 외치고, 멈추게 하는 일. 당장 그 나라에 가서 구할 순 없지만,

이 글을 공유하고, 서명하고, 후원하는 건 지금 당장도 가능하다.

우리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멀리 간다. 우리의 선택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꾼다.

세상을 바꾸는 건 대단한 권력이나 엄청난 돈이 아니라,

그저 누군가를 향해 “그건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는 작은 용기일지도 모른다.

이 글이 그런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더는 외면하지 않기로 한 우리들의 다짐으로.

브런치 아래에.png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5화학교폭력, 내 아이를 삼킨 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