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오빠는 몸이 좋지 않다.
결혼도 늦게 했고, 어렵게 얻은 딸과 아들과 함께
늦깎이 아빠로 살아가고 있다.
아마도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건
내 결혼식이 있던 해였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전화로 안부만 묻고 지냈다.
얼마 전, 중학생이 된 조카가
우울증으로 학교를 가기 힘들어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안의 오래된 기억 하나가 꺼내졌다.
어릴 적, 그 조카는 사고로 오른손 손가락 일부를 다쳤다.
믹서기가 땅에 놓여 있었고,
그 안에 손이 들어가면서 생긴 일이었다.
그때 병원에서 봤던 사촌 오빠의 얼굴이
아직도 또렷하다.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로
병실을 서성이던 그의 뒷모습이
한 장면처럼 가슴에 남아 있다.
그 사고 때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상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조카는 우울증이 깊고
심지어 사촌 오빠도 함께 약을 먹고 있다는 얘기에
마음이 요동쳤다.
그저 멍하게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뭔가 한 마디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힘을 줘야 했다.
그래서 조심스레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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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자식은 부모 속을 썩일 권리를 갖고 태어나는 거야.
생각해 봐,
우린 그때 부모님 말 잘 들었어?
우리도 똑같았지, 지랄하고 살았잖아.”
“너무 경상도 사나이처럼 무뚝뚝하게 하지 말고,
애들한테 좀 다정하게 말 걸어봐.
사람은 누구나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게 있대.
어떤 사람은 10대에,
어떤 사람은 20대에,
혹은 더 늦게 그 총량을 발화한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너무 다그치지 말고, 해
그냥 많이 안아줘.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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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부족했지만, 진심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도 ‘지랄총량’의 법칙을 꽤 진하게 통과해왔다.
10대엔 가수가 되겠다고 지랄했고,
20대엔 연애한다고 지랄했고…
이제 와 생각해보면,
지랄은 누구나 해야 할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
모든 지랄은
언젠가는 반드시,
한 번은 터진다.
⸻
지랄은 죄가 아니다.
그저 방향이 중요할 뿐이다.
그걸 10대에 하느냐,
20대에 하느냐,
아니면 30대에 억눌린 감정으로
갑작스레 폭발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조용한 사람일수록
그 총량이 안에서 더 끓고 있다는 말도 있다.
지랄도 연습이 필요하다.
적절하게, 건강하게,
누군가를 상처주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다.
요즘은 SNS라는 무대 위에서
타인을 향한 지랄이
공개적으로 펼쳐진다.
연예인을 향한 무분별한 투사,
남의 인생에 발을 들이밀고 훈수 두는 일들.
그러니 오히려 묵묵히 자기 총량을
가정에서, 우정에서, 사랑에서
천천히 소진하는 사람은
참 괜찮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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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지랄을 다 써버렸는지,
요즘은 그냥 조용하다.
누가 뭐래도 별로 동요하지 않고,
슬쩍 웃으며 넘기는 요령도 생겼다.
이 글은 그냥,
오늘 하루 웃고자 쓰는 글이다.
혹시 당신도
자녀의 반항에,
배우자의 침묵에,
혹은 내 안의 울렁거림에 지쳐 있다면—
그건 어쩌면
아직 남은 총량이 있는 것뿐이다.
서로의 지랄을 이해해주며
물 흐르듯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
작가의 말
모든 사람은
한 번쯤은 어지럽게 흔들린다.
그 흔들림의 이름이 ‘지랄’일 수도 있고,
‘성장통’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총량이 다 지나고 나면
우리는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조금 더 유해지고,
조금 더 사람다워진다.
그러니 오늘,
당신의 지랄도 괜찮다.
그리고 당신 곁의 그 사람의 몫도,
응원한다.